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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몽양 Dec 07. 2020

3. 어쨌든 회복이 되더라

몸도 마음도 회복할 시간

예전에 내가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불명예스러운 복귀를 했다며 농담을 하셨다. 이 상황에서 그런 농담을 하는 아빠를 보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서서히 마취가 풀려서 그런지 집에 도착하고 나니 기운이 쭉 빠져, 곧바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어차피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3~4일 정도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해서 푹 쉴 요령이었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시댁에 연락을 드렸다. 수술은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고, 집에 잘 도착해서 쉬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건강하게 회복하는 게 가장 우선이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몸조리 잘하고 푹 쉬라고 하셨다. 통화를 끊고 나니 괜한 죄송스러움이 밀려들며 속에서 착잡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얼마나 아기 소식을 반기셨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산 소식을 안겨드리는 게 너무 속상했다.


“이럴 거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걸…”


뒤늦게 후회해 봤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 되어버렸다. 


후회도 잠시, 금세 마취 기운이 풀린 건지 날카로운 고통이 찾아왔다. 누군가 자궁을 칼로 난도질 해 놓아서 얼얼하고 땡땡하게 부푸는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아랫배가 도톰하게 부어올라 보였고 만지면 단단했다. 극심한 통증까지는 아니었지만, 평소 내 기준 생리통보단 심한 통증이었다. 몰랐던 내 자궁이 지금 어디 위치에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은 존재감을 뿜어내는 아픔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2~3일 간 통증과 출혈이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잠을 청하는 것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엄마가 나를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수술 후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식사는 평소대로 할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일반식을 먹었다. 엄마는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놓으시고, 내가 좋아하는 굴전과 생선구이까지 잔뜩 만들어 놓으셨다. 유산도 출산과 똑같이 몸보신해야 한다며 미역국 든든히 먹으라고 하셨다. 약 기운 탓에 입맛이 없어서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미역국을 많이 먹어야 빨리 회복할 수 있다는 말에 열심히 먹었던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환자라는 이유로 나는 다시 눕고 아빠가 대신 상을 정리해 주셨다. 


내가 결혼하고 나간 뒤 아빠가 많이 변하신 건지 엄마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시는 모습에 웃음이 픽 났다. 모르는 새에 집안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30년 넘게 경찰로 근무하다 올해 정년을 맞이하셨다. 집에 계신 시간이 늘어난 탓에 가만히 앉아 엄마가 해주는 밥만 먹을 순 없으셨던 것 같다. 아빠가 설거지하고 계신 틈에 엄마와 나는 소파에 나란히 누워 수다를 떨었다. 


“그래도 너 와서 있으니까 심심하진 않다. 그렇지?”

“엄마 귀찮게 하는 사람 늘어난 거지~”

“조금 괜찮아지면 아빠랑 인천에 바람도 쐬러 가고 그러자~오래 푹 쉬다가”


여전히 아픔은 이따금씩 찾아왔지만, 서로 농담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조금씩 몸과 마음이 아물어 갔던 것 같다. 월요일을 앞두고 계속 미뤄왔던 일을 해야만 했다. 바로 회사에 수술 소식을 알리고 휴가를 받는 일이다. 다른 것 보다 사유를 내 입으로 설명해야 할 때 혹시나 다시 눈물이 터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개인적인 일을 회사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사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심코 말한 얘기들이 나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되돌아온 날도 있었다. 그 이후론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적당한 관계를 두고 일하는 것이 편했다. 


당연히 임신 사실 역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사람들의 곤란한 표정과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이 싫기도 했다. 그런데 임신 소식을 건너뛴 유산 소식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다. 비약이 심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위로도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나의 불행에 대해 ‘그래도 난 저 사람보다 낫다’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빌미도 제공하기 싫었다. 그래도 별 수 없이 회사에 알려야 하니 침대에 누워 최대한 담담해 보이는 단어들을 골라 머릿속으로 한번 정리한 뒤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어쩐 일이야”

“주말에 연락드리게 된 건 죄송한데, 갑작스럽게 제가 수술을 하게 되어서요”

“응? 무슨 수술?”

“유산을 하게 됐어요”

“어…”

뭐라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그래. 몸은 괜찮고?”

“네. 회복을 해야 해서 회사를 당분간 못 나갈 듯해요” 

“알았어. 경영지원팀에 얘기해 놓을 테니 몸 관리 잘하고… 혹시 업무 관련해서 급한 건은 연락할 수도 있어. 그런 건들은 처리 좀 해줘”

“네. 연락 주세요”

“그래. 힘내”

“네”


짧은 통화가 끝났다. 다행히 눈물이 터지 진 않았지만 ‘유산’이라는 단어를 내 입에서 꺼내야만 할 때 가늘게 목소리가 떨렸던 것 같다. 마지막 힘내라는 말이 그다지 가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부장의 그 말이 정말 진심이었던 혹은 맨날 잘난 척하더니 아기 하나 제대로 못 갖는 여자라고 나를 동정했든 간에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단어 선택이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다만 나는 누군가에게 부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불쌍한 혹은 안타까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산을 언급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얼핏 보기에 다른 사람은 모두 잘 해내는 그 일을 나는 해내지 못했다는 수치심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 인 것 같다. 착잡 하긴 했지만 이로서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생각하니 홀가분하기도 했다. 병원에서 권고해 준 휴식 기간은 총 5일. 짧다고 생각하면 짧지만 몸을 회복하기엔 충분한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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