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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03. 2022

엄마의 첫 호캉스

 지방에 사는 엄마가 서울 갈 일이 생겼다. 보통 우리식구는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동생 집에 끼여 자곤 한다. 동생 집이 있으니 서울에서의 숙박은 당연히 무료다. 숙박료에 굳이 비싼 금액을 지불한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번 부모님이 서울에 오셨을 적에, 롯데호텔을 하루 끊어 드렸더니 무척 만족하신 듯 보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다시 찾은 서울이었다. 이번에도 동생 집에서 하루 묵는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슬그머니 호텔을 예약했다.

 부모님은 평생 좋은 호텔에서 호화롭게 여행하는 걸 해본 적이 없다. 늘 가성비를 따지고, 평생 아끼고 모으셨다. 같은 연배의 다른 부모님들처럼 말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휴가를 가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호텔을 결제하는 비용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연중행사도 아닌, 그보다 더 가끔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가장 더웠던 8월 중순, 가격도 가장 비싼 성수기 때. 엄마를 신라호텔로 모셨다. 엄마는 호텔 가격이 얼마인 지 아직도 잘 모른다. 한 20만 원 지불한 줄 알고 깜짝 놀라셨다. 하지만 이 날 하룻밤의 호텔비는 나의 두 달치 월세였다. 연일 지속되는 코로나의 타격으로 매출도 심각하게 나쁜 달이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좋다는 호텔에 가서 실컷 먹고 놀고 즐기고 싶었다. 부모님이 아프고 난 후에 좋은 곳을 보며, ‘아 엄마와 함께 왔으면 좋았을 걸’ 하며 후회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여동생도 반차를 내고 왔다. 우리 셋 다 처음으로 가 본 호텔이었다. 호텔 처음 가 본 사람들 티를 내며 두리번 두리번 로비에서 사진을 찍고, 고층에서 바라 본 뷰가 좋네, 침구가 좋네, 화장실이 끝내주네, 호들갑을 떠는 식구들을 보니 내 기분 더 좋아졌다.

 무척 더운 날이었기 때문에 야외 수영장으로 바로 나갔다. 래쉬가드를 처음 입어보는 엄마는 수영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엄마를 빠뜨려서 함께 수영을 했다. 선베드에 앉아서 치킨과 짬뽕을 시켜먹었다. 치킨과 짬뽕 가격에 엄마가 금을 넣었냐 은을 넣었냐 궁시렁 댔다. 동생과 나는 이런 데 와서는 그런 생각 안 하고 그냥 먹는거라고 했다. 그래놓고 결국 엄마가 제일 맛있게 드셨다.

 엄마는 처음엔 수영을 안 한다고 하더니 해가 져서 문을 닫을 때까지 수영장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밤이 되어도 날씨는 후덥지근 했고 물은 시원했다. 흘러 나오는 음악은 감미로웠고, 찍은 사진은 하나같이 끝내주게 잘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엄마는 쓰러져 잠들었다.           


 조식을 먹고 차를 마시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여느 호캉스족들처럼, 그냥 구경하고 수영하고, 먹고, 누워서 쉬었다. 그렇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엄마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간 엄마는 서울에 들를 때마다 매번 동생집을 대청소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무척 싫었다. 엄마는 동생과 내 집에 올 적마다, 굳이 꺼내지 않으면 모를 책장 밑이나 소파 뒤의 먼지까지 다 뒤져서 치우고 간다. 엄마라고 딸네 집에 왔는데, 가만히 자고 가기 미안했나보다. 그랬던 엄마가 선베드에 누워서 하루종일 빈둥빈둥 쉬다 가는 걸 보는 것이 내 마음이 편했다. 엄마에게 좋았냐고 물어보니 매년 가도 좋다고 하셨다.      


 ‘그러게 엄마, 돈 모아서 꽁꽁 숨겨두면 뭐해.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다 좋은 곳 가보고 즐기며 사는데 우리라고 못 할 거 없잖아.’     


 다음 날 지인 아들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 엄마를 예식장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다. 엄마가, 딸들과 호캉스를 하고 왔다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엄마가 호텔에서 참방참방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올 여름 큰 일을 해낸 듯 뿌듯한 휴가였다. 비록 엄마 뒤치다꺼리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일정 짜기, 짐 들기, 기사노릇 하기) 세상에 하나뿐인 내 엄마, 내가 가장 잘 챙겨야지.     


 엄마, 우리 다음엔 어딜 가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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