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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Nov 06. 2021

아빠는 원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동생이랑 아빠가 싸웠다.

 둘 다 한 고집한다.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다 똑같다. 잘잘못을 따지기도 어렵고 무슨 일 때문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걸로 싸웠다.

 마침 동생은 오랜만에 연차를 써서 휴가차 집에 내려가 며칠을 있었는데 아빠랑 동생 둘 다 엄마랑만 얘기를 한다고 한다. 무슨 동생이 사춘기도 아니고 아빠도 나이가 있는데 둘 다 왜 그러나 모르겠다. 몇 번 중재하려고 했지만 멀리서 입만 더하는 것도 웃기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알아서 화해하겠지.


 원래 아빠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이해할 필요도 없다. 가족이란 본디 평생 이해 못하는 존재다. 가까우니 더 그렇다. 우리가 어릴 적 아빠도 우리를 이해 못했지만 그냥 키웠다. 꼬마 시절의 똥고집도 이해 못했을 거고, 사춘기 시절의 낯선 딸들이 당연히 이해가 안 되었을 거고, 크고 나서 살아가는 모습에도 아빠 눈에 이해 안 되는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우리보다 오래 살았고 고집도 있는 아빠를 이해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그냥 통으로 사랑하면 된다. 내 입맛에 맞게 내 생각에 맞춰서 사랑하면 사람 사이가 힘들어진다.


 대한민국 아빠 중 과연 몇 퍼센트나 가족들에게 다 이해받고 살까? 그럼 대체 대한민국의 자식들 중 몇 퍼센트가 부모에게 이해받고 살까? 엄마들이 말하는 '내 자식이지만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는 업계의 정설이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의 우리를 물심양면 지지하셨다. 그런 부모님을 과연 나는 선이해 후 사랑해야 할까.

 아빠는 술 마시고 사고를 친 적도 많고 성질을 참지 못해 집안의 잡동사니도 무수히 때려 부쉈다. 나는 큰 딸이라 아빠가 아빠로 성장하는 과정 중의 시행착오를 정면으로 맞았다. 어릴 적 집에서 쫓겨난 적도 많고 상처되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아빠의 딸이라고 나 또한 아빠 앞에서 기행도 많이 부렸고 똑같이 아빠에게 상처를 줬으며 딸이 딸로 성장하는 과정 중에 나도 모르게 서운함을 많이 안겼을 것이다. 나는 아빠 앞에서 동생보다 더 많이 울며 불며 싸우고 자랐다. 굳이 이 과정에서 누가 더 잘했고 잘 못했는 지를 따질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아빠가 나를 더 아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키우려고 공부도 많이 시키고 세상 경험도 많이 시켰으니 이제는 아빠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좋은 걸 누리고 큰 내가 아빠를 그냥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할 때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내 감정을 사랑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 사람에 대한 욕심은, 실은 나에 대한 욕심일 때가 많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똑같이 적용되는 일이다. 연인에게,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세상에 꼭 나 같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원래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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