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몽양 Feb 22. 2021

7. 너를 처음 만난 날. 엄마는 울었어(下)

수술의 고통을 이겨내는 순간  

제왕절개 수술 후 고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했다. 맘 카페 게시글은 수술 후 고통을 내장이 쏟아지는 느낌으로 묘사했다. 때문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로 고통스러울 줄이야. 우선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이틀 동안 소변줄을 껴야 하고, 눕혀놓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통증 제거를 줄여 준다는 페인 버스터를 신청해 분명히 꽂혀 있는데도 인생 최대의 아픔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오로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산모패드를 착용해야 하고, 일정 시간 후 산모패드와 소변통을 간호사분들이 교체해 주신다. 개인적으론 '제모'보단 오히려 소변통, 산모패드를 교체할 때가 더 굴욕적이지 않나 생각했다.   


그렇게 이틀 간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욕창을 방지하려면 살짝 자세를 변경하라고 하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으아아 아'하는 비명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 간호사분이 소변줄을 제거해 주시면 상황은 더욱 힘들어진다. 소변줄을 제거한다는 말인즉슨, 혼자서 화장실을 가야 한단 얘기다. 허리도 펴지지 않는 채로 링거대를 꼭 부여잡고 한 발 한 발 디디는데 병실 내 화장실에 가는 길이 지옥같이 느껴진다. 남편이 옆에서 부축해 주지만 화장실 안에선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싸움이다. 옷을 내리고, 볼일을 보고, 옷을 다시 입으려면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 


의사 선생님은 빨리 회복하려면 걸어야 한다고 하는데, 도무지 걸어 다닐 엄두가 안 났다. 그러던 중 면회시간이 다가왔다. 남편은 아기를 혼자 한번 보고 온 적이 있는데, 나는 소변줄 때문에 이제야 볼 수 있게 된 거다. 그런데 면회실까지 링거대를 끌고 가기가 너무나 겁이 났다. 허리도 안 펴질뿐더러 앞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나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면 모성애가 생긴다는데, 이 때는 몸이 너무 아프니까 아기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조금 괜찮아지면 보러 갈까라는 생각이 한편으론 들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기를 두고 다음 날 가볼지 고민을 하게 되더라. 남편 역시 몸이 조금 나아지면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만류했지만 결국 나는 면회실까지 가는 걸음에 엄마의 의지를 담아 보기로 결정했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내게는 엄마로서의 첫 의식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남편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일어나 두 발로 땅을 딛자마자 링거대를 부여잡고 천천히 허리를 펴봤다. 역시 허리는 절대 펴지지 않는다. 그냥 구부정하게 ㄱ 자로 선채 링거대를 끌고 가보기로 한다. 링거대를 천천히 앞으로 밀고 다리를 지익 지익 끌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 끝 면회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우리 아기를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나를 알아본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 아빠가 아기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소중히 우리 아기를 들어 올려주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우리 아기가 배시시 하며 웃었다. "자기야. 우리 아기 웃는 거봐"하며, 두 번째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주변에 다른 산모들과 보호자들이 있어서 유난스러워 보이는 것 같아 굉장히 창피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란 어려웠다. 병실에 누워 쓸데없는 고민을 했던 나에게 우리 아기는 세상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엄마가 된 기쁨을 안겨줬다. 이제 6개월을 넘긴 시점, 지치고 힘든 육아의 순간 나는 우리 아기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준다. 


  


 

이전 06화 6. 너를 처음 만난 날. 엄마는 울었어(上)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