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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범 Sep 19. 2021

아파트에 적정 전세가가 있다면

부동산 가격의 원리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가장 많이 따지는 건 '남들이 산 가격'이다. 

100만 원을 웃도는 휴대폰을 살 때도, 몇 천만 원을 호가하는 자동차를 살 때도, 원가를 따져보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냥 남들은 얼마에 샀는지, 남들보다 싸게 샀는지만 따진다. 그것도 주변에 수소문 하는 정도에서. 휴대폰과 자동차보다 훨씬 비싼 부동산을 살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행이 부동산은 거래신고제도가 있어 일일이 수소문 하지 않고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지만, 이 마저도 직접 하기가 번거로워 공인중개사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지 말자. 호갱노노, 밸류맵, 디스코, 랜드바이저 등 실거래가를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는 웹서비스가 많이 있다.


남들이 산 가격에 물건을 샀을 때 문제점은 가격이 변동할 때이다. 내가 참고한 남들도, 알고보면 또다른 남들을 보고 산 것이고, 모두가 남들 사는 대로 샀으니 결국 '심리'만 남는다. 군중심리에는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으니 책임질 사람도 없다. 가격은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니 남들 사는 대로 사더라도, 가격의 변동성, 즉 가치에 대한 판단은 직접 해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해보려고 한다.


직접 사용하지 않을 물건의 가격은 변동성이 크다

통상 전세가 대비 매매가가 너무 높으면 고평가 되었다 하고, 반대의 경우는 저평가 되어 있다고 한다. 세입자는 대부분 실거주 목적으로 전세금을 지불하니, 전세금은 거주에 따른 효용, 즉 실물의 가치와 일치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반면 소유자는 거주와 무관하게 이익을 기대하고 매매가를 지불하니, 산 가격과 판 가격의 차액이 본질이다.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올라주기만 한다면 얼마에 샀든 이익을 볼 수 있으니, 얼마에 샀느냐가 아니라 얼마를 벌었으냐가 중요하다. 매출이 얼마이고 원가가 얼마이든, 영업이익이 남으면 되니까.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직접 사용하지 않을 물건의 가격은 변동성이 크기 마련이다.


서울시 아파트 매매가, 전세가 추이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 적정 전세가율은 어느 정도일까

실물가치를 대변하는 전세가와 매매가의 비율, 즉 적정 전세가율은 어느 정도 될까. 계약 갱신이 문제되지 않는다면, 임대인과 임차인의 차이는 매매차익에 대한 권리 뿐이다.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높은 유일한 이유도 그것 뿐이다. 전세제도가 유지되려면 아파트 가격의 상승이 전제되어야 하고, 아파트 가격에 변화가 없거나 심지어 하락한 다면 굳이 전세를 줄 이유가 없다. 내가 쓰지도 못할 10억짜리 아파트를 사서 세입자에게 5억을 빌리는 것과 은행에서 5억을 빌리는 경우를 비교해본다면, 고작 1% 내외의 담보대출과 정기적금 이자율의 차이만 남는다. 여기에 서 연간 재산세 0.2%만 차감해도 0.8%로 떨어지며, 취등록세, 중개수수료 등 부대비용 3.6%를 4년(2+2년)으로 나눈 0.9%를 차감하면 실질적으로 남는 게 없다.


주택담보대출, 정기적금 이자율 추이


전세가율의 상한선은 약 85% 내외

아파트 가격이 물가상승률 수준인 1% 수준으로 상승한다면, 즉 실질상승률이 0%에 가깝다면, 투자자의 총수익과 총비용이 같아지는 손익분기점은 전세가가 86% 수준일 때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세가율이 86% 이상인 아파트를 매입하면 이익은 볼 수 없지만 절대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의미가 된다. 실제 최근 10년간 아파트 가격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경기도 포천시와 동두천시의 전세가율이 80% 내외, 오히려 아파트 가격이 하락한 경남 마산회원구와 전북 군산시가 85% 내외의 전세가율을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실증 가능한 수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전세가율의 하한선은?

전세가가 상수, 매매가가 변수에 가깝다면, 전세가율은 결국 매매가 상승률에 달려 있다. 매매가가 오르면 전세가율이 떨어지고, 매매가가 떨어지면 올라간다. 2016년 6월 70% 수준이던 서울시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2021년 6월 55% 까지 떨어졌는데, 서울 아파트 가격에 대한 기대 상승률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 지난 10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6.2억에서 10.9억으로 연간 6% 이상 꾸준히 상승해왔다. 누적 상승률도 75%에 가깝다. 


서울시 아파트 전세가율 추이


이런 경우라면 전세가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만,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기 마련이다. 일단 최근 10년간 서울시 아파트 전세가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적은 없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자. 일단, 매매가가 상승하면 매매시장의 유효수요는 감소하게 되고, 매매시장에서 이탈한 수요가 전세수요로 전환되면서 전세가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세가율이 50% 수준이었던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전세가율은 꾸준히 상승해 70%까지 올라왔다. 이렇게 되면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전세가율이 높아지며 소위 갭(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2,000만 원 내외까지 줄어들었기 때문에, 전세수요는 다시 매매수요로 전환되며 매매가를 끌어올린다. 이런 걸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상한선과 달리 전세가율의 하한선을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2020년 1월, 다시 50%까지 떨어졌던 전세가율이 반등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적정 전세가율은 어느 정도일까

서울시 아파트 전세가율은 50~70% 내외에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세가율이 상승할 때 시장에 진입해야 매매가의 하방압력과 전세가의 상승압력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가율이 하락할 때 진입하는 것이 안전하다. 나처럼 아파트 투자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전세가율이 60% 이상인 아파트를 선택해서 오르든말든 살면 될 일이다. <끝>



※ 참고문헌

1.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한국부동산원, 2012년~2020년)

2. 통화금융통계」 (한국은행, 2011년~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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