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요선 Jan 15. 2024

HR이 너무나 괴로운 초기 스타트업 대표님들께

'적절한 보상과 적절한 채용과 적절한 X는 대체 무엇인가요'에 대한 답변

시리즈 B라운드 스타트업 두 곳에서 주로 채용 일을 했고, 지금은 우리 하우스가 투자한 포트폴리오사를 후속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초기 팀들의 부탁은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이기 때문에 대부분 채용 관련한 일을 한다.


인턴과 같은 단기 계약직 채용까지 하면 그래도 지난 2.5년 동안 300명은 채용해 본 것 같고, 그러기 위해서 대략 최소 1,000명 이상과 대화해 본 것 같다. (서류에서부터 드랍된 인원들 포함하면 1만 명은 될 듯) 채용에 있어서 꽤나 까다로운 스타트업에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글로벌 대기업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과 5차 인터뷰를 진행하고도 미덥지 않다며 6차 인터뷰를 제안한 적도 있었고 ^_^ 훨씬 큰 스타트업에서 C레벨로 있는 사람에게 리더급을 제안한 적도 있었다. 당연히 그 둘은 그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VC로 이직하고 나서는 리퍼럴로만 인재풀을 모았고 그 과정에서도 300명 정도와 이야기 나누었다. 지원자들의 별의별 질문 또한 받아보기에 충분한 데이터이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데이팅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채용 시장 경험도 비교적 빡세게 해 보았고, 인사가 만사라고 곳통을 호소하는 대표님들도 많이 만났다. 많이들 물어보시는 질문을 개인적으로도 정리할 겸 글로 남긴다. 일단 누구의 회사도 아니고 '대표님' 회사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 보상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떤 게 적절한 보상인가요?


다들 얼마 줘야 하냐고 많이들 물어보신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에게 물어보시라고 답한다. 일단 이 방법이 무조건 제일 빠르다! 그리고 적시에 채용해야 하는 스타트업은 빠르게 오퍼를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경쟁력이 있다.


또 적절한 채용을 했다면 그 구직자는 본인의 시장 평가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본인이 어느 정도의 보상을 왜 받아야 하는지 주장하는 바를 보면 그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역량 또한 알 수 있다. 무턱대고 주장하는 내용을 다 맞춰주라는 것도 아니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시장 가격을 모르는 사람을 후려치라는 말도 아니다. 협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고, 그러니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주장은 언제나 지양해야 한다.


정기적인 연봉 협상을 대비하거나 보상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이것저것 봐야겠지만 지금 20인 미만 스타트업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걸 만들 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유니콘 기업들 보상 까보면 뒤죽박죽 난리가 나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부 테이블 있다 해도 상황에 따른 아웃라이어는 늘 존재한다. 완벽하게 적절하고 공정한 평가/보상 체계가 있을까 싶다.


그러니 그냥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낫다. 그 사람이 원하는 보상을 줄 것인지 말 것인지만 결정하면 되니까. 더 무식하게 이야기하자면 엄청나게 체계적인 평가 기준도 있고 내부 보상 테이블도 있고, 다른 회사들은 얼마 주는지까지도 전부 리서치했다 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걸 설득하는 게 리크루터의 역량이기는 하다) 5,000만 원 받고 싶다는 사람한테 내부 기준에 따라 너는 그건 절대 안 되고 4,000만 원이라고 설득해 봤자 그 사람이 쉽게 납득하겠나. (물론 이걸 가능하게 하는 리크루터도 있는데 - 그거슨 바로 나 - 그건 리크루터 개인의 역량이라기보다는 제시할 수 있는 다른 카드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2.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나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요? 좋은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대표님이 뽑고 싶은 사람 뽑으시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타트업은 정말로 '대표의 회사'이다. 상장한 IT 기업들도 여전히 창업자의 영향력이 크고, 웬만한 유니콘 기업들도 대표님이 실무하고 계시는데 150인 미만 회사면 너무 당연한 거 아닐까.


대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 아니고, 실제로 그럴 수도 없지만 결국 대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대표님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조직 문화를 가지고 싶고, 어떤 팀을 꾸리고 싶은지, 어떤 사람을 매니징하고 싶은지 깊게 고민해 보시는 게 맞다. 비즈니스 성격에 따라 핵심 인력이 도출되고 그에 따라 조직이 세팅되기도 하지만 지향하는 조직문화에 따라서도 채용 타깃이 결정된다.


가장 최악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과 본인이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을 착각하는 대표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HR러들 사이에서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와 '넷플릭스 규칙 없음'이 금서일까!) 마이크로 매니징 해도 되는데 자기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서 하니까 서로 미치는 거다.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무제한 휴가와 무제한 식대 등을 제공했던 나의 전 직장이 한국에서는 어려운 문화인 것 같다며 그 제도를 폐지했다던데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하고 싶은 바를 명확하게 이야기하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은 주니어 채용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스타트업의 인턴/신입 채용을 돕고 있다! 링크 확인은 여기서) 일단 시니어들이 아무 연고도 없는 초기 스타트업에 올 유인이 없다. (같이 일해봤거나 같은 학교였거나 이런 연고가 전혀 없다면 일단 나도 안 갈 건데... 대표님도 안 가시지 않을까..?) 연봉 맞춰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고연봉자일수록 연봉 더 오른다 해도 체감은 크지 않은데,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엄청나다. 실제로 연봉 1억 넘는 시니어 개발자들은 연봉 대신 워라밸을 찾는다. 시니어들 탓할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가족이 있을 수도 있고 육아 중일 수도 있는데 네임밸류 아직 없는, 망할지도 모르는 회사에서 사회 초년생 때 했던 소위 말해 짜치는 일부터 다시 하는 게 쉽지 않다. 내 회사도 아닌데 말이다. 파격적으로 스톡옵션을 주거나 엄청나게 특별한 경험이어야 하는데 사실 그렇다 해도 쉽지 않다. 누구나 원하는 시니어는 사실 본인이 창업을 한다.


그러니 매니징 할 수 있는 인원이 내부에 있다면 주니어를 채용하고 같이 성장하는 게 스테이지상 맞다고 본다. 그러다 시리즈 B를 기점으로 큰 투자가 들어오면 그 상황에 필요한 경험을 한 시니어들이 들어오면 된다. 이때 기존 구성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헤어지면 되고, 기대치를 조율하여 시니어를 맞이하면 된다. 대부분 난리가 나는 이유는 기존 구성원들과 이별할 때 적절한 대우를 하지 않아서이고, 마케팅 예산이 1억 일 때 100억짜리 프로젝트해 본 시니어가 들어와서이다.


무엇보다 시니어 채용에 대한 환상을 버리시는 것을 권한다. 대표도 해결하지 못한 묘수를 연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시니어가 짠하고 해결해 주는 일은 없다. 아까 말했듯이 그런 분은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좋은 주니어 채용이 쉽나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정말로 똑똑한 주니어들은 초봉 9,000만 원 준다는 컨설팅 펌에 가거나 여기저기서 이미 많은 오퍼를 받는다. 창업도 많이들 한다. 그래도 적합한 주니어 채용이 가능성은 더 있다고 본다.






너무 시니컬하게 글을 쓴 것 같아서 조금 반성 중이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나는 사업이 자본주의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정말로 믿는다. 그리고 창업자들이 정말로 쉽지 않은 길을 가기로 결정한 아주 이상한 사람들이라고도 생각한다. 자기가 돈 많이 벌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싶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대표님들도 많다. (물론 엑싯하고 변심한 이들도 많다고는 하던데... 사실 몇 백억에서 몇 천억 엑싯하셨으면 그럴 만도 하지 않나 싶다...) 유저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하겠다는 진정성도 있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비전도 있다.


창업자 분들 대부분 워낙 똑똑하고 독특하고 인생에 큰 실패도 없었던 분들이 대다수이니 단순히 혼자 돈 많이 벌려고 했으면 사실 창업 외에 다른 방법도 많고 더 빠른 길도 많을 것이다. 그것도 VC 통해서 투자 유치를 해야 하는 창업은 더 험난한 여정이니 더더욱 그렇다. (다른 창업이랑 단순 비교를 하는 건 아니지만 훨씬 더 큰 시장을 더 길게 봐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까 창업자들을 응원하면서 마무리한다. 대표님들과 이야기 나누어보면 사실 다들 지금보다 더 좋은 대표가 되고 싶으신 것 같다. 그 '더 좋은'이라는 정의는 제각각 다르지만 말이다. 옆에서 힐끔거리며 지켜볼수록 어쩌면 창업을 하는 과정은 사실 본인이 어떤 대표가 되고 싶은 지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도 같다. 그리고 일단은 그런 대표와 마음이 맞는, 적어도 그 대표와 일할 때 너무 괴롭지 않은 사람들로 초기 팀은 세팅된다. '세팅된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렇게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 난리법석 눈물의 시행착오들을 미리 응원드린다. 생각보다 더 쉽지 않으니까 정말로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셔야 한다.   

이전 02화 VC는 어떤 창업자에 투자하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