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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범 Oct 12. 2021

부동산이지만, 부동산은 아닌 호텔

부동산 가격의 원리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하면 1년간 실무수습을 받은 후에 감정평가사로 등록해 업무를 할 수 있다. 수습평가사로 입사하게 되면 몇 주간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은 후에 현장에 투입되는데, 초반에는 선배 평가사들이나 현장조사 직원들을 따라 동행출장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내 첫 동행출장지는 경기도의 한 호텔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탄 호텔산업

2010년대는 한국 호텔산업이 고속성장과 침체를 동시에 경험한 시기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외국에서 유입되는 관광객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관광객들이 머무를 수 있는 호텔은 과부족이었다. 한국 호텔은 공급 총량도 적었지만 선택의 폭도 좁았는데, 절반 이상이 롯데호텔, 신라호텔을 비롯한 특급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외출로 보내는 관광객들에게 특급호텔의 화려한 시설과 컨시어지 서비스는 가격적인 부담이었다. 어떤 중국 관광객들은 호텔도 모텔도 아닌 찜질방을 선호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호텔 공급은 2015년 들어 정부가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호텔 건축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롯데, 신라같은 대기업 계열의 고급 관광호텔이 롯데스테이, 신라스테이라는 중급의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뛰어든 것도 이 즈음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과 반대로, 외래관광객 입국은 같은 해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라는 전염병과 이듬 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설치문제로 위축되기 시작하더니, 2019년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곤두박질 치게 된다.


초단기 임대차인 호텔 객실료

호텔은 아파트, 오피스 같은 일반적인 부동산보다 하드웨어가 더 중요한 부동산이면서, 동시에 소프트웨어까지 강조되는 부동산이다. 우선 하드웨어. 철근콘크리트구조 건물 중에 가장 비싼 건물은 백화점, 사우나, 호텔 순서이다. 최고급도 아닌 일반 호텔의 신축단가가 평당 600만 원 수준인데, 이는 오피스텔 대비 30%, 오피스 대비 50% 이상 비싼 가격이다. 게다가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자산의 진부화도 빠르기 때문에, 이를 유지관리하기 위한 비용도 높고 일정 기간 이후에는 리모델링과 같은 재투자가 지속되어야 한다. 건축비에서 내외장 마감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비용이다.


다음은 소프트웨어. 호텔도 다른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임대료가 발생하지만, 기간이 짧고 빈도가 높다. 주택의 임대차 기간이 2년, 오피스텔의 임대차 기간이 1년이라면, 호텔의 임대차 기간은 1일인 셈이다. 임대차 기간이 짧으면 임대인의 운영비용도 증가할 수 밖에 없다주택, 오피스와 같은 장기 임대차에서는 임차인 스스로 공간을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호텔처럼 임차인이 잠시 머무르고 떠나는 곳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공간을 위해 필요한 수도, 전기, 가스, 집기, 비품, 청소, 유지보수 등 모든 서비스는 임대인이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공간의 임대료는 공간 관리의 주체와 면적에 비례할 수 밖에 없는데, 임대인이 공간을 관리해야 하는 단기 임대차일수록, 임대인이 관리해야 하는 공용면적이 넓을수록 높아진다.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호텔

정확한 비교는 아니지만, 서울을 기준으로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호텔의 임대비용을 비교해보자.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은 가장 일반적인 면적이라는 전용 12평 이하를 기준으로 임대료 통계를 인용하고, 호텔은 중형 객실인 8평을 기준으로 3성급 비즈니스호텔의 실질객실수입을 기준했다. 

호텔의 단위당 임대료가 4배 이상 높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 이유는 호텔은 매출액의 50% 이상이 관리비로 지출되기 때문이다. 다른 주거공간은 임대료 외에 시설 관리를 위한 별도의 관리비가 부과되지만, 호텔은 객실료에 관리비가 포함되어 있다. 더구나 호텔은 일반 주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용면적인 로비, 복도, 엘리베이터, 주차장 등이 넓기 때문에, 관리비 지출 규모도 더 클 수 밖에 없다.


잘 드러나지 않는 추가적인 비용도 있다. 대표적으로 광고비와 대체충당금이다. 부동산에서 광고비가 쉽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보면 주택도 연간 0.4% 수준의 중개보수를 광고비로 지출하는 셈이다. 하물며 호텔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초단기 임대차라면 홍보가 필수적이다. 중개사에게 위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호텔은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고객을 대상으로, 낯선 곳에서 샤워를 하거나 잠을 자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한다. 독자적인 홍보에 어려움이 있다면, 브랜드의 힘에 의지할 수도 있다. 모두 비용이다.

대체충당금은 주기적으로 인테리어 및 집기를 교체하기 위해 적금처럼 쌓아두는 돈이다. 당장 발생한 비용이 아니라 장래에 발생할 비용이지만, 매년 쌓아놓지 않으면 후일을 대비할 수 없다. 대체충당금이 반영되지 않은 호텔의 영업이익은 착시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주요 호텔 브랜드


다들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한다

신경쓰지 않아도 월세가 들어올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유만 하고, 사용은 임차인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즉, 소유와 운영이 분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호텔 건물주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매일의 객실수입이 월세인 호텔 건물주는, 신경쓰지 않으면 월세가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세심하게 신경을 써도 월세가 들어올까 말까다. 그래서 대부분의 호텔은 소유와 운영이 결합되어 있다. 주택이든 호텔이든 기간의 차이만 있을 공간 대여라는 서비스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서비스의 대가를 다르게 보는 이유이다. 신경쓰지 않아도 들어오는 월세는 임대수익이지만, 신경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 월세는 영업이익이다.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임대수익이고, 기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영업이익이다. 그렇다면 호텔처럼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영업이익은 뭐라고 해야 할까. 객실수입에 기반한 호텔의 가치는 부동산이 아닌 기업가치에 가깝다. 기업가치의 대부분을 부동산이라는 하드웨어가 차지할 뿐이다. 꼭 호텔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자동차, 조선 같은 장치산업도 공장, 생산설비, 원재료 같은 하드웨어의 비중이 높지만, 현대자동차 회장님을 건물주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끝>



※ 참고문헌

1. "입국관광통계" (한국관광공사, 2020년)

2. "전국 관광사업체 현황" (한국관광협회중앙회, 2020년)

3. "호텔업운영현황" (한국호텔업협회, 2019년)

3.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

4. "건물신축단가표" (한국부동산원, 2020년)

5. <비즈니스호텔 크리에이터> (정상만, 2015년)

6. <부동산을 다시 생각한다> (드로르 폴렉, 2021년)

7. "오피스텔가격동향조사" (한국부동산원, 2021년)

8. "주택총조사" (통계청, 2020년)


※ 용어해설

- 실질객실수입(RevPAR, Revenue Per Available Room) = 평균객실요금 × 객실이용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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