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의 원리
상권의 시작, 사람으로부터
상권은 특정할 수 있는 지리적 공간을 의미한다. 상업 활동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만나야 이루어 지는 것이지만, 공간의 관점에서는 조금 다르다. 파는 사람은 반드시 공간 안에 거주하지만, 사는 사람은 공간의 안과 밖을 넘나든다. "오늘 어디에서 볼까?" 우리는 집 근처도 아니고, 회사 근처도 아닌 곳에서 만나기도 한다. 쇼핑을 하고, 식사를 하며, 커피를 마신다. 상권 내부에 집이나 회사가 있는 사람들을 '정주인구'라고 하는데, 이렇게 상권 외부에서 유입되는 사람들까지 포함시켜 '유동인구'라고 한다.
특정 상권이 잘 되려면 기본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아야 한다. 그리고 유동인구 중에 정주인구의 비중이 높을수록 상권의 체력이 튼튼해지지만, 상권을 키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동인구이다. 정주인구가 고정된 상수라면 유동인구는 변수인 셈이다. 정주인구의 특성, 그러니까 주거인구(집)이냐 직장인구(회사)이냐에 따라, 유동인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회사보다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히려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출근해서 회사 근처에서 쓰는 돈이, 퇴근해서 집 근처에서 쓰는 돈보다 많다. 정주인구의 대부분 이 주거인구인 상권이라면, 더 많은 배후지를 확보해야 한다. '아파트라면 500세대, 오피스텔은 300세대'와 같은 실무상 간편법이 있을 정도이다. 많은 배후지가 요구될수록 상권의 확장도 어려워진다. 유동인구가 늘어나기도 쉽지 않다. 외지인이 편하게 드나들려면, 아무래도 외지인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남, 명동, 종로, 동대문 같은 전통 로드샵 상권의 공통점은 정주인구의 대부분이 직장인구라는 점이다. 직장인구가 많은 지역은, 사람의 활동력이 가장 높은 낮 시간부터 저녁 시간까지 활기가 넘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성수동 역시 지식산업센터를 비롯한 IT계열 직장인구를 배후지로 한다. 성수동은 1970년대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경공업단지였지만, 2000년대 한국경제를 이끄는 IT산업에도 재빠르게 합류했다.
백화점과 로드샵의 차이
사무실은 집보다 1인당 점유면적이 작고, 공간밀도가 높다. 따라서, 상가가 입점할 수 있는 공간의 확보도 용이할 뿐만 아니라, 소비력이 높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상업적 시도도 가능하다. 외부의 유동인구를 맞이하기에 최적의 조건인 것이다. 유동인구와 상권은 서로 추동하며 확대되는데,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는 유동인구와 달리 상권의 확장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로드샵은 백화점과 달리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확장해야 한다. 일단 상권이 확대될 수 있는 후면지가 있어야 한다. 후면지가 있다 하더라도, 백화점처럼 단숨에 MD 구성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용도 변경이 가능해야 하고, 당사자가 협의할 시간이 필요하다.
가로수길과 경리단길을 비교해보자. 가로수길은 양 옆으로 기존 면적의 4배 가까운 후면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좌우로 확장되며 세로수길이라는 별칭을 얻을 수 있었다. 가로수길에는 회전율이 빠르고, 매출액이 높으며, 결과적으로 임대료 지불능력이 높은 패션, 화장품 매장이 들어왔고, 카페, 베이커리 같이 회전율에 한계가 있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F&B 매장은 세로수길로 이전하면서 상권을 유지, 확대할 수 있었다. 사전적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상향여과 현상이다.
반면 경리단길은 위아래로 확장해야 하지만, 위로는 아파트 단지와 남산이 가로막고 있고, 아래로는 용도변경이 어려운 연립, 다세대주택이 가로막고 있어 확장에 어려움이 있었다. 경리단길도 가로수길처럼 후면지로 확장할 수 있었다면, 합리적인 임대료를 기대했던 상가 임차인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임대료라고 해서 다 같은 임대료가 아니다
부동산으로서 상가의 가치는 임대료에 기초한 수익방식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임대료라고 해서 다 같은 임대료가 아니다. 임대료는 임대인에게 수익이지만, 임차인에게는 비용이다. 임차인의 수익은 상가의 매출에서 비용을 뺀 영업이익이다. 고정된 임차공간에서 임차인의 노력으로 매출이 늘어났다면, 임대인의 수익인 임대료가 아니라 임차인의 수익인 영업이익이 늘어나야 한다. 유형자산의 기여도는 고정되어 있으니, 늘어난 영업이익은 기업가가 만들어 낸 무형자산이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로드샵과 달리, 백화점 임대인의 역할은 단순히 공간을 대여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치 큐레이터처럼, 적극적으로 고객을 분석하고 홍보하며, 동선을 계획하고 공간을 재구성한다. 공간이라는 유형자산의 기여도는 고정되어 있지만, 임대인이 제공한 무형자산의 기여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늘어난 영업이익도 임차인과 임대인이 배분한다. 비율임대차 계약을 통해,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임대료로 받는다.
임대료의 성격에 따라 감정평가방법도 달라진다. 유형자산의 사용대가로 지불되는 고정비용이라면 부동산에 귀속시키고, 무형자산의 사용대가로 지불되는 변동비용은 부동산이 아닌 기업가 개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그걸 권리금이라고 하기도 하고, 계약권, 사업권, 영업권이라고 하기도 한다. 분명히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명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업의 가치와 부동산의 가치를 구분해야
속초 닭강정 골목에 가보면, 내가 보기에는 비슷한 닭강정인데 유독 만석닭강정에만 줄이 길다. 만석닭강정의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시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특허)과 브랜드(상표)를 활용한 영업 노하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장사가 잘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임대료를 더 낼 이유도 없다. 상가처럼 영업활동의 공간으로 사용되는 부동산의 경우, 영업의 가치와 부동산의 가치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이다. <끝>
※ 참고문헌
1. <나는 집 대신 상가에 투자한다> (김종율, 2016년)
2. <부동산을 다시 생각한다> (드로르 폴렉,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