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신은 누구십니까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대화를 무심코 듣다가 빠져든 일이 있을 것이다. 별것 아닌 일상 이야기인데도 마치 내 이야기 같거나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그런 경험 말이다. 반대로 큰 목소리로 외쳐대는 화려한 성공담을 들어도 전혀 와닿지 않는 빈곤한 서사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걸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말과 이야기의 차이다. 여기서 말하는 말과 이야기 차이는 팩트 여부가 아니다. 그 이야기 속에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경험과 감정이 담겨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더 나아가서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상차림 같은 놓음 새다.
건축에서 공간이 단순히 물리적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 경험한 기억의 총합이듯, 이야기도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살아낸 사람의 감정과 깨달음, 그리고 시간이 흘러 되돌아본 의미가 이루는 배합의 묘미가 있는데, 이 배합은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의 고도의 기예이기도 하고 강원도 산골 할머니의 타고난 이야기 솜씨이기도 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서사에서 이야기를 발굴해야 하는 스토리마이너의 첫 작업은 자기소개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때 대부분 '팩트'부터 나열한다. 언제 태어났고, 어디 학교를 나왔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하지만 그런 이력서 정보 속에는 진짜 이야기가 없다. 진짜 이야기는 그 사람이 살면서 마주친 선택의 순간들, 그때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깨달은 의미들 속에 숨어 있으니까.
예를 들어보자. "저는 회사원입니다"라는 말과 "저는 매일 아침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근하는데, 항상 같은 칸 같은 자리에 앉으려고 해요. 그 자리에서 보이는 한강이 좋거든요. 10년째 같은 풍경을 보면서 출근하지만 매일 조금씩 다른 느낌이에요"라는 말은 완전히 다르다. 후자에는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는 이 방법을 대학교 강의나 기관 스토리창작 첫 시간에 사용한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한다. 한 번씩 자기 차례가 돌아온다. 스크린에는 정해진 자기소개 형식을 띄워둔다.
1. 이름 / 이름의 뜻 / 이름을 지어주신 분
2. 고향 / 기억나는 풍경
3. 지금 사는 곳 / 내 방 창밖 풍경
4. 좋아하는 친구와 이유
5.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일(직장, 주부, 육아, 아르바이트, 인턴, 자원봉사)
6. 이 수업에서 기대하는 것
7.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오늘 하고 싶은 일(사과나무 심기 제외)
자기소개를 통해 발굴된 스토리마이닝 사례는 뒤에 자세히 쓰겠지만, 우선 생각나는 몇 개가 있다.
무대 공포증으로 피아노를 그만두고도 주말 돌잔치에서 피아노를 치며 행복한 A님,
냉장고 청소하고 기분 좋아져 히키코모리 생활을 그만둔 B님,
갱년기로 수시로 삐져 혼자 흰밥 먹는 아들 꼴 보기 싫다는 아재 D님,
퇴적학 실습 나가서 삽질하다가 사람 묻었다고 경찰 신고 당한 E님
스토리마이닝은 첫날 시작된다.
자기소개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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