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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Oct 22. 2021

'~답다'가 지배하지 않는 곳

1998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전교생 2000명이 넘었다. 한 학년에 8반, 한 반에는 50명 가까운 아이들이 있었다. 애들이 늘다 보니, 5학년 즈음엔 아예 9반을 추가로 더 만들었다. 학기 중에 각 반마다 몇 명씩을 빼서 새 반으로 옮겨놓는 통에, 친구들이랑 헤어지는 게 서럽다고 엉엉 울던 아이들 풍경이 희미하게 기억난다.


그때는 한 반에 별별 아이들이 다 있었다. 날라리와 범생이, 만화 좋아하는 아이와 축구 좋아하는 아이, 정말 크거나 작은 아이, 약한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 사투리를 쓰는 아이, 왕따와 따돌리는 아이… 그냥 등교만 해도 어리지만 별난 인간 군상을 다양하게 마주쳤다. 누구든 자신과 비슷한 아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2018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다를 것이다. 다들 교실 밀도가 낮아지면, 교사당 학생수가 줄어드니 교육의 질이 높아져 좋을 것이라고만 짐작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성별의 아이가 한 반에 한 자릿수밖에 없는 교실에서, 속을 터놓을 단짝을 찾는 일은 훨씬 어려워졌을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부대끼며 사는 법보다, 혼자서 지내는 법을 더 많이 터득한 것 같다. 쉬는 시간엔 스마트폰에 빠져들고, 방과 후엔 운동장 대신 학원으로 향한다. 몸으로 부딪히고 살을 맞대는 친구들보다 화면과 목소리로만 만나는 친구들이 더 많다. 이모 삼촌은 친척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친구들이다. 나는 엄마 아빠의 친구들은 모두 아줌마 아저씨라고만 부르며 자라났는데 말이다.




저런 이야기들은 시작에 불과하다. 커가는 모든 과정은 너무나 다르게 묘사된다. 사실, MZ는 묶을 수 있는 세대가 아니라서다. 인접한 연령대들은 당연히 대략적인 공감대나 비슷한 특성이 있다. 세대는 1020, 2030, 3040으로도 나눠지지만 102030을 한 덩어리로 생각하는 순간 세대론 자체가 깨어지게 된다. 특히나,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변한다는 지금 같은 시기엔 오히려 10, 20, 30대 안에서도 차이가 선명해지고 있다.


X세대들은 1000년에 한 번 오는 세기말과 밀레니얼 초창기에 20대 청춘을 최대한도로 누린, 거침없는 젊은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MZ세대는 X세대의 향수와 환상을 와장창 깨뜨릴 만큼, 별 집단 감성이 없다. 같은 연령대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을 더 큰 세대로 묶어 규정하려고 하다 보니 <명품에 열광하면서도 가성비를 좋아한다> 같은 모순된 수식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라면까지 사이버 라면이었던 세기말 감성 그 시절


그러다 보니 때로는 MZ가 마케팅 용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느껴진다. 1020들이 열광하는 것이 분명 조만간 돈이 될 텐데, 이 친구들은 아직 주머니가 넉넉지 않으니, 2030에게 "요새 애들은 다 이거 한다던데, 너도 알지? 너도 아직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잖아"라고 속삭이며 지갑을 열게 하는 식 말이다.




'나눠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나눈 세대가 아니라, '묶으면 부르기 편하니까' 묶어버린 세대인 MZ는 그래서 자신들에게 붙은 이름에 시큰둥하다. 애당초에 MZ들의 이야기와 이유, 속내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면 그렇게 부르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너무 손쉽게 규정되어버린 MZ의 일원으로서, MZ세대라는 말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실천방안들을 고민해봤다. 이런 것들은 어떨까?   


    ―세대론을 말하고 싶다면 최소한 밀레니얼과 Z세대는 나눠보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MZ를 규정해온 수많은 수식어들이 대부분 M 아니면 Z에게만 해당되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해봤는데도 정말 102030 모두에게 해당된다면, 그게 혹시 40이나 50대에도 해당되지 않는지도 찬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행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육하원칙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자. 어떤 물건이/누구에게/왜 유행하는지 말이다.  그냥 '요새 유행'에서 '요새'를 별생각 없이 'MZ세대'로 바꿨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주변의 어려 보이는 사람들에게 웬만하면 "너 MZ세대지?"라고 말문을 열지 말자. 두 가지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질문한 본인이 늙다리 취급을 사서 받을 가능성이 첫째요, 이어지는 질문에 "글쎄 저는 그런 거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애매한 답변만 돌아올 가능성이 둘째다. 그냥 원래 묻고 싶었던 본론부터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아니, 사실은 가능하면 세대론 자체를 좀 덜 꺼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느 시대에나 각 세대의 유행이 있다. 2020년대의 10대의 유행이 있듯, 2020년대의 30대 유행도, 50대, 70대의 유행도 분명히 있다. 반면에 10대 안에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행의 첨단만을 좇는 스타일이 있다. 딸과 노는 것을 또래 친구와 노는 것보다 좋아하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반대인 사람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세대론은 분명 때때로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세대론이 매번 이렇게까지 붐인 것은, 그냥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나이'이기 때문에, 너무나 '-답다'라는 표현이 공고한 사회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20대가 막걸리를 좋아하면 "이야, 젊은 사람답지 않게 막걸리를 좋아하네"라고 하고, 나이 많은 사람이 패션에 신경을 쓰면 "이야, 어르신답지 않게 옷을 잘 입으시네요"라고 말하는 사회 말이다.


어떤 사람을 어떤 '나이'의 사람, 어떤 '세대'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짐작하기보다 그냥 '사람'으로 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MZ세대들에게 '이야, MZ라서 역시…'라든가 '이야, MZ답지 않게…'라고 말하기보단, 아니, MZ라거나 몇 살의 젊은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그냥 ○○○라는 한 명의 사람으로, 그냥 그렇게 보아주면 안 될까?


김명중을 거침없이 외치는 우리의 펭수가, 원래 ○○였던 펭수도, 누구의 펭수도 아니고 그냥 펭수이듯이!



참고

    MZ세대로 통칭되는 ‘요즘 것들’… M세대와 Z세대는 다르다? [뉴스 인사이드](세계일보 2021년 9월 19일)

    [질문하는 기자들Q] 언론이 소비한 ‘청년’…갈등 혹은 분노(KBS, 2021년 7월)

    "늬 아부지 뭐 하시노?" 대신할 질문은 없나요(시사인,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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