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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몽양 Dec 14. 2020

4. 퇴사 후 찾아온 기적

다시 임신이 되기까지

일주일 정도의 휴식 기간을 마치고, 다시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남편과 얘기를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유산 같은 것은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남편은 당분간 일을 쉬는 것이 어떻겠냐고 나에게 제안했다. 전화로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어서 놀라진 않았지만, 조금 고민이 되었다. 남편에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사실 임신을 하게 되면서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몸 관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임산부 친구들이 부럽긴 했었다. 내 몸과 마음이 바빠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나 자책하던 마음을 남편에게 들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

“그동안 쉴 새 없이 일했잖아. 좀 지쳐 보이기도 했는데 이번 일도 겪었고, 다른 하고 싶어 하던 일도 있었고… 이번 기회에 쉬면서 하고 싶던 일 한번 준비해봐”

“우리 둘이 벌다 혼자 벌면 지금과는 경제적으로 다를 텐데, 솔직히 좀 걱정되거든”

“그래서 계산을 해봤는데 적금 붓던 거 조금 줄이면, 둘이 지내는 데 충분할 것 같아. 

당장 한 두 푼 모으는 것보다 건강 회복하는 것도 그렇고 임신도 다시 준비해야 하는 데,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자기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편한 마음을 갖는 게 아닐까 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20대 때부터 일을 시작한 이후 8년 동안 큰 휴식의 기간 없이 지내며, 힘들지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려온 것 같다. 게다가 일에 집중하는 나에게 만족해 왔고,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도 갖고 있던 터라 아기를 갖게 된다 하더라도 일 자체를 그만둘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임신 전 임신하고 나서 쉽게 일을 그만두는 동료들을 보면 그만두지 말지 안타깝다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겪어 보니, 회사와 일을 병행하는 일은 쉽지 만은 않았다. 내가 만약 유산을 하지 않고 임신을 잘 유지했다면 퇴사 없이 회사와 일을 문제없이 병행했겠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회사를 계속 다닌다는 것이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우선 며칠 더 생각해보고 결심이 서면 다시 말해줄게”


다음날 아침, 평소와 같이 회사로 출근했다. 주변 사람들의 어색한 시선을 걱정했던 것 같다는 생각과 다르게 회사는 그 전과 다르지 않았고 쌓여있던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오전을 보냈다. 걱정이 담긴 말을 건넨 동료도 있었고, 모른 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끔 욱신거리는 통증이 찾아오기도 하고, 오래 앉아 있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하루를 보내기는 크게 어렵진 않았다. 퇴근시간 붐비는 지하철 속에서도 특별한 건 없었다. 한편으론 나만 조금 더 참으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생활 그대로 다 누리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이 났다. 그래서 그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회사를 그냥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남편의 의견은 달랐다. 


“선생님이 3개월 간 회복 잘하면 다시 임신할 수 있다고 했잖아. 몸도 제대로 아직 회복 안된 상태로 무리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 일단 좀 쉬고, 다시 일하고 싶을 때 그때 다시 일을 하던가 너 하고 싶어 하던 가게를 차리던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임산부들은 쉬면서 몸조리하는데 힘들게 일하면서 스트레스받는 거 보면 마음이 편하질 않아”


유산이 왜 나 혼자 견뎌야 할 아픔이라 생각했을 가. 남편도 분명 이번 일을 겪으며 함께 기뻐했고, 아파했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본인이 부족한 탓에 우리가 그런 일을 겪게 된 게 아닐까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마음고생한 것 같다. 그런 남편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나를 안심시켰다. 이제 필요한 건, 내가 지금 어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따져보는 것이었다. 돈을 버는 것, 그리고 아이를 갖는 것 둘 중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 길게 고민할 필요 없이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임신에 ‘왜’ ‘굳이’라는 의문은 사라졌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남편과 나 사이에 우리를 닮은 예쁜 아기를 갖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이루는 것이다. 더욱이 나의 경우, 남편의 배려로 잠시 일을 쉴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오랜 망설임 끝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꾸준히 일해 온 터라 한 순간에 백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 낯설긴 했지만, 남편 출근 후에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도 있고 평소 듣고 싶었던 세미나를 들으러 다닐 수도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평일 낮,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것도 가능했다. 평일 낮에 병원 방문도 할 수 있고, 미뤄 온 관공서 방문 업무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한 동안 오랜 업무의 보상을 받기라도 하듯, 혼자 전시회도 가고 공부하고 싶던 것들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 3개월이 지나갔다. 


그동안 마음 편히 잘 쉬고, 잘 먹은 덕분에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 기운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에 방문해 보니 선생님도 초음파를 해보시곤 자궁이 깨끗하게 잘 아물어 이제 다시 임신을 시도해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간혹 자궁유착이 생기거나 자궁천공 등의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의 경우, 수술이 잘 된 케이스라고 했다. 자궁근종은 원래 갖고 있던 거라 원래 크기와 상태, 개수를 유지하고 있는데 임신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듯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다시 임신을 준비해도 된다는 생각에 약국에 들러 배란테스트기를 구입했다. 지난 임신 때에는 사용해 본 적은 없었는데, 임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품이라 이번에는 사용을 해볼까 생각했다. 


배란테스트기는 제품에 소변을 묻혀 확인했을 때 두 줄이 진하게 간다면 배란일에 임박한 것으로 풀이하면 된다. 보통 임신에 성공하려면 배란일 기준 하루 이틀 전부터 2일 간격으로 관계를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왕 마음먹은 김에 빨리 임신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배란테스트기 측정을 시작했는데, 내 평소 생리주기와 다르게 어느 날 갑자기 테스트기에 진한 두 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수술 후 주기가 일정치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배란테스트기 결과를 믿어 보기로 했다. 다음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란일 확인을 하러 병원에 들렀다. 선생님은 검진을 해보시더니 벌써 배란이 된 것 같다며, 혹시 관계를 가졌냐고 물어보셨다. 다행히도 이미 그전에 배란테스트기로 확인을 할 수 있어서 시도를 했었고, 선생님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 2일 간격으로 더 진행해 보는 것을 권유했다. 


사실 병원에서 날을 잡아오고 그때에 맞춰 관계를 가진 다는 것이 임신을 준비하지 않아 본 사람들에게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도 처음엔 그랬다. 모른 척하고 싶은 기분이 들고, 때에 맞춰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게 되면서 분위기를 만들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평소와 같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데 굳이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무신경하게 마음을 먹는 게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런 편안한 마음 덕분인지, 우리는 수술 3개월 후 바로 다시 임신을 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 관계 후 이주 정도 지났을 때부터 몸살 기운처럼 으슬으슬하게 춥고, 기운이 빠지는 증상이 나타났는데 보일러를 강하게 틀어도 계속 춥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꺼운 이불속에 누워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 설마 임신이 진짜 된 건가 속으로 생각이 들었지만 김칫국을 마시고 싶진 않아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머릿속을 그냥 비워두기로 했다. 그래서 친구들도 만나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지내다 보니 원래 생리가 시작돼야 할 일정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아침 첫 소변으로 확인해 보니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다시 한번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보여주며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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