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mi Lee Jun 28. 2022

아빠가 새벽에 잠을 청할 수 없었던 이유

 나는 우리 부모님 세대야 말로 가장 힘든 시대를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나이 또래의 많은 부모님들은 할머니 세대를 봉양했으며 자식 세대들에게 손 벌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빠가 팔순이 넘은 할머니에게 생활비를 부친 지 30년이 넘었다. 그리고 딸 둘을 40년 가까이 키웠다. 이 말은 여섯 살 터울인 나와 동생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이전의 시간이 40여 년이란 것이다. 그 세월 중 우리가 스무 살이 넘어서는 둘 다 집을 나와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학비부터 집세에, 유학까지. 억 소리 나게 아빠 돈을 끌어다 썼다. 드디어 어느 순간 아빠 카드를 긁지 않겠다고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을 때 얼마나 가뿐했을지... 그렇지만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돈을 벌게 된 우리는 언젠가 부모님이 연로해지면 매월 생활비를 쪼개 부치며 부모님을 전적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노후준비는 부모님 몫이라 생각하고 부모님 역시 우리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치열하게 본인들의 인생 계획을 잘 짜서 살고 계신다.


 어렸던 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때마다 아빠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숱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사교육비는 어쩌지, 대학을 간다면? 대학원을 간다고 하면? 독립을 한다고 하면? 아빠의 월급을 아무리 쪼개 보아도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더라고 했다. 그래서 아빠가 부득이 선택했던 것이 투잡이다. 엄마도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아빠 엄마의 30대, 40대, 50대는 본인들이 없었다. 우리를 키우는 삶만이 존재했던 듯하다. 아빠가 우리에게 따뜻하진 않았어도 지나치게 일을 열심히 하셨다. 그래서 인정한다. 아빠의 조금은 퉁명스러웠던 젊은 시절의 세월을.


 내가 어릴 적 기억하는 아빠는 몹시 예민한 사람이었다. 잠을 자다가도 조금만 시끄러우면 일어나 고함을 지르기 일쑤였다. 아빠가 낮잠이라도 자는 날이면 우리는 집에서 쫓겨나 밖에서 놀아야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집에 가서 보면 저녁 9시만 넘어도 티비를 보던 아빠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비몽사몽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간 아빠는 거실에서 우리가 떠들든 말든 코까지 골며 잠을 잔다. 그토록 편하게 잘 잘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서. 얼마나 큰 중압감이 평생 아빠를 옥죄고 있었던 걸까. 


 나는 지금 혼자 살며 내 일을 하는데 가끔 내가 원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일 년이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 사실 회사를 살포시 동료들과 직원들에게 맡긴 후 자유시간을 누리고 돌아와도 된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태반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 따위는 없다. 먹여 살려야 할 식구도 없고 부모님도 건장하시다. 

 아빠는 지금의 내 나이에 할아버지를 잃었다. 그런데 하필 집안 사정이 썩 좋지 않았을 때라 물려받을 것도 없었다고 한다. 평생 가정주부로만 살았던 할머니를 아빠와 삼촌들이 책임져야 했다. 당시 나는 여섯 살, 그리고 동생도 태어났다. 아빠의 월급은 정해져 있었다. 열심히 한다고 성과급이 두둑이 주어지는 일도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이 무게를 어떻게 견딜까. 예전에는 노력하면 집 살 수 있었다고 하는데 아빠를 보니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집이 전세 살다가 온전히 우리 집을 샀던 것은 그나마 아빠가 40대 중반이었는데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았고 빚을 냈으며, 그걸 갚으며 살려니 네 가족 먹고사는 게 너무 빠듯했기 때문에 엄마가 슈퍼 장사를 시작해야 했다. 아무 사정이 없는 집이야 월급 남는 거 따박따박 저축했겠지만 동네에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만일 서울에서 집을 살려고 했으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지방이었기 때문에 20평대 아파트를 산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 비슷하다. 현재 2022년 기준으로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의 아파트도 1억대고 작은 평수는 1억 미만이다. 지금이라도 뭐 못할 것 없이, 내가 아빠처럼 밤낮으로 일하고 돈을 모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아차, 그런데 나에겐 봉양할 부모도 없구나. 훨씬 유리할 테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까 아빠는 이 모든 걸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그런데 그 시절... 아빠가 이 악물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했던 시절 나는 사춘기여서 아빠한테 말 한마디를 안 했구나. 아빠도 서툴었겠지만 나도 딸이 처음이라서 참 서툴렀다. 아빠가 회사 일을 마친 후 슈퍼에서 엄마 일을 도와주고 늦은 시간 집에 왔을 때 아빠한테 따발총처럼 다다다다 대어 들고 문 쾅 닫고 들어갔던 10대 소녀였다. 난 속상하니까 방에 들어가서 울었다. 아빠가 미웠고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부하기 싫은데. 지방에서 살기 싫은데. 해 준 것도 없으면서 큰소리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겠지. 20여 년이 지나고 나니, 문 쾅 닫고 들어가서 운 소녀보다, 딸이 문 닫고 들어갔을 때 끓었을 아빠의 속이 더 마음 쓰인다. 

 겨우 40대밖에 되지 않았던 젊었던 아빠. 그 날 아빠도 속으로 울었을까? 20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해본다.





 ...미안해요.










이전 21화 아빠는 원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