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겠어요"

<프리티 우먼>의 크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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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불평등을 받아들이기 전과 후로 나뉜다. 불평등에 항의하던 순진한 패기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의젓하고 암묵적인 동의로 바뀐다. 많은 이들이 처음 마주하는 불평등의 기억은 아마 식탁이었을 것이다. 차별 가운데 제일 서러운 것이 음식 차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같은 크기의 제 몫을 차지하지 못하는 슬픔 뒤에는 왜 나는 그보다 작은 덩어리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노와,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에 대한 불안함과,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유를 서서히 이해하는 화농의 아픔이 있다. 여기에 더 해서, 받아 든 한술 크기의 차별보다 더 한 것이 기회의 차별이다. 아버지 상에만 놓이던 것들, 남자들끼리만 먹던 것들, 아픈 동생만의 것들, 잠긴 찬장 유리 너머 군침을 삼키게 하던 고급 크림과 눈발 같은 이태리 슈가의 추억은 그것을 먹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에게 집요한 욕망이고 동경의 아픔이다.


영화 ‘프리티 우먼’의 여주인공, 그녀는 어디서든 깊이 잘 잔다. 밖에서 자는 것이 직업이다. 슬프게도 운이 좋으면 환상의 소풍날도 있다. 백만장자의 호텔 펜트하우스에 따라 들어온 ‘거리의 여자’는 이때다 싶어 맘껏 과자를 까먹고, 카펫에 맨발로 엎드려 평소에 못 보던 텔레비전 코미디를 본다. 백만장자는 그런 그녀를 구경한다. 흑백 삼류 코미디에 웃음이 멈추지 않는 그녀가 신기하다. 별 것 아닌 일에 웃어본 일이 없는 사람에겐, 웃는 사람이 구경거리이기 때문이다. 돈을 좇는 약육강식의 날들을 보내는 그는 가진 것 없는 그녀보다 실은 남루한 삶이다.


두 사람의 차이는 먹거리에서 선명하다. 늘 웃고 있어야 하는 그녀는 걸핏하면 이 사이에 씨가 박히는 딸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딸기와 함께 먹으면 샴페인의 향이 더욱 그윽하다는 백만장자의 우아한 설명에 덥석 큼직한 딸기를 골라 먹성 좋게 베어 문다. 그의 샴페인은 음미의 대상이지만, 그녀의 샴페인은 이때가 아니면 마실 수 없는 것이기에 바로 들이키고 저장해야 하는 다른 세계의 선물이다.


아침에 그녀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모든 메뉴를 주문했다는 그의 자비로운 은빛 식기의 식탁에서 그녀가 망설임 없이 집어 든 것은 크라상이다. 크라상은 식탁의 만찬 가운데 그녀의 세계에서 온 유일한 음식이다. 다른 것은 그녀에게 어떤 맛도 의미하지 않는 손에 잡히지 않는 세계의 것이다. 신문을 읽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겠어요"라 말할 때, 그녀는 무안한 얼굴로 빵을 입에 넣는다.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입에 잔뜩 달빵을 우물거리며 눈길은 서글프다.



주인공 그와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먹거리도 가까워진다. 역방향으로...... 백만장자는 여전히 매끈한 수트 차림이지만, 배달 전문 패스트푸드점에 그녀와 마주 앉아 있다. 바 스툴에 마주 않은 그들은 뭔가 이야기를 나누며 까르륵 웃고 있다. ‘프리티 우먼’에서 다시 그녀가 공부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리처드 기어가 꽃을 들고 오는 장면에서, 탄산음료와 정크푸드가 그득하던 그녀의 허름한 아파트 한쪽 구석에 달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눈물도 달다는 겨울. '달다 카더라'통신을 전하며, 비현실적인 신데렐라 환상 제조의 죄를 묻고픈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이렇게 코로나 블루의 1월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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