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의 표면 아래 흐르는 철학
아이와 똑같은 것 같다.
한참 생각이 자라나는 아이가 언어의 한계로 인해 갈등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머리에 뭔가 많은데 실제 살아내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장애를 겪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가 말이 어눌하고 발음이 조금 시원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인지하는 언어는 우수한데, 특히 상상력도 풍부하고 어떻게 이런 어휘와 문장을 구상할 수 있을까 놀랄 정도다. 하지만 표현과 문어의 특정 구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 그래야지 하지만 역시 내 탓인가, 뭐가 부족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걸. 그래서 아이에게는 아이의 특성일 거라 생각하고 자존감은 지켜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를 많이 느낀다.
한편, 정서상에서도 남편과 부딪히는 일들이 있었다. 이건 남편뿐일까. 나 역시도 내가 인지하지 못했지만 아이에게 해를 끼치는 정서적인 행동들을 했을 때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중 남편이 했던 한 특정 행동이 트리거가 되었을 뿐이고, 하필이면 그 사건으로 아이가 자기의 부족한 면 때문에 버려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을 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것이 아이에게 공격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 역시 약간 하나님에게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할 때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을 갖고 있다. 내 신앙이 참 아이 같다. 아이에게 아무리 내가 증명하려고 해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인간의 유한한 상황으로 목숨이 없어지거나 정말 내가 정신이 나가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 한계 안에서 내 한계 안에서의 최선의 사랑으로 너를 사랑할 것이다”라는 것을 표현해 낼 길이 없다. 표현하려고 노력을 해도 아이는 잘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그저 선을 보는 것 같다. 한 번 방어적인 기제가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여기까지 널 속상하게 만들면 넌 나를 단절할 거야, 버릴 거야” 하는 불안 기제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방어 기제로 나오고 공격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 심리의 중심에는 비슷한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잊고 살아도 되나, 기도를 습관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나, 말씀을 보지 않아도 되나 하는 거룩한 생활에 대한 필요가 내 영혼이 좀 더 평안하고 하나님이 주신 그 나라를 내가 지금 살고 싶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내가 이것을 해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벌하지 않을까, 이 평화가 깨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그 선을 계속해서 실험해 보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향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한번 상상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인간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고 유한한 목숨과 유한한 직접적 혹은 물리적 능력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초월하는 분이다. 그분은 내가 기도를 한 번 덜 했고 천 번 덜 했고 만 번 덜 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마음은 아니실 것 같다. 내가 거룩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구원의 근거나 지표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여기서도 천국을 살게끔 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일 것 같다. 그렇다고 자꾸 안일하게 놓치게 되면 내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시간이 늘어나서 내가 더 힘들어지겠지. 하지만 그 신앙에 대한 재정의가 좀 필요할 것 같다.
이 아이의 지금 1년의 과정 중에 내가 고군분투하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믿음을 엄청 물어보시는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그 아이뿐만 아니라 남편에 대한 내 마음도, 남편의 신앙에 대한 마음도, 내 자녀들에 대한 마음도, 내 가족이라든지 시댁이라든지 친정이라든지 회사 사람들로 확장되어 여러 가지 미래나 사회 전반의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한테 묻고 계시는 것 같다. “너 나를 믿느냐?”
내가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아이가 “너 때문이겠구나, 보기만 하면 치유된다”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상황이 열리는 대로, 말씀하시는 대로 하면 치료가 되고 가정이 구원을 받고 정말 그런 은혜의 봇물이 들어올 수 있는데, 내가 계속해서 그것을 보지 않아서, 그것을 믿지 않아서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을 좀 가져본다.
아이의 이 과정이 번거롭고 힘들 것 같다. 언어 치료를 하는데 비용도 꽤 들고 기간도 거의 몇 개월, 반년에서 1년 사이를 바라봐야 할 것 같은데 각오가 서지 않지만, 이것을 은혜라고 여기며 가는 믿음, 내 노력이 아니라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 같다. 그 믿음을 잃지 않게 해 주시길 바라고, 그 체력도 하나님이 제공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믿음으로 내가 서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