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AI 파트너십에 대한 고찰
1.
7월 초다. 한여름이라기엔 아직 더울 날이 길다. 어릴적 정서로는 더위가 기승할 날들을 대비하기 위해 초여름 에어컨을 아꼈다. 전기세를 걱정하는 외할머니도 있었지만, 그 해 여름을 나기 위한 우리네 지혜들일수도 있겠다. 대게 땀띠 좀 났다 싶으면 에어컨의 은혜를 경험해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의 최선 끝에 문명을 맞이했다. 나의 여름나기 도전은 매 해 갱신되었다.
우리집은 6월부터 에어컨을 키기 시작했다. 사무실은 말할 것도 없다.
2.
대부분의 업무에 AI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다. 올해 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도구들은 이런저런 유료 모델을 사용하며 반년동안 나의 업무 혹은 일상에 녹아들어 왔다. 마냥 반대하기엔 너무 그 속성을 모르는 게 아닐까 하여 시작한 탐구이지만, 반년이란 시간은 향상된 생산성 속도와 범주에 만족하고 더 구하게 되는 시기인 듯하다. 좀 더 오랜 기간 사용하다 보면 이 도구의 폐단 등으로 정을 떼게 될까 생각도 든다. 아직까지는 이 도구들에 대한 초기 불만; 너무 편리해서 인간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 할루시네이션으로 인한 거짓- 아니 그 조차도 안 되는 허구 사실 등으로부터 오는 혼란과 피로 등은 생산성 AI 모델들이 스스로 성장하는 것과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분별력 향상 혹은 이를 감안한 활용 태도 등으로 무력화되어간다. 초기에 우려했듯, 이 도구들의 편리성을 무시하기엔 윤리가 너무 고리타분하며, 인간 역시 유기체이기에 그 빈 틈을 채워간다.
이쯤 돼서 객관적인 점검을 해보자면 초기 우려와는 조금 다른 우려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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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료:
비슷해 보이던 생산성 도구들은 각자의 주특기가 점점 뚜렷해져 가고, 각각의 구독료가 별도이다. 게다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제한 없는 한계는 새로운 가격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미 유료 모델을 쓰고 있지만, 조금만 완성도를 높이려면 어느새 다음 단계의 유료 버전을 사용해야 한다. AI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적인 프롬프트 구상과 로직들을 고민해야 한다. 아무튼 매월 과금되는 구독료가 아이들 학원 하나 더 다니는 수준이 될락 말락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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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의 재정의:
나는 디자인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다. 계속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 기존 어도비 툴 들에서 피그마까지 확장했다. 코딩도 기본 지식은 있다만 직접 짜기엔 지식이 부족하다. 이젠 AI로 금세 페이지를 만든다. 기존엔 이미지로 구성했던 웹페이지, 랜딩페이지 등을 이제 어느 정도 하드코딩으로 html을 제작한다. 근데 이전에 피그마로 디자인 툴을 확장했을 때보다 AI를 사용한 코딩 기술 탑재는 어딘가 떳떳하지 못하다. 팀 미팅 때 이러한 기능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와서 AI를 사용하여 2분 만에 뚝딱 만들었고, 다른 팀원들은 이마저도 못 했던 것에 비해 나는 생산성이 더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생산성이 향상되었다고 인정받기가 불편했다. 나는 과도기의 세대이지만 나의 자녀들은 어떤 시대를 살까. 앞으로는 업을 하며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자신의 주체성이 일부 AI에게 양도된 채로 수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텐데, 이 아이들은 스스로의 생산성을 어떻게 인식할 것이며, 무식하게 스스로 디자인하고 구현하는 기성세대들의 생산성을 어떻게 존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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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과 도파민:
업무가 빠르게 정리된다. 완성도는 조금 부족하지만 내가 스스로 정의하는 ‘AI 체‘ 가 익숙한 세대에겐 약간의 완성성은 감안된다. AI 체가 뜻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글을 써도 그 특유의 어투가 있다. 코딩을 해도 그 특유의 구조와 어딘가 비효율적이거나 어딘가 과효율적인 결괏값이 있다. 디자인에도 어딘가 정형화되거나 어딘가 촌스럽거나 어딘가 스타트업스러운(?, 특정 산업군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대체로 나의 AI모델이 기본으로 자주 영하고 에자일 한 스타일 값을 불러오는 편익에 적어보는 말이다) 값들을 가져온다. 이런 문법은 쏟아지는 AI 콘텐츠 및 수행 결과들로 인해 약간의 이질감 정도는 받아들이는 세대이다. 이들은 이러한 완성도의 2% 부족은 이젠 그냥 감안한다. 그보다 더 빠른 생산성으로 만족하며 더한 자극과 편리에 순응한다. 업무자 입장에서 빨리 업무가 끝나면, 여전히 남은 하루 8시간의 근무시간 내 새로운 것들을 채운다. 몇은 새로운 업무를 찾아 하는 생산적인 인물들도 있지만, 사실 회사 업무라는 것은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 더 할 게 없는 순간이 온다. 개인사업자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팀 혹은 조직과의 유기적인 협업이 기반되는 회사 구조상에 새로운 일이라는 건 늘 한계가 있다. 그럼 그 시간에 무엇을 할까? 내 주변을 보면 주로 잡담이다. 회사업무 시간에 허락된(?) 가장 덜 부담스러운 시간 때우는 방법일 것이다. 중간중간 업무얘기도 하고, 팀원들 인생 걱정들을 부지런히 도 하며, 나라걱정 세계걱정을 부지런히 한다. 개인사업자들도 몇몇 자기 관리를 위해 운동도 하고 요리도 하고, 필요한 공부도 하지만 그러고도 남는 시간과 뇌용량이 있어서 OTT나 SNS 등에 접속한다. 이 것이 과도기적 세대의 특성으로 끝날지, 새로운 세대의 전초 증상일지는 모르겠으나 업무의 가속은 여유시간에 새로운 도파민을 찾게 하는 모양들을 보이게 된다.
3.
자문한다. 나는 어떤 인간 기능을 개발하고 중시 여겨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을까? 이런 시대가 다가올 때 어떤 자세가 아이들로 하여금 건강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가치 근거가 되어줄까? 오늘도 고민하며 이 아름다운 여름날, 아이들과 햇빛 아래를 뛰며 땀을 흘려본다.
4.
에어컨의 사막 같은 사무실에서 나와 아이들과 뛰놀다 문득 보이는 막내아이의 목덜미 땀띠가 나는 못내 인간다운 경험 같아 자랑스럽다.
5.
근데 자꾸 긁네. 비판텐이 어딨 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