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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Oct 21. 2021

"나 벌써 꼰대인가 봐"라는 포기선언

'젊은 꼰대'의 밀도는, M과 Z를 구분하는 꽤 명확한 지표일지도 모른다. Z세대는 이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중간 관리자가 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분명 아직 젊은 나이인데, Z세대를 보며 '내가 벌써 꼰대인가'를 꽤 자주 자문하게 된다.


어떤 밀레니얼들은 재빠르게 인정해버리기도 한다. "그래 나 꼰대다!" 그런데 사실 그건 "요새 트렌드 따라가는 건 너무 힘들고 피곤해"라는 포기 선언이자 "더 이상 쟤네들 이해하고 같이 지내기 위해 노력하기가 싫어"라는 무책임 선언이기도 하다.



꼰대가 반드시 '나이'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30대는 20대보다, 20대는 10대보다 꼰대가 될 ―혹은 꼰대로 보일 계기가 훨씬 많은 이들이다. 현 30대가 '꼰대'를 시대적 유행어로 소환시킨 당사자들이란 점에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2030은 그동안 묵인됐던 윗 세대의 행동을 아랫세대가 얼마나 비판할 수 있는지, 직접 목소리를 낼 만큼 내 본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90년생이 온다>라는 책까지 나왔겠는가. 그리고, 10대는 그런 분위기에서 충만한 권리의식을 가지고 자라난 사람들이다. 모두의 '꼰대 민감성'은 높아졌는데, 사회는 점점 각자도생이니 사방팔방에서 '젊꼰'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30대 중후반의 '나이 많은' 밀레니얼에게 MZ세대라는 수식어는 '만 나이'와 비슷하다. 필요할 땐 편승하지만, 아닐 땐 망설인다. 자기보다 더 나이 든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저도 아직 30대! 이 자리에서 유일한 MZ세대라구요!'를 당당하게 외치고 "에이, 네가 무슨? 하하하"라는 뻔한 반응들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한참 어린 Z세대들과 어울려있을 때 'MZ세대'는 감히 먼저 꺼내기 힘든 표현이다. 이미 스스로 연대감보다는 격차를 크게 느끼고 있을 수도 있고, 설령 자기 입으로 말하더라도 "뭐래, 아줌마/아저씨가 왜 우리랑 같이 묶이고 싶어 해"라는 냉대를 받을까 두려워서다. 아니, 사실은 그들과 자신이 같은 세대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나오는 것이 "나 벌써 꼰대인가 봐"라는 탄식 같은 자조다. 자기가 꼰대인 줄도 모르는 젊은 꼰대들보단, 최소한 '나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동시에 아랫세대에게 무언가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오는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인 친구 A는 이런 상황에 너무 자주 노출되다가 결국 입을 다무는 편을 택했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서 주 7일을 쏟아부어야 할 수준이지만, 몇 살 어린 후배들은 마감이 코앞으로 닥쳐와도 죄다 자기의 일정이 우선이란다. 죄송한데 일주일에 하루 이틀 이상은 낼 수 없다며 쏙 빠져버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A는 그냥 자기 몸을 갈아 넣는 편을 택했다. 그래도 버티기 어려우면, 동기들이 있는 카톡방에서나 토로한다. "너무 스트레스받는다ㅋㅋ 후배들 행동이 신경 쓰이는데, 여기서 말하면 나 진짜 꼰대 되는 거겠지?"라고 말문을 열며. 이야기를 듣고 난 우리가 "애들이 너무하네" 거들고 "교수님한테 말하면 안 돼? 아니면 그냥 네가 후배들한테 세게 얘기해보는 건?"이라고 나름대로의 해결방안을 제시해도, A는 그냥 체념한 듯 말했다. "태도 지적을 하고 싶은 거 보니까, 나이 들었나 봐ㅎㅎ"




하지만 스스로를 '꼰대'로 규정하는 것 역시 어쩌면 위험한 발상이라고, 나는 굳이 굳이 생각한다.  보통 꼰대 대처법은 세 가지로 나뉜다. 1. 참는다 2. 피한다 3. 역공한다. '꼰대'는 애당초 말이 통하지 않아 고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니, 대응하지 말고 꾹 참거나/ 아예 마주치지 않거나/ 그 사람이 나를 피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공통점은 '소통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 '상종하지 말라'는 것이다.


"꼰대와 요즘 것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판타지 소통극"을 표방한 MBC 드라마 <꼰대인턴>


'꼰대'라는 정체성을 선제적으로 붙잡아버리는 것도 결국 비슷하다. "어린애들은 뭘 하든 터치하면 안 돼" "요샌 말 한 번 잘못 걸었다가 잔소리 취급받을 수도 있어" "후배한테 밥 먹자고 하면 싫어할 거야"같은 마음은 사실 둘 사이의 장벽을 스스로 더 단단하고 높게 다지는 핑계와 명분이다.


무언가 말해주고 싶을 때 후배가 불쾌하거나 상처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내 조언이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얼마나 치열하고도 바람직한가. 후배들에게 "방금 그 말씀은 좀 꼰대 같았어요" "그런 제안은 오해받을 수 있어요" 같은 '역조언'을 받을 수 있는 선배가 되는 것은, 마음은 아프겠지만 역시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그냥 그 둘이 대화를 아예 안 하게 되는 것은 재앙이다. 꼰대를 꼰대로 만드는 것은 "까라면 까"라는 강압, 공감능력 부족, 자신만 드높이는 이중 삼중잣대같은 태도들이다. 그럼 그런 것만 조심하며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 노력이 힘들고 구차하다고 생각해서 '꼰대' 팻말을 일찍 들어버리는 것은 '진짜 꼰대'로 가는 지름길이다.




M과 Z가 각자의 안전지대에서만 담쌓고 지내는 건 Z세대에게도 손해다. M과 조금씩 싸워가면서라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머지않은 미래에 누군가의 윗세대가 되기 위한 연습과정이 될 테니까. 담쌓기와 선긋기는 "하~ 나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같은 한숨 섞인 라떼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만 할 뿐이다.


Z들이 스스로의 방식으로 M을 포함한 여러 세대의 '꼰대'들과 소통을 수차례 시도했는데도 처참한 결과만 나왔다면, 그분들은 그냥 어쩔 수 없는 분들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알고 보니 괜찮은 인생의 도우미와 상담자들도 몇몇은 발굴해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쌍방 받아들이기 좋은, 괜찮은 '라떼아트'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참고 

    MZ세대로 통칭되는 ‘요즘 것들’… M세대와 Z세대는 다르다? [뉴스 인사이드](세계일보 2021년 9월 19일) 

    젊은 꼰대가 더 노답인 이유(김도영 브런치북, 2018년 4월 1일) 

    착한 꼰대, 위아래 눈칫밥…서러운 80년대생(서울신문, 2019년 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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