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초등학교 입학식 장면.
왠일인지 그날 엄마가 오실수가 없어
혼자 교문을 들어서야했던 7살의 나.
처음 보는 얼굴들로 가득 찬 운동장은 넓고 낯설게 느껴졌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조용히 우리 반 번호를 찾고
길게 늘어진 줄의 맨 끝에 슬그머니 섰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도, 손을 잡아줄 사람도 없는 그 순간.
나는 괜히 초라해 보일까 싶어 가만히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봤다.
신발 끝으로 흙바닥에 내 이름을 열심히 써보았다.
입학전날까지 외우고 또 외운 그 세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집중하는 척.
사실 조금 무서웠고 외로웠다.
하지만 외롭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외로움을 숨기는 법을 이미 알고 있던 아이였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의 일.
이 이야기는 나중에 큰언니가 들려줬다.
나는 다 잊고 있었는데, 언니의 말을 듣자
서서히 기억이 떠올랐다.
학교가 끝난 어느 날,
같이 놀기로 했던 친구네 집에 갔다.
그런데 친구는 부모님과 잠깐 외출을 하겠다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나갔다.
나는 그 집 앞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때까지 혼자 기다렸단다.
생각해보면 풍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닫힌 현관문, 어둑해져 가는 골목길,
집에 갈까, 조금만 더 기다릴까
그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내 모습.
해가 지고 나서 친구가 돌아왔다.
미안하다며 내 손에 100원을 쥐여줬다.
평소 용돈을 받아본적이 없는 나는
집에돌아와 새로 생긴 돈을 우쭐때며 언니에게 자랑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언니는 그 동전을
확 집어들어 집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때 나는
조금 모자란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그 친구를 기다리는 게 나름의 ‘의리’라고 생각했었다.
기다린 나 자신이 꽤 대견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100원을 받았을 땐 돈이 생겨 좋았지만
마음 한쪽이 어딘가 울적하기도 했다.
그게 왜 그랬는지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알 것도 같다.
친구를 기다린 마음이 그저 값이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
나는 기다렸지만,친구는 그럴 만큼 나를 중요하게 여기진 않았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혼자 잘 있는 아이로 보였지만
사실은 혼자 있는 게 익숙해진 아이였다.
기다리는 법, 참는 법,
외로움을 표현하는 대신 숨기는 법을 일찍 배운 아이.
그 아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때때로, 마음에 상처를 받을때면
그때처럼 조용히 땅을 바라보고
무심한 척, 괜찮은 척 스스로 다독이곤 한다.
그 시절의 나는 외로운 아이였다.
그렇지만 어쩌면 외로운 걸 참 잘해내던 아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