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아파트 담장에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장미를 보면 어릴 적 살던 집과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싸리개로 담장을 두른 낡은 1층 한옥집.
마당에는 작은 우물이 있었고,
화단엔 장미꽃과 사루비아.해당화가 피어 있었다.
나는 종종 방 바깥의 마루에 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예쁜 장미 화단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큰언니와 함께 시장에 갔다가,
뭔가를 사달라고 졸랐는데 (아마도 호떡이었나, 옥수수였나?)
엄마가 안 사주셔서 울면서 홧김에 도망쳤고,
결국 길을 잃은 채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그날 밤, 가시를 뺀 장미 가지로 먼지나게 맞았었다.
그 예쁜 장미가, 그렇게 공포스러운 쉭쉭 소리를 내는 회초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어린 시절의 어느 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