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mi Lee Oct 26. 2024

사업 십 년, 작은 사옥 지었습니다

 시작은 이런 마음이었다.

 “아니, 커피 판매하는 카페도 자기 건물이 있는데. 짜장면 판매하는 사장님도 자기 건물에서 장사하는데. 난 왜 없어.”

 마침 운동 선배 둘과 사업을 합치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셋이 합치니 혼자라면 못 했을 일도 척척 진행되었다. 우리는 호기롭게 함께 돈을 투자해서 공동명의로 150여 평의 땅을 계약했다. 경기도 이천시 끝자락, 충북 음성군과 맞닿은 곳이었다. 그렇게 경남 창원에서 시작해서, 서울로 갔다가, 경기도 안양으로 옮겼던 내 사업체는 경기도 이천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나는 충북 음성 사람이 되었다. 처음으로 가져 본 내 건물이었다. 그렇게 시골살이가 시작되었다.


 처음 땅을 구경하러 갔던 날을 기억한다. 봄과 여름 즈음의 경계에 있던 날씨였다. ‘여기야.’ 먼저 가 본 선배들이 우리가 매입할 땅을 보여주는데, 보는 순간 땅이 위치한 곳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나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시내가 아닌 읍내라 부른다고 했다. 시골이라 불러도 좋을 경기도 외곽이었지만 치킨집도 있고 빵집도 있고 햄버거집도 있고.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는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 보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이 너무나 기대되었다.

 땅을 매수하기 직전에 나는 사업 십 년 차의 무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열심히 해도 짜증 나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더 짜증 나는 이상한 기분에 갇혀 있었는데 바뀐 환경이 주는 환기감은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그래, 가방 하나도, 옷 한 벌도 기분 좋으려고 사는 건데, 땅도 사고 나서 내 기분이 좋으면 됐지, 뭐. 나중에 땅값이 오를지 어쩔지,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는 미래의 문제고 일단 나는 그때 내 기분에 만끽했다. 사무실 앞은 4차선 경충대로이지만 사무실 뒤편으로는 복숭아 농장이 지천이었다. 로망처럼 시골집에서 사는 대신 안전상 아파트를 선택했지만, 15층 아파트에서 바라본 논밭뷰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기분을 잊게 해 주었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전천후 아무도 없는 논밭길이라 개와 함께 실컷 뜀박질을 할 수 있었다.


 처음 건물을 지어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전에 급매물로 나왔다는 여러 곳의 회사, 사무실 매매를 알아보았지만 전부 마뜩잖아 직접 땅을 고르고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아파트는 사 보았어도, 초가집 비슷한 것이라도 지어 본 적이 없는 우리는 새파란 30대였다. 비용 상의 문제로 벽돌, 콘크리트 건물 대신 조립식 건물을 선택했다. 그래도 좋았다. 1층은 회사 사무실과 창고로, 2층은 회사 숙소와 창고로 지었다.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최대한의 효율을 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사실 이 과정은 선배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업료로 더 많은 금액을 지불했을지도 모른다. 2층으로 짐을 오르내리는 리프트는 중국에서 직접 수입을 하고, 매운 냄새를 참아가며 페인트칠을 직접 하는 등 손발을 보태자 많은 비용이 절감되었다. 초여름에 시작된 공사가 한겨울이 지나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사무실에 입주한 시기는 다음 해 2월이었다. 땅을 계약하고 땅 담보로 대출을 받고, 공사비를 해결한 후 건물을 담보로 또다시 대출을 받았다. 돈이 엄청 많아서 마음 편히 건물을 지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랴. 우리는 각출을 하고 머리를 굴려서 최대한 돈을 맞추어 보았다. 일을 진행시키며 생각했다. 그저, 이 과정을 30대에 한 번 겪어 보는 것이야말로 큰 공부라고. 우리가 사무실에 앉아서 열심히 물건만 팔고 사업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회사 규모를 넓히고, 월세로 살던 구조를, 은행에 이자를 내는 구조로 바꾼 것이 큰 변화라고. 월세나 은행 이자나 비슷한 금액이 나가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사 걱정 없이 내 땅을 갖고, 쫓겨날 걱정 없이 마음 편히 개들을 키울 수 있는 것은 꽤 짜릿한 기분이었다. 


 물론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건물을 짓는다면 이렇게 하겠다’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우선 숙소를 만들면서 너무 많은 비용을 들였던 것. 차라리 저렴한 시골에서는 전세를 얻는 편이 더 아늑하고 나을지도 몰랐다. 또한 건물 외벽의 마감재를 고르는 것도, 나의 선택으로 고상한 진회색 선택했으나, 우리 땅은 정 남향...... 나는 남향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몰랐다. 하루종일 사무실로 해가 정통으로 들어오는 것은 둘째치고 건물 외벽의 색깔이 연회색으로 변할 정도로 많이 바랬다. 아마 조만간 다시 보수 공사를 해야 할 듯싶다. 또한 매장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사무실은 오히려 대로변보다는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더라도 큰 평수로 가는 것이 개들 키우기에도, 창고 넓히기에도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선배들도 의견이 반반이다. 아직 우리가 건물을 팔 시점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석진 곳을 매입했다가 팔리지 않는 고생을 해보지 않았기에 하는 생각일 수도 있다고. 가끔 회사 건물을 수리, 보수하며, 물이 새거나 문제가 생기면 ‘집주인’을 찾던 옛날 습관이 떠올라, ‘차라리 월세로 살며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다시 집주인의 눈치를 보며 매월 월세를 내고 살라면 못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인생의 큰 전환점이 시작되었다. 회사 건물을 짓느라 큰 지출을 한 후로도 우리는 곧장 신제품, 또 신제품을 출시하며 자금 때문에 고생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높은 산을 올라가면 고생하는 것처럼, 힘들게 가고 있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임을 믿는다. 편하다면, 그것은 내리막길이겠지.

 우리가 이사를 한 후로 곧바로 코로나가 터졌으나, 시골 사는 우리는 코로나의 영향을 거의 모르고 살았고, 시골로 이사 온 후 나는 왕성한 글쓰기 활동을 해서 소설가로 등단도 했고, 동화작가로 데뷔도 했다. 시골에 온 후로 스트레스라는 것을 거의 모르고 살며, 바쁘지만 굉장히 신난다. 작은 사옥을 지은 그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창업 초기에는 참고할 만한 책도 많고 콘텐츠도 넘쳤다. 유명해지고 난 다음 성공한 사례들도 엄청 많이 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창업에서 성공으로 가는 그 중간 단계의 이야기는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사업 십 년, 문턱을 넘어 성공으로 가는 걸음걸음을 기록으로 남겨 본다.




회사에 놀러 다니는 기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