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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30. 2022

옛 집이 허물어진다

 내가 4살이 되던 1987년 겨울에, 우리 집은 방 두 칸의 5층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 집으로 이사를 가던 날의 장면이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이다. 이사를 한 다음 날, 잠에서 깨어, 여긴 우리 집이 아니라고 울었던 기억도 난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그 집의 주소는 5동 314호. 전화번호는 0551-87-3686이었다. 혹시 내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집을 못 찾게 될까봐,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단단히 외우도록 엄마가 일러주었다.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그 집에 살았고 나의 유년기의 모든 기억이 그 집에 남아있다. 그 옛 집이, 이제 허물어지고 재개발이 된다고 한다.

 벌써 그 집이 재개발할 나이가 되었구나... 네 살이었던 나는 언제 이렇게 큰 거지?


 앞 베란다와 뒤 베란다가 넓은 집이었다. 가스보일러가 들어오기 전에는 연탄보일러를 썼다. 겨울이면 베란다로 나가 시간 맞추어 연탄을 갈아주어야 했다. 검은 연탄을 넣으면 그것이 몇 시간 후에 살색 연탄으로 변해서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살색으로 변한 폐연탄은 쉽게 바스러졌다. 그게 재미있어서 연탄 꼬챙이로 살색 연탄을 살살 부숴 종국에는 베란다를 초토화시켜놓았다. 처음에는 아주 조금만 부숴 보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까 멈출 줄을 모르고 쌓여 있는 여러 개의 연탄을 모두 잘게 다져 놓았던 것이다. 엄마의 고함 소리가 5층짜리 아파트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우리 집은 3층이었는데, 베란다 창문 앞에 서면 바깥 풍경이 다 보였다.

 엄마는 그곳에서 내가 큰 도로를 건너 학교 갈 때마다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는 그 베란다에 서서 퇴근하고 오는 아빠를 우렁차게 불러댔다. 어렸던 동생은 작은 키가 베란다 창문에 닿지 않아, 딛고 올라서서 볼 수 있도록 간이 의자를 하나 놓아주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그 의자에 올라가서 작은 머리를 들이밀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래서 창문에 설치해 놓았던 새시는 항상 바깥쪽으로 쭉 늘어져 있었다.     


 밖에서 동네 아이들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으면 엄마들이 베란다에서 소리치며 밥때를 알렸다. 여름이면 아파트 통로 앞에 늘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우리는 밥을 짓는다며 풀을 찧고, 어디서 구해온 스티로폼을 시멘트 바닥에 갈아서 온 동네가 스티로폼 부스러기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초등학생 시험 성적이 뭐 볼 게 있다고, 시험 성적을 잘 못 받으면 엄마가 나가 놀지 못하게 했는데, 그럼 베란다로 밖을 내다보며 애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였다. 나는 3층부터 1층까지 조용히 걸어 내려가는 법이 없었다. 항상 계단 3,4칸을 남겨 놓고, 안전바를 잡고 한 번에 쿵 하고 뛰어내렸다. 그러니까 내가 1층까지 내려가려면 대 여섯 번 정도 쿵쿵 찧으며 굉음을 내고 다녔던 것이다. 1층 사는 아줌마가 내가 내려오는 걸 기다리고 있다가 “혜미야, 좀 조용히 다녀” 하면, 나는 씩씩하게 “네에” 대답하고 쌩하니 나갔다. 다음 날에도 쿵쿵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빨아준 침구와 빨래에서는 늘 햇살을 머금고 말린 뽀송뽀송한 냄새가 났다. 좁은 집이었지만 네 식구가 모여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4인용 낡은 식탁이 있었고, 유리상판이 덧대어진 식탁엔 엄마가 오려 붙인 가족사진이나 좋은 글귀, 네 잎 클로버 같은 것이 끼워져 있었다.

 소파도 없이 안방 티비 앞에 다 같이 둘러앉아 티비를 보았는데 일요일에는 날아라 슈퍼보드, 전국 노래자랑, 우정의 무대를 차례로 봤다. 보는 동안 엄마가 라면을 끓여 주었는데 나는 라면에 대파가 들어가는 게 싫다며 골라내고 먹었다. 라면 국물에서도 파 맛이 나는 것이 싫어서 한참 더 클 때까지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 후로 우리 집은 이사를 두 번 더 하게 되었다. 지금은 나와 동생이 완벽히 독립을 하며 부모님 두 분만 사시는데, 전에 살던 집보다 두 배 더 넓은 신축 아파트로 옮겼다. 엄마는 처음으로 그렇게 큰 집에 이사 가서 매우 만족했고 동생도 드디어 자신만의 방이 생겼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그 집이 낯설고 어색했다.

 요즘 아파트들은 모든 집들의 구조가 다 비슷하게 생겼다. 집 거실에는 다른 집처럼 티비와 소파가 놓여 있고 방바닥에서 옹기종기 모여 자던 네 식구의 기억 대신 각 방마다 침대가 하나씩 놓여 있다. 호텔이나 잘 관리된 펜션 같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그 새 집의 비밀번호를 외우지 못했다.


 새 아파트에는 여름이면 아파트 단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용 풀장이 개설되었다. 아빠는 그것을 볼 때면 물놀이 좋아하는 우리가 더 어릴 적 이런 곳으로 이사를 왔으면 좋았을 거라며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았던 옛 아파트에는 두꺼비집을 지을 수 있는 모래놀이터가 크게 들어서 있었고, 아파트 상가에는 우리가 가슴 두근거려 할만한 뽑기놀이가 가득 있었다. 아파트 담장도 넘기 쉽게 만들어져 있어서 그 담장을 오르내리며 바이오맨, 후레쉬맨 놀이를 했었다. 이건 요즘 아파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귀한 놀이들이었다.

 어릴 적 살았던 집은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이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꿈과 희망을 키우며 살기에, 부모님과 살았던 옛집은 모두 좋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랬고, 아마 지금 부모님이 사는 동네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그곳에서 나름의 신나는 추억을 많이 만들 테다.   


 다음 주에 부모님 집에 내려기로 했다. 낯설어진 부모님 집은, 이제 외박하러 가는 곳이 되었다. 어쩌면, 옛 집에 처음 이사를 가서 낯설다고 울었던 것처럼 아직 새 집에서 별다른 추억을 만들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옛 집이 사라져 가고 마을의 모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져간다. 우리는 옛것을 그리워 하지만, 현재 누리고 있는 환경들도 조만간 옛것이 될 것이기에, 아쉬워하거나 그리워 하기 보다 그저 하루하루를 특별히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집에 가서 좀 오래 머무르다 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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