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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도 질문으로 시작한다

(3) 아무도 써주지 않는 스토리마이너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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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스토리마이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개념 정의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정의하는 스토리마이닝은 ‘숨겨진 스토리 원석을 발굴하는 탐사 과정과 보석으로 세공하는 가공 과정’ 이 두 개의 결합 기술을 의미한다. 평범한 일상이나 경험 속에서 의미 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아낸 다음 그것을 완성도를 갖춘 텍스트로 '추출'하는 방법론이다. 무슨 실험 과정처럼 설명했지만, 사실 실험과 다름없다. 내가 처음 마주하는 광구 앞에서 빛나는 보석을 내놓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마이닝은 내가 아닌 타인의 서사를 원료로 한다. 타인이 쓴 글을 첨삭하거나 편집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내가 무에서 창조하는 창작도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일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원료로 해서 보기 좋은 콘텐츠 원천 스토리로 만드는 과정이자, 개인이 삶에서 체득한 경험으로 사회에 공적 서사 자산 형성에 기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브루너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적 방식이 내러티브라고 말했다. 즉, 인간의 뇌는 경험을 서사 구조로 조직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위협을 식별하기 때문에, 내러티브는 사회의 공적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멘털라이제이션(Mentalization)과 내러티브 접근법의 융합으로, 자서전적 서사가 개인의 성찰 능력을 향상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의 서사뿐 아니라 타인의 서사가 모두 개인의 성찰과 판단 준거가 된다는 것이다.


jan-kahanek-g3O5ZtRk2E4-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an Kahánek


이미 우리는 다양한 방식의 스토리마이닝을 일상에서 접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뉴스, 시사, 리얼리티 예능에서 개인의 숨겨진 서사를 찾아 미디어 노출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접근을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콘텐츠를 보며 간접 경험을 하고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한다. 특히 인터뷰 기반 콘텐츠는 질문을 통해 개인의 독특한 경험을 서사화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직접 듣는다는 것의 전제는 진실, 흔히 듣지 못하는 속마음, 뜻밖의 실화 등의 즐거움이 있다. 캠핑 테이블과 키 낮은 의자에 유명 MC와 지나가던 행인이 나란히 앉아 30분 방송 분량을 뽑아내는 예측불가 폭소 예능, '유퀴즈' 플랫폼의 매력이기도 하다.


내가 사용하는 스토리마이닝 방법도 인터뷰 기반이다. 사실 인터뷰는 프랑스 저널리즘의 르보르따주(reportage)와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사용한 시네마 베리떼(cinema verite)에서 출발한 것이다. 시네마 베리테는 이미 진실(verite)이라는 단어가 들어있기에 진실 탐구, 날것 그대로의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취재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내가 사용하는 스토리마이닝이 저널리즘이나 다큐멘터리와 다른 점은 취재원에게 주어진 주제가 아닌 더 흥미로운 질문이 있을지 탐색해야 하는 것이다.


A님의 경우는 수시로 퇴사를 반복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게 퇴사 컨설턴트의 자질을 발견하여 퇴사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쓰는 글로 완성하자고 권한 경우다. 각종 회사의 장단점, 계약서 작성 시 주의할 점, 그래도 퇴사한다면 지켜야 할 시간 관리, 마인트컨트롤 등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들의 시행착오를 미리 줄여주고 퇴사를 반복하는 일을 멈추게 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공익적인 글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이 <퇴사 사용설명서>였다.


B님의 경우는 아이에게 읽어줄 동화를 쓰고 싶어 온 예비 산모였는데, 사회에 더 도움이 되는 글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는 복지부산하 강력범죄 상담사였고, 이 분야 전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태교와 육아에 좋지 않을 것 같아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나는 B님에게 특수전문직 여성의 육아의 어려움을 먼저 글로 쓰자고 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완성된 글이 <사회복지사도 상담이 필요합니다> 였다.


모두 수강생이 쓰고 싶어 했던 글감을 옆에 두고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 그의 숨은 고민과 서사를 찾아낸 경우다.


absolutvision-82TpEld0_e4-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an Kahánek


스토리마이닝이 이야기 탐색과 글 가공의 두가지 결합이라고 앞에서 적은 이유가 있다. 단지 질문을 통해 그에게 글감을 찾아준 것으로 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발굴한 이야기를 스토리로 가공하려면 글감과 텍스트 마이닝과의 융합, 즉 서사 추출이 필요하다. 수많은 단어와 문장의 결합을 시도하여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 세상에 정돈된 글로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 본다. 사실 독자가 그 추출 과정을 알아야 할 필요가 무엇인가. 글을 읽어주는 것 만으로도 독자는 시간과 노력을 선물해준 분들이 아닌가. 셰프가 불꽃 튀는 주방의 칼과 불의 배틀을 설명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백 명 이상의 스태프가 밤새 매달린다는 유퀴즈 앞에서 시청자가 소파에 누워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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