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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화 Apr 26. 2017

옛 직장을 지나다

어디에나 있는 좋은 것

오랜만에 을지로를 걷는다. 서울 올 때 m버스를 타고 자주 지나는 길인데 오늘은 일정 사이에 시간이 남아 홀로 유영하듯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지하철역에서 회사로 연결되는 통로에 있던 분식집과 1평짜리 커피집이 같은 이름으로 그대로 있어서 깜짝 놀랐다. 우리 동네 프랜차이즈 가게들은 몇 개월 사이에도 금방 업종이 바뀌는데, 어쩜 그대로일까. 회사 다닐 때 이 커피집 사장 언니가 제일 팔자 좋다고 부러워했는데 역시 이유 있는 부러움이었다.     



모교를 지날 때 혹시 내가 아는 선생님이 튀어나오진 않을까 기대반 두려움반이듯이, 혹시 가깝지도 않으면서 서로 아는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까 혼자 조마조마해 하며 회사 입구를 지난다.



그 때는 내가 다녔던 회사 건물이 일대에서 제일 쌔삥이었는데 이젠 주변 고층 빌딩 중에 제일 오래된 건물 같다. 지금도 그 회사 직원들은 이 건물에 부심이 있을까? 그 땐 장난 아니었는데. 이렇게 주변 환경이 좋아질 줄 알았다면 내가 회사를 조금 더 오래 다녔을까? 당근 상관 없었겠지만 '그 때는 못 누린 게' 조금 아쉽다.



이렇게 근사한 건물들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공기 같이 있는 줄도 몰랐던 저 유리창 한 짝도 내 공간에 들여 놓으려면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알까. 내가 몰랐듯이 그들도 모를 것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유능하고 재능 넘치는 존재들인지 사람들은 알까? 회사 밖에서 저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서로 척하면 아는 용어를 쓰며 의사소통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기회비용이 드는지 그들은 알까. 내가 몰랐듯이 그들도 모를 것이다.



나의 마음은 그리움인가? 아니다. 그 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가도 나의 선택은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든다. 이런 멋진 곳에서 지금의 마음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유리창 한 짝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과해 들어오는 햇살까지도 감사했으리라.



나의 마음은 아쉬움이다. 다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것도 많았는데 이렇게 멀리 돌지 않고서는 잘 느낄 수 없는 좋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런 좋은 것들이 지금 내 삶에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을지로 옛 일터 근처에서 나는 과거와 한 번 더 화해하고 감사를 느낀다. 모든 시간 모든 경험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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