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학원에는 투명한 창문으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작은 연습실이 있었고, 그 공간으로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했다. 어쩌면 열심히 하는 그 모습을 누가 봐주기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1년에 한 번 정도씩 학원 정기 연주회가 열렸다. 그간 갈고닦은 연주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작은 축제였다. 창문으로만 나를 보여줄 수 있던 내 무대가 확장되었다. 관람객은 학원생들의 가족에 그치는 소박한 행사였지만, 당시 어린아이의 시선에서는 조촐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안타깝게도 무대를 씹어먹지는 못해 지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무대 공포증이 무엇인지 가늠할 필요 없이 한껏 기량을 뽐내던 나였다.
그렇게 여러 시선이 모여드는 중심에 있더라도 전혀 주눅 들지 않던 나였지만, 어김없이 숨어들던 순간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구독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현관문에 붙는 게 있었다. 바로 배달 전단지. 이걸 발견하는 즉시 미각은 요란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군침을 돌게 했다. 만화책만큼이나 재밌게 전단지를 휙휙 넘겨보며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식은 무엇일지 샅샅이 살펴봤다. 식탁으로 올라올 것도 아닌데 정성스럽게 나의 원픽을 고르고 동생의 원픽도 궁금해하며 한참이나 음식 얘기로 재잘거렸다. 그런 모습이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어쩌다가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었는데, 배달 주문 임무가 나에게 떨어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럴 때면 음식을 고를 때와는 사뭇 다른 온도로 전단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아마 우리 집에 존재하지도 않는 불편한 가시방석에 앉은 모양새였겠지. 마치 발표자를 지목하려는 선생님 앞에 놓인 것처럼. 움직이면 더 눈에 띌까 봐 눈에 띄지 않으려고 쥐 죽은 듯이 앉아 있던 교실에서의 모습과 비슷했을까. 집밥을 차리기 귀찮아하신 부모님의 게으름 세포가 잠시만 게으름을 피우기 바랐다. 다행히도 임무가 주어지지 않고 부모님이 배달 주문 전화를 하시면, 배달 주문의 과정에서 생성된 긴장감은 내 몸에서 빠져나와 전화를 끊는 동시에 수화기 너머로 봉인됐다. 이어서 소심함이 비워준 자리를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채웠고 넘칠락 말락 할 때쯤 배달원이 초인종을 눌렀다. 배달음식이 도착한 것이다.
소개팅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시잘에는 배달원을 마주하기가 왜 그렇게 부끄러웠던지. 집에 없는 척하다가 친구에게 들킨 아이 마냥 호다닥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런 내 맘을 알리가 없는 배달원이지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남몰래 소리 없는 배웅을 했다. 나중에는 거실 창문에 비치는 현관을 훔쳐보는 방식으로 스킬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두바이여행 red sand desert
그랬던 아이가 시간이 흘러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는 일과 배달 주문 전화를 거는 일, 그것들을 묘하게 합친 것과 비슷한 형태의 일을 하게 되었다. 인솔자가 되니 세계 여러 나라의 공항, 호텔 로비, 관광지, 버스는 나의 무대가 되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세계가 나의 무대였다고 말하고 싶다. 적게는 열댓 명에서 많게는 마흔 명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는 순간이 짜릿했다. 한참이나 어린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손님들의 호응은 마이크 잡는 걸 피아노 치는 것만큼이나 신나게 해 주었다. 배달 주문도 못하던 나였는데, 손님들에게 전화를 걸고자 집어 든 핸드폰이 점차 밥 먹을 때 드는 숟가락만큼이나 편히 들 수 있었다. 그들의 여행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났다. 특별한 날에는 그날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도록 어깨너머로 배운 스페인어를 함께 외치며 내가 다니던 피아노 원장님이 그러셨듯 관광버스를 작은 축제로 만들었다. ¡ Feliz Navidad!(메리 크리스마스), ¡Feliz Año Nuevo!(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의 문장으로 가득 채워진 그 날들을 어떻게 잊을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던데, 그 사이에 예외도 있는 걸까. 두려워했던 일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일상이 되었고 어린 시절의 행동을 벗어던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두려움 건너편에 존재한다고 한다. 또다시 두려움을 느낄 다음 무대는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