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봤어? 어떻게 생겼어?"

<살인의 추억>의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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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봤어? 어떻게 생겼어?”

평범해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둥글넓적한 송강호를 뒤로 하고 짜장면 시켜 먹은 사람, 손들어 보자.





꽤 오래전, 출장 온 중국 직원이 슈퍼에 꼭 들러야 한다더니, 인스턴트 짜장면 한 박스를 샀다. 기다리고 있는 입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짜장면을 개발한 중국인도 반해버린 달콤한 한국형 짜장면은 그저 ‘야채와 돼지고기를 넣고 식용유와 함께 춘장을 넣어 볶은 양념을 밀가루를 반죽하여 늘려 만든 국수에 비벼서 먹는 음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한 플러스알파 국민음식이다. 오늘도 고수부지에서 누군가는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고 있을 것이고, 신입 아나운서는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발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짜장면은 한국인으로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허기를 맴도는 천형이고 설국으로 가는 판타지 열차다.



짜장면을 먹기 위해 제일 먼저 버려야 할 것은 죄의식이다. 혈관이 증오할 돼지기름에 튀기듯 볶은 거무죽죽한 불량 식사를 주문하는 순간, 나무젓가락을 쪼개서 손바닥 사이에 넣고 돌돌 비비는 순간 먹는 이들은 뜨겁게 하나가 된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엉터리 형사 송강호와 김뢰하도 취조 중인 놈과 연속극 ‘수사반장’을 보며 같이 짜장면을 먹는다. 입에 짜장면을 쑤셔 넣고 빠바 바바 빠바 바바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이때만은 강자와 약자가 아닌 동지다. 놈이 탕수육을 연신 입에 쑤셔 넣어도 관대하다.



그러나 짜장면 그릇을 내려놓는 순간,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원위치로 돌아가 각자 악을 쓰고 벌벌 떤다. 짜장면이 허락한 만큼의 집행유예다. 그때만은 같이 소스에 범벅이 된 못난 한 덩어리인 것이다. 그래서 연쇄 살인사건을 풀어 보겠노라고 자원한 뺀질거리는 엘리트 형사 김상경이 중국집에서 짜장면 소스와 면을 따로 주지 않았다고 불평할 때 좌중의 자칭 '못 배운' 시골 형사들은 분노한다. 애써 저급한 그들과 섞이지 않으려는 서울 인간의 오만방자한 거리두기를 확인하고 제대로 쪼개지지 않는 저질 나무젓가락에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짜장면을 꼭 먹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피자나 치킨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급하게 털어 넣기, 섞이기, 한 덩어리에 대한 본능, 최소한의 인권.


박해일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 묻고 빗물 새는 철로 한쪽에 쭈그리고 않아 나란히 짜장면 한 그릇 요란하게 먹었으면 청년의 삶은 달라졌을까?


출출하다. 잠깐 전화 한 통만. 뭐 어떤가. 박신양도 하루 한 끼는 꼭 짜장면을 먹는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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