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나는 집순이였던 사람이다. 좋아하는 음식 탑 5에 라면이 들어갈 정도로 입맛조차 주인 닮아 게으름뱅이인 사람. 라면 한 봉지가 집에 없어서 사러 나가야 할 때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준비를 몇 날 며칠 하다가 나갈 정도다. 그런 내가 인솔자가 되니, 설렘을 느껴가며 정성스럽게 챙기던 해외여행 짐을 3분 카레처럼 인스턴트식으로 포장했고, '24시간이 모자라'의 주인공이 되어 공항을 제 집 드나들듯 부지런히 움직였다. 케리어 짐 싸는 데에 선수가 된 건 아마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많아서이지 않을까. 짐 싸기가 더 이상 설렘이 아니라 귀찮은 일이 된 건 여행이 일이 된 자의 크나큰 손실이다.
공항 환승 터미널을 스쳐 지나간 것까지 포함하면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대륙을 다 찍어보았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지인들에게 나의 종적을 감추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도 이 도시, 저 도시, 이 나라 저 나라로 이동하다 보니 부모님께서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기 입 아파하셨다. 얼마나 정신이 없냐하면, 언젠가 아침 식사는 스페인에서 점심은 포르투갈에서 저녁은 다시 스페인에서 먹는 스케줄도 있을 정도였다면 믿겠는가. 심지어 다음날 아프리카로 넘어가는 일정이라면 어떻겠는가. 선약을 잡거나 계획이란 걸 하기가 쉽지 않아서 다이어리 쓰는 걸 좋아해도 미리 적어둘 게 없었다. 전 세계를 열심히 돌아다니는 일의 특성상, 동네 친구들은 내가 항상 당연히 해외에 있을 거라고 여겼다. 프리랜서인 인솔자 친구가 일복이 많을 거라 생각해주는 건 참 고마웠지만, 당일치기를 넘겨가며 침대와 기나긴 데이트를 즐길 때마저도 나를 빼놓고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비행기가 집인가 싶을 정도였으니 서운해하기에는 그간 시차를 핑계로 미뤄뒀던 카톡들이 마음에 걸렸다.
발칸여행 크로아티아 시베니크
얼마 전 동창들과 모였다. 친구 한 명이 행방이 묘연할 정도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나에게, 남미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였는지 궁금해했다. 페루의 마추픽추가 가장 가보고 싶다던 그의 상상에 이과수를 이어 붙여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떠하다'는 대상에 가봤다는 건 마치 그 이하의 것들을 전부 정복한 것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관광지를 설명하는 수식어에 순위만큼 효과적이고 가성비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전 세계에 가장 거대하다는 3대 폭포가 있다. 순위에 들려면 최소 2개국을 끼고 있어야 한다는 자격조건이 있었는지,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빅토리아 폭포는 잠비아와 짐바브웨,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끼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던가.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쪽 모두에서 각기 다른 방향과 각도로 보아야 한다. 보이는 풍경이 전혀 다르듯, 받는 감동 또한 다르니 말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브라질 이과수 마꾸꼬 사파리 보트 투어가 단연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 순간에 보트는 악마의 목구멍이 토해내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고, 그 속의 나는 그간의 세월을 거꾸로 되돌아보고 있었다. 마치 되감기 버튼을 누른 듯 며칠 전 남미대륙으로 넘어오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영화처럼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이 잔상을 남기며 지나갔다. 물살이 에너지 동력이 되어 희미한 기억을 선명하게 그려내 주었다. 그때 빠르게 지나갔던 건, 지금보다 작았을 몸집에 담겨있던 크나큰 용기를 가지고서 전교 부회장 공약을 온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외친 초등학교 시절, 손 들고 발표하는 건 부끄러워도 사랑 앞에서는 누구보다 용감했던 중학생 시절, 공부 잘하는 학교에 가겠다고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이동생활을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 할인받기 위해 들고 다녔던 학교 학생증이 민증에게 자리를 내준 신입생 시절과 점차 얼굴이 민증이 되어버리던 대학교 시절, 그리고 체감상 사춘기보다도 더 힘들었던 취준생 시절이었다. 라면의 면발처럼 뒤엉켜 존재했던 추억 속 기억들이 매듭을 풀어가며 현재의 물살 위를 떠다녔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던가. 그동안 오랜 시간 축적해온 나의 일대기들이 보트 위에서 상영되는 것 같았다. 죽기 전에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하던데, 그게 이런 걸까 싶었다. 차이가 있다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니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황홀한 지경이었다는 것. 인간이라는 존재를 한낱 미물로 느껴지게 만든다는 대자연 앞에서 정복당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뚜렷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 그건 더없이 감사한 경험이었다. 훗날 정복하지 못한 세계 2대 폭포를 마주하게 될 때, 또 한 번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들이 넘실대는 폭포의 물살 위로 상영될지 모른다. 부디 그때까지 흘려보내게 될 인생이 더 예쁘고 사랑스럽기를 바란다. 너도 그렇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