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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14. 2022

아빠는 정말 아들이 없어도 괜찮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에게는 제사를 지내줄 아들이 없어도 괜찮을까? 이게 웬 구시대적인 소리? 이제 제사가 없다는 것이 결혼 시장의 스펙이라 여겨지는 시대에. 하지만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몰라도 아빠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다를 테다.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제사 때마다 절을 해왔으니까. 할아버지들과 아버지의 제사를 평생 지내온 아빠가 이런 생각을 안 했으면 이상하다. 아들이 없는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시면 제사 대신 성당에 미사나 한 번 넣어 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언젠가 아빠에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아빠 기일이 오면 통영에서 하던 음식 그대로 해서 세상 융숭하게 제사를 지내겠다고 했다. 아빠는 손사래를 치며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오지 않았다. 엄마는... 엄만 통영식 제사가 싫다고 한다. 후후. 네 어머님 명심하겠습니다.

    

 아빠는 5형제 중 맏이고 집안의 장손이었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단독으로 겸상을 하고 삼촌, 고모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귀하디 귀하게 컸다. 그 시절의 장남이 받는 대우란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동생들에게 없는 것도 아빠에게는 있고, 동생들이 못 먹는 한이 있어도 아빠는 배 불렀다고 했다.

 아빠가 결혼을 했을 때 집안에서는 당연히 아들을 기대했고 아빠는 진짜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괜찮은 척을 했던 것인지, 아들을 낳을 특별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야말로 요즘 사람들같이 생각했는지 빡빡한 살림에, 전통이나 미래의 일보다 현재를 즐기며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동생과 나 둘 중 하나가 아들이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랬겠지. 그렇지만 아들을 낳으라는 어른들의 말에는 키워 줄 거 아니면 양육비를 달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진짜 아들에 대해 큰 생각이 없는 줄 알았다. 우리가 잘하기만 하면 잘 키운 딸이 열 아들 안 부러울 걸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 남자들 틈에서 일을 하며 지금 30, 40 남자들의 아들과 제사에 대한 욕심을 언뜻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많은 젊은 남자들이 여전히 아들과 제사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것은 남자의 DNA 였다. 아들이 자신의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고 계보를 이어나갈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들 가진 남자들의 속성이었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엄마가 딸에게 친구와 같은 딸이 되길 기대하고 함께 쇼핑을 하고 데이트를 하길 원하는 것과 같은, 아들에 대한 기대일 뿐이었다.     

 우리 아빠가 진짜로 아들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건 내 착각이지 않았을까. 최근에 나는 이것을 확신했다. 어느 날 작은 집 할머니가 나에게 아빠에게 잘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마고 대답했다. 아빠한테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친척 할머니들이 아직도 아빠에게 아들이 없어서 안 서운하냐고 묻는다고 했다. 아빠는 그렇긴 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절대 딸들에게 티 내지 말라고 했단다. 할머니가 그걸 또 나에게 곧이곧대로 전달한다. 그렇구나. 아빠도 아쉬울 수 있겠구나. 아들 있는 집에서 아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주는 것을 보면 아빠는 그것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그런데 아들 없는 아빠가 아들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일 딸이 없었다면 딸 있는 집이 또 부럽지 않았겠는가. 우리 집에 딸이 없었다면 엄마가 또 얼마나 서운했겠나. 아들이 없는 집이 있고 딸이 없는 집이 있다. 딸 아들이 있는 집도 딸 둘, 아들 둘 이상 있지 않은 이상에야, 형이, 남동생이, 언니가, 여동생이 없어서 서로서로 아쉬울 것이다.     


 허례허식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내 기준으로 생각을 해보면 나는 그냥 죽어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그냥 조용히 갔으면 한다. 장례식이 화려하기보다, 내 죽음이 예상된다면 최근 유행하는 것처럼 죽기 전 사람들을 불러놓고 파티를 하든가, 혼자 조용히 기증할 수 있는 건 기증하고 땅에 묻히기도 싫고 어디 안장되기도 싫다.

 점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시대별로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고, 개인별로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다. 그렇지만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만일 우리 부모님이 그래도 저 세상에 가신 후에, 매년 제삿밥을 얻어먹으러 세상에 내려온다 생각하고 가신다면 얼마나 마음 든든하시겠는가. 그리고 남은 우리도 일 년에 한 번 부모님을 정성스럽게 기리는 것이 어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나. 누구라도 부모에 대한 애틋함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들, 딸 가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은 후 보다, 살아있는 현재를 가장 잘 챙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살아계실 때 딸로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대우를 해드릴 거다. 다만 목욕탕을 같이 가 드릴 수는 없으니, 목욕값이나 쥐어드려야겠다. 효도는 그런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할 수 있다면, 아쉬운 건 누구라도 아쉬운 것 같고 아무리 잘해도, 내가 아들이어도, 효도에는 부족함이 늘 서려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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