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모양이 있다면

사람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것(上)

by 손예림


출장 당일 인천공항에서 첫 미팅이 시작된다. 며칠 전부터 온몸을 휘감았던 설렘과 긴장감을 조금씩 덜어내며 필요한 서류와 이외 제공물품이 담긴 샌딩백을 손님들에게 전달한다. 개인 혹은 단체 체크인을 하고 나면 일단 한숨은 돌릴 수 있다. 면세점 쇼핑을 즐기고, 탑승 시간에 맞춰 게이트로 향한다. 게이트에 가까워질수록 해제시키고 싶었던 긴장모드가 다시 가동된다. 게이트에서 두 번째 미팅이 진행되는데, 인원이 많을 경우에는 전원을 모이게 하여 조를 짜주기도 한다. 이후 비행기 탑승을 하고나면 착륙할 때까지 나름의 휴식시간을 갖게 된다.(출입국 신고서, 세관 신고서가 있을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업무가 진행되기도 한다.) 장거리 비행이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24시간이 넘어가는 비행은 왜 없는 건지, 한없이 고도화된 문명의 발전이 조금은 야속해진다.

현지에 도착하면 해외임을 실감하기 무섭게 바로 업무가 시작된다. 손님들께 안내사항을 전달하고 정신없이 일정을 진행하고, 하루 세 끼 식사와 호텔 체크인·체크아웃이 나날이 반복된다. 이런 공식적인 일정과는 별도로 내 머릿속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추가 업무가 있다. 바로 '손님 이름 외우기'다. 예약 명단을 기준으로 첫 번째 손님부터 마지막 번호 손님까지 이름과 얼굴을 외우는 나만의 작은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학창 시절 학기 초 담임선생님의 숨은 노고를 이렇게 깨닫게 되었다. 인원이 적으면 자연스럽게 외워지지만, 30명이 넘어가는 큰 단체팀일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암기력이 떨어져서 전공인 '역사'에도 재주를 펼치지 못한 나인지라 본래 업무보다 더 번거로운 일이 되기도 한다. 마치 시험 전날 거행되는 벼락치기와 흡사한 강도의 노력과 긴장감이 동반된다. 인솔자가 손님들 이름을 꼭 외워야 하는 건 아니지만, 5월 스승의 날까지도 출석부 없이는 학생들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선생님을 생각해보면 어쩐지 매정하지 않나? 물론 학교에서의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만큼 서로 교감할 필요는 없지만, 인간적으로 대하고 싶어 이 노력은 항상 빼놓지 않는다. 그렇게 벼락치기를 서둘러하다 보면 마침내 이름과 얼굴 그리고 일행들의 관계까지 싹 파악이 된다. 신기한 건 며칠 동안 그들과 함께 하다 보면 이것 말고도 보이는 게 한 가지 더 있다는 것이다. 바로 마음의 모양이다.


여행을 가면 사람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인솔자는 그 현장을 고스란히 함께하는 사람이다. 물론 인솔자가 손님들과 24시간 함께하지는 않는다. 호텔에서 체크인하고 체크아웃 하는 그 사이의 시간까지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일정 중에 온갖 상황을 함께 마주하다 보면, 반듯한 여권 사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의외의 면모들이 발견된다. 그런 경험이 겹겹이 쌓이다 보니 어설프게나마 마음의 모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적인 모습은 신체로 드러나 있으므로 쉽게 보인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평가까지 내리곤 한다. 그렇지만 성격, 가치관 등의 성향은 보이지 않기에 알기 어렵다. 그런데 인솔자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마음에도 모양이 있었다. 관상이라고 하면 미신적인 것 같고, 인상이라고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웃기게도 이 마음의 모양은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얼굴 어딘가에 그늘져 있다. 긴 세월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보인다. 표정, 눈빛, 목소리, 말투, 생각, 가치관 등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어쩌면 그 모든 게 모여서 마음의 모양을 이루는 걸지도 모르겠다. 40대쯤부터는 얼굴에 인생이 담긴다고 하던데, 특히 그 나이대의 손님들에게서 마음의 모양이 잘 예측되곤 했다. 내가 손님들을 통해 본 것처럼 정말로 마음에도 모양이 있다면, 내 마음은 참으로 예뻤으면 좋겠다. 여행을 떠나서 드러나게 된 본모습을 스스로가 보아도 밉지 않기 위해. 나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언제든 신나게 떠날 수 있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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