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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범 Sep 22. 2021

경리단길이 평당 8,000만원을
넘지 못한 이유

부동산 가격의 원리

토지의 '계급장'이라는 용도지역

회사에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이라는 직급이 있듯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토지의 계급을 7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계급의 명칭은 용도를 기준으로 주거, 상업, 공업, 녹지, 관리, 농림, 자연환경보전 등으로 붙였고, 해당 용도로만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농업이나 임업을 제외하면, 부동산을 이용한 모든 경제활동에는 건물이 필수적이다. 용도지역은 건물에 관한 3가지 사항(용도, 크기, 규모)를 통제하기 때문에, 같은 용도지역에서는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지어지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지역의 이미지가 된다.


용도지역 @토지이음


'길'돌림 상권들의 공통점

가로수길, 경리단길, 망리단길, 송리단길, '길'돌림 상권들의 공통점은 상업지역이 아닌 주거지역에서 형성된 상권이라는 점이다. '주거지역 상권'이라는 패러독스는 주거지역의 상업화를 의미한다. 용도지역상 주거지역에서 상업용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물론 지을 수 있다. 용도지역이 주거지역이라고 해서 주택만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거지역이라면 편의점이나 세탁소 같은 편의시설이 있어야 할테니까. 법률 용어로 '근린생활시설(neighbourhood facility)'이라고 하는데, 규모만 크지 않으면 된다. 소매점은 1,000㎡, 음식점은 300㎡ 미만과 같은 식으로, 소규모 상업용 건물만 가능하다는 것. 게다가 건물을 부수고 짓는 일이 그렇게 쉬운가. 처음에는 새로 짓기 보다는 건물 일부의 용도를 변경하는 식으로 시작하게 된다. 1층에는 상가가 있지만 2층부터는 여전히 주택으로 남아 있는, 어쩌다 가끔 2층까지 상가가 있거나 건물 전체가 상가이기도 한 지역. 전형적인 '길'돌림 상권의 모습이다. 감정평가에서는 이런 지역을 용도지역과 상관없이 '주상용'이라고 한다.

망리단길 @한국경제매거진


용도지역은 업종도, 규모도 결정한다

주거지역 상권은 근린생활시설에 허용된 용도와 규모 내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도매점 대신 '소매점', 영화관 대신 '극장', 유흥주점 대신 '카페와 베이커리'가 들어와야 하니 아담하고 다채로워지고, 면적 제한이 있으니 보증금, 임대료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태원 클라쓰>의 단밤과 박새로이처럼 '작지만 개성있는 가게와 젊은 사장님'은 용도지역이 만들어 낸 풍경일지도 모른다.

이태원 클라쓰 @JTBC


임대인과 세입자만 있던 주거지역에 사장님 명함을 가진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 사장님은 손님을 부르고, 손님은 손님을 부르고, 늘어난 손님은 새로운 사장님을 부른다. 가게를 내고 싶어하는 사장님은 많은데 공간이 부족하다. 기존 주택의 저층을 상가로 바꾸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건물 전체를 상가로 바꿔야 한다. 그런 일은 세입자가 할 수 없다. 건물 전체를 사야 하니까. 주거지역의 단독주택이 하나둘 매매되기 시작한다.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의 매매가는 부드러운 선그래프로 표현할 수 없다.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의 양이 적기 때문이다. 단독주택 매매가는 예측할 수 없는 점을 찍으며 고공행진을 시작한다. 그렇게 가로수길은 평당 25,000만 원(2018년), 경리단길은 8,000만 원(2019년), 망리단길은 5,000만 원(2019년)을 찍었다.


주거지역 땅값이 평당 8,000만 원이면 괜찮은 걸까? 

평당 8,000만 원을 주고 받은 것은 거래당사자이니, 그 가격은 매도자, 매수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다는 의미다. 다만, 매도자의 이익은 실현된 현재이고, 매수자의 이익은 실현될 미래이다. 이익이 실현되는 시점이 다르다. 모두의 이익이 실현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매매를 하면 할수록 가격이 오르는 이유다. 가격이라는 게 그렇더라.


평당 8,000만 원의 의미를 따져보자. 경리단길이 속한 용산구 이태원동의 용도지역은 주거지역 중에서도 '2종일반주거지역'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조례」에서는 2종일반주거지역의 건폐율, 용적률을 각각 60%, 200%로 정하고 있으니, 30평 규모의 상가라면 토지 면적은 50평(=30평÷60%)이 필요하다. 토지가격만 40억(=50평×8,000만원)이 된다. 여기에 건물은 100평(=50평×200%)까지 올릴 수 있으니 건물은 3층(=100평÷30평)이 된다. 상가 건물 건축비를 평당 400만 원 정도 가정한다면 건물가격은 3.6억(=30평×3층×400만원), 총 43.6억이 필요하다.
 실제 경리단길에서 토지면적이 50평 이상 되는 매매사례를 찾아보면 2016년 이후로는 40억 이하의 거래사례나 매물이 없다.

50평 이상의 경리단길 매매사례 @밸류맵


40억 가까이 투자했으니 그 만큼의 수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돈을 은행에 넣어두기만 해도 1% 정도는 수익이 나오는데 그 보다는 높아야 할 것이고, 예금과 달리 취등록세, 중개수수료 등 부대비용, 재산세,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실인 건물 감가상각까지 감안하면 적어도 2.6%는 나와야 손해가 아니다. 이건 정말 '최소' 수익률일 뿐이라, 이 정도도 나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은행에 넣어두는 것이 낫다.

43.6억의 2.6%이면 연간 1.1억, 월간 950만 원 정도의 임대료가 나와야 한다. 상가의 층별 임대료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1층에서 450만 원, 2층에서 270만 원, 3층에서 230만 원 정도의 임대료가 나와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정말 최소 수익률일 뿐이다.


이제 상가 1층 세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시장에서는 통상 매출의 10% 정도를 지불가능 임대료라고 하니, 월세 450만 원을 내려면 한 달 매출은 4,500만 원, 일 매출 150만 원 정도가 나와야 한다. 30평이라고 해도 코어, 주방, 화장실을 제외한 접객면적은 20평 내외일테니, 테이블은 10개 남짓. 카페를 기준으로 테이블당 단가가 2.5만 원이라고 하면, 모든 테이블이 여섯 번 돌아야 달성할 수 있는 매출이다. 삼겹살을 기준으로 테이블당 단가를 5만원이라고 해도, 모든 테이블이 세 번 돌아야 한다. 이 정도 맛집이어야 최소 수익률이 나온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로수길처럼 주거지역 상권을 넘어 패션브랜드와 프랜차이즈가 입점하는 상업지역으로 진화해버린 경우를 제외하면, 주거지역에서 평당 8,000만 원이라는 가격은 세입자에게 최대의 임대료를, 건물주에게 최소의 수익을 강요하는 한계가격이 아닐까? 그것이 세입자들이 경리단길을 떠난 이유이자, 연트럴파크가 걱정되는 이유이다. <끝>


경리단길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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