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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범 Sep 23. 2021

거실로 사용하는 발코니도
가치가 있을까?

부동산 가격의 원리

소속평가사 2년차 때였나

다세대주택 감정평가 건을 배정받고 현장조사를 나간 날이었다. 분양사무실의 안내를 받아 주택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넓어서. 어제 발급한 등기부에는 분명히 전용면적이 6평 남짓이었으니 당연히 원룸이겠거니 했는데, 별도의 주방까지 있는 투룸이었다. 대부분의 신축 다세대주택이 그러하듯, 분양가도 인근 투룸의 시세보다 한참 높았다. 다세대주택 같은 공동주택은 건물면적을 기준으로 단가를 비교하는데, 투룸 가격을 원룸 면적으로 나누니 터무니없는 단가가 나왔다. 사내 심사위원회, 은행 심사부 모두 불편해 할 것이 불보듯 뻔했다.


비밀은 설계도면에 있었다

도면에 보이는 점선, 점선의 안쪽은 등기부에 기재된 전용면적이었고, 점선의 바깥쪽은 확장면적이다. 건축물대장이나 등기부에서는 확인할 수 없고, 설계도면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건물의 사면을 1.2 ~ 1.8m까지 확장했는데, 확장된 면적을 계산해보니 6평이 넘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면적이 등기부상 면적의 2배인 셈이다. 벌써부터 고난이 예상되는 도면이다.


확장형 다세대주택 도면


발코니를 거실과 침실로 사용해도 될까

발코니의 법적 정의를 살펴보면 더 심란해진다.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공간으로서 전망이나 휴식 등의 목적으로 건축물 외벽에 접하여 부가적으로 설치되는 공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통상 거실과 침실을 완충공간이라고 하지는 않고, 전망을 목적으로 하기에는 외벽이 가리고 있으며, 외벽에 접해 있지도 않았다. 

법적 정의에 어울리는 프랑스 아파트의 발코니 @중앙일보


하지만, 법적 정의와 별개로 발코니를 거실과 침실로 사용하는 것은 합법이다. '발코니'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발코니 확장'이 나올 정도로,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발코니가 그저 거실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발코니 확장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는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공급되면서 건설회사의 경쟁이 시작된 시기다. 발코니는 같은 가격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넓은 면적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싶었던 '서비스 경쟁'의 결과였다. 발코니를 "서비스 면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때까지는 발코니를 개조하여 거실로 이용하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2005년 「건축법」이 개정되고 후속하여 「발코니 등의 구조변경절차 및 설치기준」이 제정되면서 2000년대부터는 발코니 확장이 일반화 된다.


그런데 왜 1.5m 였을까

발코니가 확장된 설계도면을 보면 서로 약속한 듯 폭이 1.5m 인데, 건축법 어디에도 발코니의 너비를 1.5m로 정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1.5m 초과면적은 공식 전용면적에 산입되기 때문에, 통상 1.5m를 넘기지 않고 있다. 폭 1.5m에 너비를 곱한 발코니 면적은 생각보다 넓은데, 10평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서 전용면적의 30% 정도를 차지하기도 한다. 전용면적이 동일해도 발코니 확장면적에 따라 실사용면적이 30% 가까이 차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관련 법령은 해당 면적을 도면에 명시할 의무만 규정하고 있고, 정식 등록사항은 아니다. 이제 도면을 열람하거나 주택 내부를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정확한 면적을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건축물대장과 등기사항증명서 등 부동산 관리체계가 무력화 되는 순간이다. 공부상 면적을 기준으로 대량 산정되는 공동주택 공시가격에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정책 측면에서도 밀도 규제의 기초자료인 용적률이 현실과 괴리될 수 있다. 

한국 아파트의 확장 발코니 @법률신문


확장된 부분을 어떻게 감정평가할까

우선 건축주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합법적인 방법으로 발코니를 확장했고 확장면적에 비례하여 추가적인 공사비와 금융비용을 지출했다. 발코니 확장이 명시된 설계도면을 제출하고 정상적으로 건축물 사용승인을 받았다. 실제 주택에 거주할 수분양자 입장에서도, 실제 사용면적이 중요할 뿐 공부상 전용면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건축주의 비용과 수분양자의 효용이 일치할 수 있다면 거래는 이루어질 수 있다. 이렇게 통상적이고 합법적인 거래가격은 충분히 감정평가액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따라서, 실사용면적인 유사한 주택의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비교하되, 전용면적에 따른 대지권면적의 과소만 별도로 보정하는 것으로 감정평가서를 작성했다. 

심사위원회에 수차례 불려가고 은행 심사역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지만, 논리만으로 심의를 극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다세대주택 시행사의 감정평가 의뢰가 늘어나긴 했지만, 한편에서는 과도한 영업활동이라는 드러내지 않는 비난도 많았다. 그렇게 발코니 확장 주택과는 멀어졌다.


에필로그

2019년, 한국부동산분석학회의 학술논문 「아파트 발코니면적의 시계열적 변화와 내재가치 추정에 관한 연구」에서는 아파트 발코니의 가치를 회귀분석으로 실증연구했다. 연구의 결론은 이랬다. "발코니면적의 내재가치는 방이나 거실과 같은 내부공간의 가치와 유사하거나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헤도닉모형에 발코니면적변수나 발코니비율 변수를 추가하여 분석한 결과 2018년 7월 기준으로 발코니의 단위면적당 내재가치는 641만원/㎡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전용면적의 단위면적당 가치, 472만원/㎡ 내지 594만원/㎡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분석에 사용된 표본의 대표성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발코니의 가치는 적어도 내부공간의 가치와 유사한 수준이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끝>


※ 참고문헌

1. 「발코니 등의 구조변경 절차 및 설치기준」 (국토교통부, 2021년)

2. 「아파트 발코니면적의 시계열적 변화와 내재가치 추정에 관한 연구」 (김진유, 《부동산학연구》, 2019년)

3. 공동주택의 조사 및 산정지침」 (국토교통부, 2021년)

4. 「공동주택가격 조사산정 업무요령」 (국토교통부,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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