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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Apr 27. 2020

배를 한 척 살 수 있을까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이런 말이 있길래 받아 적었다.

"배는 사면 기쁘고 팔면 더 기쁘다."

어떤 것을 보든지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만 와 닿는 것이다. 배를 사고 파는 일이 보통 사람에게는 크게 신경 쓸 일일지는 모르나, 배 한 척을 사 보는 것이 소망인 아버지를 두고 있는 나에게는 분명 머리를 때리는 말이었다. 당장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 말을 전했다. 

"한 대 사 주면 두 번은 기쁘겠네."

아빠가 대답했다. 이런 뻔뻔함이 내 아빠의 매력이랄까. 갖고 싶은 것이 집도 아니고 차도 아니고 배라니. 원래부터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흥미로운 아빠이긴 했다. 이런 아빠의 꿈을 지지한다. 나도 아빠도 기회를 보고 있다. 언젠간 우리는 배를 한 척 살 것이다. 배를 사서 뭐 하냐는 엄마의 핀잔을 우린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살면서 나를 가슴뛰게 하는 일이 몇 가지나 있을까. 배 한 척을 사서 내 마음대로 고기 낚으러 다니고 싶다는 아빠 소망을 들어주는데 조금 과한 지출을 해야 한다 하더라도 아깝지 않다. 아빠는 늘 내가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이것은 핑계를 찾기 위해 하는 말이다. 그냥 사 주고 싶다. 내가 더 사고 싶다. 배 한 척 몰고 다니는 근사한 아빠라니. 빨리 보고 싶다.


 사실 중고로 배를 한 대 사는 것이 그렇게 천문학적이게 비싼 것은 아니었다. 배를 팔아 기쁜 어느 누군가가 저렴한 값에 내어 놓은 좋은 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를 산다는 것은 휴대폰을 산다거나, 옷을 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배를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가지고 있거나, 없다면 임대료를 내고 써야 했으며 그래도 조금은 자주 배를 타고 놀아야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텐데 은퇴를 한 아빠가 돌연 다른 좋은 자리에 스카우트 되어 배를 타며 신선놀음을 하는 아빠의 은퇴 후 계획이 조금 어긋나 버렸다. 몰래 중고 배 판매 사이트를 훔쳐보던 내가 방향을 선회해 자동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10년도 넘게 탄 차가 하나씩 말썽이라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아빠가 아직 출퇴근도 더 해야 하니 새 차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배와 견주자니 자동차는 금액도 저렴해 보이고 게다가 10년 할부까지 된다고 하니 부담이 훨씬 덜했다. 혼자 이 차 저 차 비교 해보며 색상까지 골랐는데 또 퇴짜를 맞았다. 마침 때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세계 경제가 난리통이었다. 내가 직장인처럼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직업도 아니면서 이 어지러운 시기에 차를 사준다는 것이 못내 걸리셨나보다. 하지만 마침 그랬기에 자동차 취등록세를 절감 해준다는 말이 있어서 나는 그만 혹해 버렸던 것이다. 10년을 일했는데 몇 달 상황이 어렵다고 아무것도 못 살 정도겠냐며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었으나 부모님 마음은 또 그게 아닌가 보다. 생일용돈도 평소보다 덜 부치라며 '부탁'까지 하는 통에 나는 속으로 돈이 굳었다며 좋아하기도 했지만 뭔가 썩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차를 사지 못하게 '또' 퇴짜를 맞았다는 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부모님 환갑을 기념해서 차를 바꿔 드린다고 했다가 아빠가 노발대발을 해서 나는 괜히 좋은 일 하려다 욕만 들었다. 아빠는 내가 너무 애 같지 않아 부담스럽다고 한다. 나도 내일 모레 사십인데... 부모님이 선물을 받을 때는 기쁨의 마지노선이 있는 것 같다. 스카프 같은 악세서리 하나 사드리면 정말 좋아하며 기쁘게 받는다. 용돈도 10만 원이면 부담 없이 받는다. 얼마나 부담이 없을 정도냐면 거의 뺏아가다 시피 한다. 나와 식사 하러 가면 동생을 포함해서 식구들 아무도 지갑을 안 들고 나온다. 당연히 내가 살 줄 아는 것이다. 식사 한 끼 정도는 기분 좋게 드시는 것 같다. 그마저도 가격이 좀 비싸지면 아빠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심각하게 이건 아빠가 계산을 할 거라고 한다. 어떤 달은 나의 수입이 아빠보다 훨씬 많을 때도 많은데. 아빠는 아빠의 월급으로 네 식구를 부양해야 하지만 나는 버는 돈이 온전히 다 내 것인데. 아직은 부모님에게 이만큼의 믿음은 주지 못했던 것일까. 부모님은 내가 좀 더 여유로워 져야 이정도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내가 얼마나 여유있어 보여야 눈치 안 보고 선물을 할 수 있을까. 괜히 오기가 생긴다. 


 선물을 마다하는 부모님 마음이 이런 것 아닐까. 공짜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선물이라면 거절할 리 없겠지만 자식이 고생해서 돈을 벌었단 것을 알기에, 이 선물을 사면 자식이 원하는 다른 것을 사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어린 아이 손에서 과자 뺏어 든 것 같은 기분일 거다. 그러니 집에다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괜찮다, 잘 살고 있다, 다 잘 되고 있다 말해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 것이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쯤 배를 한 척 살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아빠한테 배 한 척을 사 드릴 수 있을까. 어린 내가 원하는 걸 가졌다고 좋아서 팔딱팔딱 뛰면 아빠는 기뻐하셨다. 나도 멋진 이름을 새긴 배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아빠를 보고 흐뭇해져 보고 싶다. 멀지 않은 미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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