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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Dec 17. 2023

어차피 꿈의 직업은 없다

   

 충북으로 이사 오고 난 후에 가외수입이 늘었다. 농가에서 일손을 돕고, 지방 행사에 알바를 뛰었다. 지방 유튜브 기자로도 활동했다. 시골에 이렇게 일할 거리가 많은 지, 이사를 오고 나서야 처음 알았다.

 충북으로 이사를 온 첫해에 코로나19가 퍼졌다. 회사 매출이 떨어지자 나는 조금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알바라도 해서 회사를 돌려야 하는 거 아냐...?’

 실제 알바를 하려고 알아보니 일자리는 차고 넘쳤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편의점, 치킨집과 같은 기본적인 단순노동을 하는 곳은 물론, 택배 배달, 공장 취업까지. 중년을 향해 가고 있는 여성도 장벽 없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무척 많았다. 그중에 생수 배달만 전문적으로 하는 택배 배달업을 뽑는 곳이 있었는데 수입이 꽤 짭짤할 것 같았다. 웬만한 물량은 끌차로 끌면 되고, 생수 두 박스 정도는 계단을 올라서도 짊어지고 나를 수 있을 체력도 자신했다. 사지가 멀쩡하고 신체 건강하니 일을 하는데 문제가 전혀 없어 보였다. 내 일을 하며 숱하게 짐 옮겨 나르고 까대기 한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생수배달은 회사 일을 마치고 투잡으로 저녁에 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구미가 당겼다. 알아보던 중 이래저래 다른 일들이 생겨서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이런 보험이 생겼다.

 ‘정 안되면 생수 배달이라도 하면 되지.’

 내가 월급을 벌어, 직원들 월급 정도는 충당할 자신이 있었다. 여의치 않다면 낮에 각종 공장들에 취직을 해서 일을 할 수도 있었다. 주말만 뽑는 일자리도 많이 있었다. 일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만한 일거리는 많았다. 최저임금도 많이 올라 웬만큼 작정하고 알바를 뛴다면 200만 원에서 300만 원쯤이야 충분히 더 벌 수 있었다. 전략과 노력에 따라 그 이상을 벌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어릴 적에는 첫 직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도 많이 보았으며 부모님 체면까지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30대가 넘어서니 일을 함에 있어서, 그리고 돈을 버는 것에 있어서 어릴 적 생각했던 것만큼 체면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일 해서 돈 벌겠다는데 남들의 시선 따위야 무슨 상관인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많은 이들이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해 차선을 택하고, 잘하던 일도 그만두고 이직을 하거나 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30대 후반이 된 나와 내 친구들이 하고 있는 일을 살펴보면, 20대에 처음 했던 일을 현재까지 쭉 하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어차피 꿈의 직업은 없고 내가 원했던 직업도 막상 해보면 다양한 장애물이 있으며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기에. 어떤 일이라도 내 마음에 100% 드는 것은 없기에.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대기업 취업을 준비했던 청년들이 그렇게도 조기퇴사를 결심하는 비율이 늘었는지도 모른다. 일을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간접적으로 보는 것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의 진면모들이 있기 때문일 테다.      

 하다 못해 동네 체육관을 등록해도 체험 수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을 함에 있어서 체험 한 번 없이 막무가내 시험 준비부터 한다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하거니와, 그렇기 때문에 일 자체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일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지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 이 직장을 갖지 못해서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일으로 꿈을 이루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만나 당황하고 좌절하는 마당에, 간절히 꿈꾸었던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일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낮추면 더 편하게 일을 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을, 돈을 번다는 일념 하나로 바라보는 것도 그 일을 오래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돈을 잘 버는 순으로 일을 정렬하여 지금 당장 내가 가장 잘 벌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일을 분류해 볼 수도 있다. 내가 다시 20살로 돌아간다면, 대학 진학이 아닌 일을 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양어선을 타든, 알바를 서너 개씩 뛰든. 돈 그 자체만 목표로 두고 달린다면 몇 년 사이에 목돈을 만지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고, 그 돈을 밑천으로 다음 단계를 도약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20대 후반에 돈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았던 나는, 아껴 쓰며 통장 잔고를 불리는 것에 몇 년간 최선을 다해 보았다. 그랬더니 돈은 정말 정직하게 한 푼 한 푼 쌓여갔고, 목표했던 목돈도 단기간에 손에 쥘 수 있었다. 만일 그것을 5년 더 빨리 시작했다면 아마 좀 더 창의적으로, 전투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업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활에 있어서 사업을 우선순위로 둔다. 일을 하며 글도 쓰는데, 글은 일종의 나의 꿈이다. 글을 쓸 때는 돈을 벌겠다는 큰 기대가 없다. 원래 작가들이 글을 쓰는 목적이 큰돈을 벌기 위함이 아님을 알기도 하고 생계형으로 돈을 벌자고 마음먹으면 하기 싫은 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원고료 없이 지면에 글을 올려 달라거나, 내가 관심 있지 않은 주제의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정중히 거절할 수 있다. 그런 압박이 없으니 글쓰기는 그야말로 나의 고급 취미생활이자 자아실현의 수단이 되었다. 게다가 부수익도 올려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하지만 사업은 다르다. 나와 직원들의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사활을 걸고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하는 일이다. 사업은 조금 더 고되지만 대신 더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고, 사업에서 지친 일들을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게다가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 많은 글감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과 꿈은 별개로 떼어 놓는 지금의 내 선택에 스스로는 만족하는 편이다.     


 남의 주머니의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일은 원래 고된 일 같다. 어릴 적 아낌없이 퍼주는 부모님의 비호 아래 쉽게 살았던 날들이 얼마나 편했던가 생각해 본다. 그렇지만 그런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본인들이 꿈이나 일을 위한 것이 아닌 단지 생활비를 위해 전투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나에게 맞추어주고 내 입맛에 맞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면 된다. 그건 학원비를 냈을 때 학원에서 받는 고객 대접인 것이다. 하지만 돈을 내고 일을 할 때에는 다른 누군가에게 고객 서비스를 해야만 한다. 누군가가 욕을 하거나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닌, 그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는 것도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어쩌면 일을 찾기가, 일을 하는 마음 가짐이 더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눈알 빠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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