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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01. 2023

시골에 사는데 왜 더 시골로 들어가?-강원도 원주편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

 처음 시골에 왔을 땐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아파트 창 너머로 보이는 논밭 풍경, 강아지와 나의 비밀장소라 부르는 산책로, 베란다에 빨래를 널면 옷감에서 나는 쨍한 햇볕의 냄새. 모든 것이 축복이고 행복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한 3년을 같은 곳에서 살다 보니 별 감흥이 없어진다. 으레 당연할 뿐이다. 이보다 더 나쁜 환경으로 바뀐다면 참을 수 없겠지만, 지금 상태가 매일 몹시 좋다고는 말 못 한다. 스트레스받을 곳도 없이 누구보다 행복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쯤 변화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때 우연히 문학인이라면 들어갈 수 있다는 토지문화관을 알게 되었고, 문화관이 위치한 강원도 원주면 내가 사는 충북 음성과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에 무심결에 지원서를 썼다. 지원을 하면서도 내심 걱정했다. 혼자 20평짜리 아파트에서 여유롭게 살던 내가 10평 채 되지 않는 원룸에서 살 수 있을까. 무척 집에 오고 싶을 것 같은데. 뭐, 신청했다 떨어져도 상관없고. 붙으면 고민해 보자. 그런데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하는 일은 의외로 잘 붙기 마련이다. 나는 2023년 5월, 원주의 토지문화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전 정보가 많이 없어서 걱정이 많았다. 시설도 매우 좋고 식당에 가기만 하면 삼시 세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원룸으로 된 방에는 싱크대도 없었고, 운동할 곳도 당연히 없었으며 반경 2km 내에 편의점 하나 없었다. 집 떠나 1박도 하기 싫어하는 까다로운 내가 과연 낯선 침대에서 잠을 청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쓰던 이불과 베개부터 요가매트, 아령, 캡슐커피머신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원주로 향했다. 작은 승용차의 트렁크와 뒷좌석까지 가득 찼다. 토지문화관은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흥업면 매지리의 몹시도 자연친화적인 시골길에 빨간 지붕의 토지문화관 건물이 위엄 있게 들어앉아 있었다. 뽑기로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첫날부터 나는 그곳에 완전 매혹되어 버렸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드립 커피 한 잔을 내렸는데 커피가 너무나 향기롭게 내려졌다. 기분 좋은 사인이라 생각하고 레지던스 주위를 한 바퀴 걷는데 봄을 알리는 개구리 소리와 5월의 풀벌레 소리들이 조용히, 또한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밤에는 산에서 고라니나 멧돼지가 내려올 수도 있으니 외출을 삼가라는 말에 흥분이 됐다. 우리 회사는 멧사냥꾼들을 위한 사냥용품을 판매하고 있으니 나는 그들이 퍽 친숙하다. 어둠이 내리자 고라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새로 온 손님들을 격하게 맞이하는 기괴한 외침에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잘못 들으면 웬 여자가 두들겨 맞으며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인데 말이다. 우리 집에서도 간혹 고라니 소리가 들리긴 하나 굉장히 먼 곳에서 짧게 울다 그친다. 벌레 소리, 고라니 소리를 들으며 노트북을 켰다. 비로소 시골다운 시골에 정착한 느낌이 들었다. 글이 절로 써질 것 같았다. 그런데 첫날 내가 한 일은 글을 쓰는 대신, 이런 좋은 시골의 레지던스가 또 얼마나 더 있을지 검색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내는 소음이 없는 조용한 가운데 자연의 ASMR을 들으며 기분 좋게 잠을 청한 후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글을 썼다.

    

 고요한 문학관에는 문인 및 예술인 20여 명만이 오로지 예술적 성과를 목표로 짧은 기간 머물고 있었다. 나와 같이 개인적인 성향을 가진 문인들이 많았고 거의 모든 분들이 나의 선배님들이었는데 누구도 내 방의 대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전해줄 것이 있으면 문에 걸어놓고 쪽지를 써 붙여 주셨다. 혹시 창작하고 있는 찰나에 방해를 할까 봐 그런 배려였다. 종종 붙어 있는 쪽지를 보며 선생님들의 마음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다. 안면을 트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단방에 날아가 버렸다.     


 토지문화관에는 입주작가들이 살고 있는 레지던시 건물보다 훨씬 큰 면적에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박경리 선생님은 거기서 손수 경작을 하시며 후배 문인들이 오면 밥 한 그릇 따뜻하게 먹여 보내거나, 정성껏 재배한 작물들을 손에 들려 보내셨다고 한다. 나는 글을 쓰는 박경리 선생님을 따라 하는 대신 경작을 하는 모습이 괜스레 따라 하고 싶어 근질근질해졌다. 원래 하루에 한 끼는 고구마나 삶은 달걀과 같은 간편식을 먹고, 저녁만 밥을 챙겨 먹는 나는 처음에 토지문화관에서 제공하는 삼시 세끼를 먹으며 소화불량이 생길 것 같았다. 일하시는 주사님에게 열심히 인사하며 잘 보인 후 밭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5월엔 할 일이 많았다. 파뿌리도 흙에 묻고, 감자 이랑도 손 보아야 했고, 계속 올라오는 잡초도 뽑아야 했다. 열심히 일했더니 주사님이 예쁘다고 조카 분을 만나보라며 소개도 시켜 주셨다. 참한 척 밭일을 도우니 이 시골에서도 귀한 소개팅 기회를 얻고. 역시 세상은 열심히 살고 볼 일이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여름이 올수록 개구리 소리는 점차 우렁차져 갔다. 황소개구리의 나팔 같은 소리를 들으며 나는 타이핑을 이어갔다. 두 달의 끝이 보이자 아쉬워진 나는 연장 신청을 했다. 토지문화재단의 방침에 따르면 문인들은 최대 3개월을 머무를 수 있었다. 적응할 수 있을까 어쩔까를 몰라 두 달을 신청했던 나는 마침 빈자리가 생겨 운이 좋게도 7월 말까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 3개월 동안 나는 지난 3년간 쓴 것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나왔다. 나중에 이 글들이 다듬어져 어떤 형태로 세상에 나올지 모르겠지만 글 쓰는 근력이 확실히 붙었고, 토지문화관을 나와서도 여전히 매일 주기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세 달 동안 나는 예정했던 장편소설의 초고를 절반 완성하고, 완성해 놓은 다른 장편소설을 퇴고하고, 단편소설을 두 편 쓰고, 오랫동안 브런치에 기고했던 효도에 관한 주제의 에세이집 한 권을 묶었다. 기를 쓰고 썼다. 소설가로 등단이라는 걸 하고 3년 동안 쓴 것보다 훨씬 성과가 좋았다. 아침에 쓰고, 낮엔 일을 하고 저녁에 또 쓰며 시간을 보냈다.

 회사가 가까웠기에 매주 회사에 다녀왔다. 회사에 나가면 전쟁같이 일을 하고 다시 돌아온 원주의 내 방에서는 다른 세상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글만 쓴 시간이 아니었기에 더욱 값졌다. 앞으로 나는 이 페이스대로 글을 쓸 것만 같다.     


 토지문화관 마지막 날, 주사님께서 잘 익은 수박 한 덩이와 참외를 골라 주셨다. 이제 언제 볼 일이 있겠냐며. 함께 글을 썼던 문인 선배님들도, 직원 분들도, 영원히 볼 것 같았지만 나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객일 뿐이었다. 거의 이삿짐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짐을 싸들고 왔다. 다시 돌아온 집은 편하기도 했지만 낯설었다. 나는 또 다른 시골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다가 처음 만난 시골에 반한 나는 이곳이 시골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도시보다 훨씬 크고 넓은 시골은, 제각각 다른 얼굴의 매력을 갖고 있었다. 부산과 대전이 다른 도시의 매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시골도 저마다의 매력들이 있을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짐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짐을 그대로 싸서 다음 시골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였다.





영상으로 만든 토지문화관에서의 기록

https://youtu.be/9b6CWfH_SO8?si=dSB9hXBjscc6IFq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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