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토지문화관 마지막 달 퇴소를 앞두고 우울해 있던 시점이었다. 마침 그때 받은 함안군 한 달 살기 선정 문자에 나는 세상 시름이 없는 밝은 모습이 되었다. 원주에서 살며 늘어난 여행 살림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커피머신과 에어프라이어, 드립포트까지 몽땅 그대로 챙겨 차에 실었다. 뒷 트렁크가 가득 찼다. 게다가 이번엔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서칭을 해서 반려동물까지 함께 데리고 갈 수 있는 숙소를 잡았다. 길동이를 데리고 처음 떠나는 여행이다. 때마침 여름휴가를 잡은 동생이 합류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왔다. 충북에서 경남까지 난생처음 3시간 운전에 도전을 했다. 길동이는 뒷좌석에 타서 좌우 창문을 쫓아다니며 처음 보는 구경거리에 완전 신이 났다. 날이 매우 좋은 8월이었다. 여름을 낯선 곳에서 보내게 되다니. 이건 휴가철이면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휴양을 가는 유럽 스타일 아니냐며 우린 들떴다. 함안군으로 들어서자 도로 양옆으로 진한 핑크빛의 배롱나무들이 가득했다. 하늘색은 푸르고 구름은 비현실적으로 하얗게 몽글몽글 떠 있었으며 논밭은 짙은 연둣빛이었고 동네마다 둘러싸인 산은 짙은 초록빛을 뿜어냈다. 자연이 주는 원색의 빛깔들은 선이 분명한 유채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모든 작물들이 이글이글 영글어가는 계절. 8월은 뜨겁고 싱그러웠다. 여름방학의 기분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여름방학은 늘 뜨겁고 신나고 반짝반짝 빛났다. 어릴 적 5층 짜리 아파트에 살았는데 여름 방학아침이면 눈 뜨자마자 일단 1층으로 내려갔다. 그늘이 지는 곳이나 아파트 계단에다 돗자리를 깔고 꺅꺅 소리를 지르며 놀았다. 밥때가 되면 엄마들이 베란다를 통해 우리를 불렀고, 밥을 먹고 나면 또 나가서 놀았다. 세 발 자전거와 네 발 자전거들이 동네에 빼곡했다. 자물쇠를 채우지 않아도 잃어버리는 법이 없었다. 여름은 쉽게 해가 지지 않았다. 여덟 시가 되어야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8월이 좋았다. 8월엔 어렸던 우리가 소리 지르며 떠들던 소리가 살아있다.
내가 선택했던 숙소는 마당이 넓은 펜션이었다. 함안군 읍내와도 꽤 떨어진 꼬불꼬불한 샛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오는 집이다. 시골의 정취가 더욱 물씬했다. 당연히 걸어갈 거리에 편의점이나 식당은 없었다. 차가 없으면 완전히 고립되어 버리는 동네였다. 얼마나 고립이 되어 있냐면 와이파이는커녕 LTE도 잘 터지지 않았다. 도시 살 적에는 우리나라 방방곡곡 휴대폰 수신이 안 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 원래는 와이파이가 원래 되었다는데, 펜션 사장님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아 그냥 있기로 했다. SKT를 쓰는 내 핸드폰도 띄엄띄엄 LTE가 끊겼고, 알뜰폰을 쓰는 동생은 아예 어떤 수신도 받지 못해 나의 핫스팟을 공유해서 썼다. 내가 마당에 나가면 인터넷이 끊기기 때문에 동생도 따라 나왔다. 휴가를 몽땅 함안에서 보내겠다던 동생은 한나절을 지내고선 하루 만에 창원의 부모님 집으로 도망가 버렸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나는 제법 만족했다. 온갖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귀를 강타했다. 어찌나 덥던지 태양이 살을 뚫을 듯했지만 펜션 안으로 들어가면 시원한 에어컨이 켜진 작은 방 한 칸이 천국이었다. 조용한 시골에선 잠도 곧잘 왔다. 동이 트기도 전에 우는 새벽닭 소리에 잠이 깼다. 눈 뜨자마자 방문을 열어주면 길동이는 마당으로 뛰어 나가 새벽 풀내음을 맡고 돌아왔다. 잔디가 무성한 마당에 무심결에 발을 내딛으려다가 발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혈목이가 온몸을 뒤틀며 내 발을 피해 가고 있었다.
동생과 강아지와 계획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쏘다녔다. 계곡도 갔다가 바닷가도 들렀다. 동생은 간이 의자에 앉아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가만 앉아 있었다. 모든 곳이 한적했고 조용했다. 가만 집중해서 귀를 열어보면 들어본 적 없는 풀벌레 울음소리들이 들렸다.
나는 내 일을 시작하고부터 한 번도 휴가를 챙겨 떠나본 적이 없다. 차 트렁크에 필요한 모든 짐을 싣고, 뒷좌석에는 강아지를 태우고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든 달려 다닐 수가 있다. 사실 회사는 내 손이 닿지 않더라도 컴퓨터와 휴대폰만 있으면 내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고, 글을 쓰러 다닌다는 명분도 참 좋았다. 떠난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남으라며 붙잡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내가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회사에서 떠나 있지 못했을까.
나는 여행이 싫었다. 짐을 싸고, 낯선 곳에 가서 짐을 풀어야 하고. 낯선 침구에 마음껏 코를 박지 못하고. 또다시 짐을 싸서 집에 오면 역시 집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드는 여행이 싫었다. 특별히 궁금한 곳도 없고 가보고 싶은 곳도 없었다. 살면서 큰 맘먹고 여행해 본 곳들에서 얻은 결론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산다는 것.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 해도 동영상으로 다 볼 수 있잖아? 하는 무감각한 나의 성향 탓도 있다. 일상을 떠나는 것에 대한 환상도 없었다. 매일 사는 게 행복했고,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개들을 돌보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내가 사는 곳도 풍경 좋고 공기 좋은 아름다운 시골인데 이 이상 좋은 곳이 어디 있나 싶기도 했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역시 사주는 사기인가’ 하며 믿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새로운 곳에 와서 산다는 것은 정말 시야가 달라지는 경험이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것이 아닌, 한 달쯤 행낭을 풀고 살다 보면, 매일 걷는 산책로를 만들게 되고 자주 가는 반찬가게와 마트가 정해지고, 떠날 거라 생각하니 눈에 보이는 것들도 더 많고. 사업도, 글도 모두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경남 창원 출신으로 경남에 대한 특별한 호기심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 함과 동시에 집을 떠나 도망하였으니, 벌써 20여 년이나 이 동네에 대해 담을 쌓고 살았다. 이십 년이면 강산이 얼마나 변했으랴, 게다가 어릴 적 가 본 곳들은 거의 부모님의 선택에 이끌려 간 곳이라 감흥도 기억도 많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낯선 동네의 읍내를 걸으며 나는 나의 발도장을 찍는다. 전통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밥을 지어먹고, 강아지를 돌보며 내 시간을 쌓았다. 새로운 풍경과 습관에 대한 글을 쓰고 조용한 가운데 독서를 했다. 회사 사무실에 앉으면 당장 하지 않으면 큰일 날 일들 순서대로 숨 가쁘게 일을 처리하는데 한 템포 숨을 고르고 일을 들여다본다. 일의 우선순위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고 자꾸만 공상을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도, 글도, 그전과 다른 리듬을 갖게 된다. 대단한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니고 별 특별한 일이 생긴 것도 없다. 하지만 일상은 시골처럼 느리게 또한 삽시간에 흘러가 버렸다. ‘나 함안에서 한 달 살았지’ 하고 깜빡 정신을 차려 보니 한 달 살기가 끝나 버렸다. 강아지를 데리고 이렇게 훌쩍 한 달을 떠나 있는 여행이라면 너무나 매력적이잖아?
토지 문화관에 들어가서 내내 새로운 레지던스를 찾았던 것처럼, 나는 다른 시도의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대한 서칭을 또 하게 되었다.
경남 함안에서의 한 달, 영상으로 기록.
https://youtu.be/nXXV4VQYnJs?si=Wzw49r7kx1kXu5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