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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몽양 Nov 30. 2020

2. 소파수술을 하다

7주 간의 임신

병원을 나왔지만, 일말의 희망은 버릴 수 없었다. 카페에 앉아 남편과 검색을 해보니 8주 차에 갑자기 아이가 나타났다는 글들도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혹시 오진일 가능성은 없을 까. 그렇지만, 실낱 같은 희망을 잡고 방문한 다른 병원에서도 역시 아기의 형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1주일을 뒤숭숭하게 보내며 혹시라도 다음 주에 아이가 짠하고 나타나길 빌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수술을 하게 된다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괜찮아 질까. 그저 마취에 몸을 맡기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낼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절망과 희망을 번갈아 가며 느껴야 만 했다. 결국 기적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주 방문한 병원 진료에서 나는 또 한 번 공허하게 텅 비어있는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기집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얼른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술해도 나중에 임신엔 문제없겠죠?”

“오히려 수술 후 임신이 더 잘된다는 케이스들도 많아요.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산부인과에서 흔하게 하는 수술이에요”

“금식하고 오셨죠?”

“네…”


내가 한 수술의 정식 명칭은 ‘소파수술’이었다. 질 내부로 기계를 넣어 자궁의 내막을 긁어내는 수술이라고 한다. 수술 대기실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와 아빠가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이 끝나면 친정으로 돌아가 아무 생각 안 하고 푹 쉬고 싶어 부모님을 불렀다. 애써 태연한 척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절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싫어 멋쩍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곤 수술실로 걸어 들어갔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간호사 선생님은 우선 옷부터 갈아입으라 하고 나를 침대에 눕혔다. 내가 느낀 산부인과 수술 침대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차갑고 딱딱했다. 진료 의자와 비슷한 형태로 생긴 침대는 일자 형태의 침대 아래 양다리를 벌리는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간호사분들은 혹시나 내가 마취 상태로 발작할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 양 팔과 다리를 벨트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팔과 다리가 묶인 상태로 누워 있으니, 계속 억눌러 왔던 슬픔과 동시에 공포감이 몰려드는 것 같았다. 


곧이어 마취과 선생님이 들어왔고, 팔에 바늘을 찔러보시더니 미안한데, 핏줄이 얇은 편이라 주사 바늘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얇은 바늘을 사용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괜찮은 걸까 고민도 잠시, 바늘이 핏줄을 관통하는 아픔에 몰두하게 되고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수술은 시작되었다. 


“마취약 넣겠습니다”


선생님이 이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서러웠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 가. 괜히 아이가 내 자궁 안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게 나의 잘못처럼 느껴지고, 내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아이가 떠난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 후회스러웠고 미안한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밀려들어왔다. 그러자 심장박동이 거세지고 참아온 눈물이 터지며 울음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잠들었을 것이다.


눈을 떠보니 수술을 받았던 침대 위였다. 아무런 고통도 느낌도 나지 않았지만 취한 것처럼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수술을 마쳤고, 아주 짧았던 첫 임신이 종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나를 부축하시고는 잠시 휴식할 수 있는 침실로 이동하겠다고 했다. 수술실 바로 옆에 병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1시간 정도 휴식하면 퇴원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엄마가 병실로 들어왔다. 면회는 한 사람밖에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엄마가 먼저 왔다고 했다. 엄마에게 자궁근종들 때문에 수술은 어려웠지만, 매우 잘되었고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긴 했지만, 허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엄마와의 짧은 대화 이후 남편이 방문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에게 생긴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얘기해 줬다. 쉴 새 없이 눈물이 나다 마르다 했던 것 같다. 그런 대화도 잠시, 15분 정도 지났을 까 배가 미친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 식은땀이 날 정도였는데 누가 나의 장기를 콱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하는 것처럼 강한 수축이 반복됐다.


간호사 선생님을 다급하게 불러 마취약 좀 놔주면 안 되냐 물어봤는데 20분 정도 자궁수축이 진행될 건데 지금은 마취를 해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마취약이 다시 투여되기 전까지 얼마나 아팠던 지 안쓰럽게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이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얄밉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출산할 때 산모들이 남편 머리 끄덩이를 잡는다고 하는 걸까 짧은 순간에도 별 생각이 들었다. 


몸속 장기를 쥐어짜는 것 같이 느껴지던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마취약이 투여되었다. 순식간에 고통은 사라졌고 링거를 끝까지 맞고 나니 한결 나아져 몸을 일으켜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다. 총 수술 시간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고, 병실에 1시간 정도 더 휴식한 후 바로 퇴원하는 수순이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큰 행복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 7주 간의 첫 임신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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