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왜 그랬어요?"

<달콤한 인생>의 에스프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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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일수록 곤란한 것이 뒷모습이다. 어느 날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았을 때, 저항하고 싶었던 하늘이 볼품없이 무너져 내리던 기억은 바라보고 이내 외면한 자만이 간직한 비밀.

제 뒷모습이 어떠한지 모르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질주하고, 투쟁하고, 으스대며 쾌척한다. 강한 것이 이내 쇠락할 것을, 고요한 것이 결국 흔들릴 것임을 아는 유일한 각도, 뒷모습. 김지운 감독의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이병헌)가 도입부부터 유독 자주 뒷모습을 보이는 것은 깎은 듯 반듯한 주인공의 비애를 짐작케 한다.




영화 제목 <달콤한 인생>은 선우가 관리하는 도심의 스카이라운지 < La Dolce Vita>에서 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황급한 종업원의 걸음이 멈추는 곳은 선우가 갈망하는 달콤한 인생과 씁쓸한 현실의 접점이다. 선우는 아주 조심스레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만끽하고 있다. 영화에서 테이블 스탠드 갓에 의도적으로 가려진 케이크는 그가 귀찮은 일을 언짢아하면서도 아쉬운 듯, 케이크 한 스푼을 말끔히 빨아먹는 순간 처음 화면에 등장한다.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완벽한 원형의 짙고 달콤한 케이크는 저급한 세상의 것들이 감히 공유하지 못할 세계다. 청결하고, 질서 있으며, 예측 가능하고, 굽어보는 세상. 그러나 단맛은 짧다. 이내 방해받고 오염된다.


지하 나이트클럽에 소란이 있어 내려갈 때, 그의 잘 닦은 구두는 서서히 스카이라운지에서 건물 지하층으로 내려간다. 대리석과 유리로 반들거리는 바에서 번잡한 주방으로, 천정에서 물이 떨어지는 보일러실, 기도들이 살찐 배를 드러내고 TV에 낄낄대는 대기실을 지나 하강할 때 그는 계속 뒷모습을 보인다.


선우의 생명은 폼이고 스타일이다. 고급 양복 소매 끝 먼지를 톡톡 털어 내거나, 매끄러운 스카이라운지 바닥에 떨어진 티끌을 여종업원에게 지적하는 가벼운 손가락 스냅처럼, 골치 아픈 폭력배 고객을 해결하는 날렵한 동작에서 조차 선우는 기품을 고수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가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하듯, 최대한 신체적인 접촉을 피해 통제한다. 맥주병으로 우두머리의 살찐 정수리를 내려친 다음, 그의 왕국인 고급 스카이라운지로 돌아간 선우는 역시 이번에도 소매 뒤 끝에 묻은 먼지를 꼼꼼히 털어낸다. 제 것이 아닌 세계의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영업이 끝난 심야, 밤이 될수록 그의 인생이 달콤한 이유는 전면이 유리로 된 고층 스카이라운지에서 환상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끈한 자태와 구김 하나 없는 슈트, 그가 동일시할 수 있는 것들은 다시 균일하고 절제된 사물들이다.


오늘도 선우는 목탄 빛 진한 에스프레소에 순결한 각설탕을 넣어 음미하며 창가에 서있다. 도심의 야경을 내려다보는 듯하지만, 실은 취하듯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보는 것이 그의 세계다. 선우의 이 뒷모습 장면이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장면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같은 신이 영화의 라스트신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강렬한 훅을 날리는 자신의 단단한 육체와 위압적인 시선을 만끽하는 순간의 기억은 피를 흘리며 자멸하는 그의 기억 맨 마지막 자락과 맞물려 있다.



비록 조직의 보스(김영철)를 위하여 일하고 있으나, 그의 스타일은 다른 조직원과는 다르다. 보스가 고급 한정식 집에서 선우와 식사를 하다, 같은 조직의 동료인 문석(김뢰하)이 허겁지겁 들어와 음식 판을 마구 더럽히는 장면은, 보스의 뒷모습을 중심으로 분할되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보스 눈에 두 심복은 같으나 선우에게는 그렇지 않다. 무심코 “너한테는 그래도 돼”라는 한마디가 나중에 문석의 복수심에 불을 붙인 것도 그 이유다. 보스의 지시에 따라 그의 애인인 희수(신민아)를 미행하며, 나이트클럽에서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선우는 보스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희수의 잘못을 덮어줌으로써, 다시 보스의 복수의 대상이 된다.



희수의 첼로 연주를 들을 때,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선우의 뒷모습이 이어질 때, 이미 선을 넘어섰음을 보는 이는 알고 있다. 그토록 충성했던 자신을 왜 죽이느냐는 선우의 절규에, 보스는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한마디로 답한다. 넘보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보스의 세계에 완전히 속하지 않는 하수인을 용납할 수 없다.



선우의 오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속한 세계는 환상 속에서 존재하며, 정작 그것이 자기 삶으로 들어오게 하는 법을 그는 알지 못한다. 흔들리는 것을 감지할 뿐이며, 그 흔들림조차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에 고통이다. 미제 캠벨 수프가 왠지 근사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것을 먹는 법 보다는, 그를 삼각형으로 아름다운 조형물로 세우는 일에 몰두한다. 친구와 소주 한잔에 오징어를 뜯느니, 스탠드를 일초 간격으로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독일산 기네스 흑맥주는 마시는 편이 선우에게는 달콤한 인생이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는 동안 혼자이고, 죽음 앞에서 꿈틀거리는 동안에도 혼자이며, 그의 뒷모습을 알고 있는 이들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서도 동정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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