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로 향하는 페루의 관광 기차 '잉카 레일'은 어렸을 적 기억 속의 기차와 닮아 보였다. 상·하의가 노란색으로 도배된 유치원복이 잘 어울리던 꼬꼬마 시절에 경주로 소풍을 갔다. 단체로 올라탔던 기차가 첨성대, 석굴암, 다보탑보다 더 즐거워서 경주여행이 아니라 기차여행으로 기억에 남는다. 꿈을 꾼 듯 또렷하지 않고 개연성도 없는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지금의 KTX 가족석처럼 배치되어 있는 좌석에 누군가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난지는 모르겠지만 삶은 달걀을 먹었고 아마 소금도 찍어먹었던 것 같다. 지금보다는 느렸을 그 기차는 경주까지 몇 시간 동안이나 이동했을까. 무려 해발 2,430m에 위치한 마추픽추지만 잉카 레일은 2시간이면 충분했다. 기차에서는 기내식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구성은 간소한 편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마추픽추를 다니면서 퀴노아 밥, 쿠키, 초콜릿, 빵, 새파란 귤, 잉카 차 등을 먹어보았는데 그때마다 한국의 달걀이 그리웠다. 기차에서 달걀을 먹던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싶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도 마추픽추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마추픽추 기념품점들이 골목마다 미로처럼 즐비해있다. 놀라운 사실은 정작 마추픽추에는 기념품점이 없다는 거다. 이 사실을 안다면 기념품을 당장 구매하겠지만, 마추픽추 입구까지 가려면 다시 버스를 타고 30분가량을 더 이동해야 하므로 가방을 무겁게 하기엔 아직 이르다. 뿐만 아니라 쇼핑을 미뤄야하는 더 큰 이유가 또 있었다. 관광지 기념품점 가격이 비싸다는 건 전 세계 국룰이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인천공항에 있는 카페는 더 비싸거나 양이 적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을 체감하고 온 터라 관광지 가격에 부쩍 예민할 수밖에 없는 관광객이다. 기념품은 여행지에서 느꼈던 추상적 행복을 형체로 담아갈 수 있게 해 주지만, 페루 기념품을 마추픽추에서 사는 건 한참 고민해볼만한 문제였다. 아쉽지만 기념품이 주는 물질적 행복을 뒤로한 채 마추픽추를 만나러 계속 올라갔다.
남미여행 페루 마추픽추 포토스팟
마추픽추 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걸 꼽으라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며 들렀던 기념품점도, 안개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다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안개가 걷히며 장엄한 풍채를 뽐내던 마추픽추의 유적을 마주친 순간도 아니다. 비가 오는데 우비를 챙겨 오지 않은 내게 현지 가이드 레베카가 자기의 우비를 입혀준 순간도 무척이나 행복했지만, 가슴 뭉클한 한 마디를 선사해주신 노부부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십 대가 거의 다 차오른 나이인 내가 여태까지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결혼식장 주례사, 생일 축하 메시지보다도 더 와 닿았던 그 말은 세포 하나하나에까지도 감동이 전해질 정도였다.
오얀따이탐보 역에서 출발하는 잉카 레일은 단선 노선이다. 앞의 기차가 지연되면 뒤에 오는 기차들도 줄줄이 그 전처를 겪을 수밖에 없다. 페루뿐만 아니라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당하게 되는 그들 특유의 느긋함이 있다. 그게 아무리 남미 문화라고 설명을 해줘도, 빨리도 아닌 빨리빨리인 한국인 관광객들은 로마법을 따를 수가 없다. 기차는 우리 손님들의 성격을 모르는지 눈치 없이 우리를 방치했다. 그들의 사정을 짐작해보려 하지만 늘상 그렇듯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지루해진 틈 사이로 주파수는 사과 방송 대신 손님들의 수다 방송에 맞춰진다. 지연된 시간만큼이나 손님들의 수다가 꽃피울 시간은 더 여유로워진다. 그렇게 피어오른 꽃 중에 하나를 노부부가 나에게 선물해주셨다. 여행을 떠나기도 전부터 본인들께서 나이가 많아 다른 젊은 여행객들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하시고, 여행하는 동안에도 혹여나 주책없이 어울리는 게 될까 봐 먼저 거리를 두시던 분들. 그러면서도 서로 잡은 손깍지는 절대로 놓지 않으시며 일행들과 동떨어져 있어도 절대로 외롭거나 초라해 보이지 않으시던 분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챙기시던 분들이었다. '늙어버린 사랑'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들의 뒷모습이 남긴 사랑의 발자취는 나를 포함한 일행들의 부러움을 받곤 했다.
그들의 선한 배려는 나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할머님께서는 본인의 남편을 잡던 다정한 손길을 내게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네. 가장 젊은 날이야. 그래서 팔십이나 먹었는데도 기어이 남편 끌구서 남미 여행을 왔어. 지금 너무 늙었는데, 그래도 지금이 가장 젊으니까. 그래서 지금 그렇게 좋아." 아직 한창 젊은 내가 돈을 벌러 남미까지 오고 가는 게 대견하시면서도 안쓰러웠던 모양이셨던지, 가만히 잡은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페루의 풍경 속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차창을 바라보셨다. 방금 전 내가 삶은 달걀을 까먹던 유치원 기차여행을 회상했듯, 지금보다도 더 젊었을 그녀의 시절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걸 차창 밖에서 보신 걸까. 그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도 그녀의 손을 한동안 잡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