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같은 너
임신을 확인하기 이전, 시댁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잠시 주말에 들렀다. 한참 식사를 맛있게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뜬금없이 꿈 얘기를 시작하셨다.
“내가 꿈을 꿨는데 말이야.
언덕 위에 큰 황금나무가 서 있는 거야.
거기에 황금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바닥에 떨어진 황금사과를 막 줍는 꿈을 꾼 거 있지”
어머니는 뭔가 더 할 말이 있으신 듯했지만, 딱 거기까지만 얘기하시곤 말씀을 멈추셨다.
“우와, 엄청 좋은 꿈인 것 같은데요.
어머니 이번 주는 로또 한 장 꼭 사세요”
나는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한번 유산한 사람은 다시 유산할 확률이 높단다. 그러다 보니 임신을 제대로 확정하기 전에 섣불리 얘기를 꺼냈다가 지난번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굉장히 컸다. 정확하게는 다시 유산을 경험하게 될까 봐 겁이 많이 났다. 마음속 아주 작은 곳에 혹시 내가 섣불리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를 했던 탓에 삼신할머니가 질투해서 우리 아가를 데려갔던 건 아닐까 하는 별의별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확실해질 때까지 절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남편 역시 나의 의견을 존중해 아기가 확실히 아기가 안정될 때까진 함께 입을 다물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뒤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느닷없이 엄마가 또 꿈 얘기를 하시는 게 아닌가.
“아니 간밤에 꿈이 너무 희한해.
엄마가 시골에 밭을 갔는데,
거기 황금덩이들이 막 굴러다니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열심히 줍는 꿈을 꿨어
너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병원은 혹시 가봤니?”
역시 엄마는 좀 더 직접적으로 물어보신다.
“어머 대박, 어머님도 황금 꿈꿨다고 하시는데 엄마도 황금 꿈을 꾸다니 진짜 태몽 아냐?” 라며 같이 호들갑을 떨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묵직하게 참아냈다. 이미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1차 확인은 마친 상태였지만 병원도 다녀오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에게 얘기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 같았다.
특히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비밀이라고 얘기했던 내용들을 이리저리 퍼뜨리는 재주가 있으시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이런저런 얘기를 잘도 늘어놓는 편이지만, 우리 아기를 소중히 지켜 주자는 마음으로 수다 떨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아냈다. 하지만 내심 시어머니와 엄마가 같은 황금 꿈을 꾸셨다고 하니, 나 스스로 임신에 대한 확신이 강하게 생긴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가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맘 카페에도 임신 사실을 언제 알리면 좋냐는 질문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예비 엄마들이 많은가 보다. 살펴보면 대부분 댓글들 역시 안정기에 접어들면 말씀드리기를 권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임신 극초기에 유산이 잦다 보니 그 부담이 작용하지 않나 싶다.
처음 임신을 확인하게 되는 5~6주 차에는 아가의 모습을 확인할 순 없고 아기의 먹이가 되는 난황 정도가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7~8주 정도 심장소리까지 듣고 나서 주변에 알리는 게 부담이 덜하다는 생각이다. 이 시기쯤 의사 선생님이 심장 소리를 들려주시면 초음파 화면에서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후쿵’ ‘후쿵’ 하며 작지만 강하게 울리는 소리는 엄마에게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8주 차에 아기의 첫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 그럼 심장 소리 한번 들어 볼게요”
선생님의 말과 함께 초음파 화면에 심장 박동이 꽉 차게 보였다.
진료실 내부가 울릴 만큼 너무나 크게, 확실하게 뛰는 아기의 심장 소리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줬다.
우리 아기의 심장이 저렇게 힘차게 뛰고 있다니. 소리를 듣는 중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엄마 뱃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날들이 무색할 만큼 강한 심장 소리를 엄마에게 들려줘 너무 고마워"
기특하게도 스스로 자궁 속에 아주 작은 집을 지어 자리 잡은 아기는 우리의 소중한 새 식구가 되었다.
그날 이후 비로소, 양가 식구들에게 나의 임신 소식을 다시 한번 알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