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이륙하면 치르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두 손을 모으고, 마음속으로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세요."를 속삭인다. 그리고 가슴 위로 양 손을 X자로 포개서 어깨를 털며 불길한 기운을 쓸어내린다.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한 탓에, 기내 서비스로 제공되는 영화보다 더 빠르게 한 편의 재난 영화를 머릿속에서 제작해낸다.
그도 그럴 것이 동료 인솔자 선배들로부터 어마무시한 경험담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게 여행이라지만 별별 희한한 일이 다 있더라. 관광버스 타이어가 펑크 난 썰, 차가 밀려 비행기를 놓친 썰, 비행기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한 썰, 칼을 든 강도를 만난 썰 등 말하자면 끝도 없다. 나는 베테랑 수준의 이야기보따리 장수들 사이에서 주로 방청객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경력이 차츰 쌓이다 보니 나의 보따리도 커졌고, 썰 경연대회가 있다면 무난히 예선 통과할 법한 일들도 겪게 되었다.
나는 줄곧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특히 해외여행지에서 유독 그랬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인도의 바라나시, 치안이 안 좋기로 악명 높은 파리의 북역, 강도와 소매치기가 극성인 브라질의 코파카바나 해변 등에서도 아무런 사건 사고가 없던 나였다. 귀중품이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버려도 고스란히 내 품으로 돌아왔고, 비가 온다고 했던 일기예보는 항상 예상을 적중하지 못했다. 행운에도 무게가 있었다면 이미 무게 초과로 공항에서부터 걸렸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그 많은 행운들을 갖고 다녔나보다.
그런 나에게 그 일은 어느 정도 예상된 불행이었다. 남미 출장을 앞두고 있었고, 출국하기 전부터 현지 가이드님을 통해 소식을 접했다. 볼리비아에서 과격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고. 볼리비아는 대한민국 여권으로도 비자가 있어야 입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일단 출장용 목적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런데 시위 사태가 심각해져서 대사관 업무가 중단됐단다. 컴퓨터를 켤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라는 다소 과장된 아니,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를 소문도 있었다. 도미노 패가 넘어지듯 초조한 나날들이 지나갔고, 다행히 비자를 발급받았다. 그렇지만 멕시코를 거쳐 페루에 도착할 때까지도 사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당장 다음 행선지가 볼리비아였는데, 앞길이 막막했다.
머릿속에서 걱정 회로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또다시 재주를 부렸다. 블록버스터급 재난영화가 후속작으로 제작됐다.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게 정신을 차려 머리를 굴려보았다. 볼리비아 현지 가이드분들과의 사전 조율과 온갖 노력에 힘입어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볼리비아 공항에 도착했고,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호텔까지 이동했다. 그런데 예고편이 강했던 탓일까? 이상하게 눈앞에 수류탄 터진 흔적이 보이는 데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야생 동물 사이에서도 안전한 사파리 투어버스를 타고 다니는 듯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