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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다면 좀 재미있게 해 주세요

(5) 독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써라

by note by




"웃길 수 없으면 1분 이상 혼자 말하지 마세요."

대인관계 강사가 한 말이다. 나도 스스로 자기 검열을 위해 기억하려 애쓰는 말이다.


내 이야기가 중요한 사람은 나뿐이다. 상대가 모르는 이야기라면 더 그렇다. 어린 시절의 상처, 부모에게 받은 차별, 배우자에 대한 불만,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에 대한 세세한 에피소드... 이야기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가족도 아닌데 듣는 것은 한번이면 되었다는 것이다.


자랑은 더하다. 돈, 집, 자식, 인맥, 솜씨, 주위의 찬사... 듣는 사람은 상관없이 나에게만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다. 한두 번은 들어줄 수 있지만 같은 말을 장황하게 반복해서 듣는 것은 고문이다. 꼼짝없이 들어야 하는 사람은 무슨 죄인가. 이제 밥 사고 해라.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듣게 하려면 커넥터가 필요하다. 내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하면 된다. 재미있으면 된다. 오늘 이야기할 스토리마이닝과 연결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나의 글쓰기 수업에 온 수강생들은 대개 쓰고 싶은 글을 생각하고 온 분들이었다. 언젠가 꼭 쓰고 싶었던 글이었다고 했다. 정성스럽게 정리한 초안을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수업을 통해서 4주 후 완성된 글은 대부분 다른 글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 스토리마이닝, 즉 수업에서 글감을 발굴해서 새로 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글감이 좋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더 흥미롭고 더 재미있고 더 공감되고 더 도움 되는 글감이 있더라는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Madison Oren


예를 들어보겠다. 수강생 중 E 목사님이 기억난다. 그는 교인들을 위해 목회활동을 정리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미 한 권의 책을 출간했고 2번째 책을 쓰기 위해 내 수업을 신청한 것이다. 화상 수업에서 세계 전도를 배경으로 품위 있게 자리 잡은 목사님을 처음 만났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선교 활동도 활발하고 펼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목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겸손하면서도 솔직하고 특히 유머 감각이 뛰어난 분이었다. 네 명 팀 수업 내내 목사님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빵빵 폭소가 터졌다.

"목사님, 재미있으셔서 교인들이 참 좋아하겠어요."

"말도 마요. 교인들이 맨날 뭐라고 해요. 내가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른대요."


말 끝에 독특한 억양이 있어서 궁금해졌다.

"목사님, 고향 어디셔요?"

"저 강원도, 삼척이에요. 그 안쪽 진짜 작은 촌 도계에요. "

"동막골 같은 곳이었나봐요."

"물도 검은 탄광촌이에요. 6.25때 마을 사람들이 전쟁 난 줄도 몰랐대요. 나도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눈이 뱅글뱅글 돌더라니까요."

"그럼 신학 공부 하러 처음 서울 오신 거예요?"

"야, 그때 대단했어요. 연세대학교 합격했다고 마을에서 잔치하고 현수막 걸고. 아버지 어머니도 우시고."


대학 운은 좋았는데 이후 목사님은 삶은 녹녹지 않았다.

"제가 신학 대학에서 술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신론자가 됐어요. 니체 철학 교수님도 신이 없다 그러고. "

"신학교 갔는데 할 일이 없어졌네요."

"그러니까요. 졸업하고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취준생 눈칫밥을 먹었어요. 마을 어른들 피해 다니느라 죽겠더라고요."

살살 질문과 답이 오가며 이야기 실타래가 풀리고 있었다.


그가 다시 서울행 버스를 탄 이유는 원대한 사업의 꿈을 위해서였다.

"죽마고우가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무조건 살아도 같이 죽어도 같이 하기로 해서."

그를 다단계 자석요 판매 설명회에서 끌어낸 사람은, 친구 부모님에게 연락해서 친구까지 끌고 나온 사람은 초등학교 졸업인 아버지였다.


목사님은 웃지 않았는데, 듣고 있는 우리는 너무 웃어 나중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야기마다 반전이 있었고, 그 숨은 유머코드가 진지한 이야기 사이에 숨어 있다가 3초 후에 터지는 것이어서 더 그랬다.


사진: Unsplash의Akira Hojo


나는 교인을 위한 목화활동 책 보다 이 이야기를 더 독자들이 좋아할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발표한 글의 제목이 <목사님, 참 인간적이시네요>였다.


인간적인 목사님을 보기 위해 교인들이 날로 늘어간다고 하니 목사님의 에세이는 성공이다. 목사님의 퍼스널 브랜딩의 본질은 뭐니 뭐니 해도 소탈하고 인간적인 목사님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에세이 마지막 문단에 목사님과 나의 목적지가 있었다.


질그릇처럼 약한 몸으로

거친 세상을 힘겹게 살아왔다.

하지만 하나님과 좋은 사람들 덕분에

오뚜기처럼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

나의 인생도 극적인 순간들이 많았다.

유혹과 갈등도 많았다.

그런 그것들이 목회하면서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이

"목사님 저는 왜 이럴까요?"

"목사님 그때 왜 바보같이 그랬을까요?"

슬픔을 토로할 때 나는 말해준다.

"나도 그랬어요. 사는 게 그래요.

그런 경험이 나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목사님의 목회활동 책은 내가 없어도 쓰실 수 있지만, 이 글은 내가 발굴했으니 엔딩에 내 자랑 한 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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