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가오리 피아노!

버킷리스트를 적어보세요

by B급 사피엔스


작가 사인회,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대륙으로 유럽 횡단 여행, 희곡 유리동물원의 톰... 몇 가지 버킷리스트가 있지만, 첫 번째로 가장하고 싶은 원픽은 따로 있다. 다소 소박(?) 하다 싶을 수도 안 어울린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첼로 연주다. 이유는 그냥 멋지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심취할 수 있는 그 시간. 계기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부터 시작됐다. 영화음악 OST - 지브리 영화음악 OST - 지브리 오케스트라 순으로 동영상들이 추천되더니, 어느 날 ‘브루클린 듀오’라는 채널의 파헬벨의 캐논이 재생됐다. 듣다 보니 음악이 너무 좋아 영상을 보게 됐고, 영상을 보니 연주가 더 훌륭했다.


피아니스트 여성과 첼리스트 남성의 협연은 정말 멋졌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교감을 하다가도, 지그시 눈을 감고 자신만의 연주에 심취하기도 한다. 특히 첼로, ‘남자가 우아하게도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간을 찌푸리듯 자신의 연주에 몰입하는 행동과 그 행동이 연주라는 행위를 통해 만들어지는 음악과 장면들은 '멋지다'였다. 그 이상의 적합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반한 표현보다 간절하게 딱 떨어 한마디. ‘멋지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


이 정도면 버킷리스트하고 하기엔,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난 욕심이 과하다. 요즘은 악기를 다룰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을 위해 한 곡만 연습하는 한 곡 레슨도 있다지만, 저 정도의 연주를 하려면 한 곡 레슨으로는 성이 안 찬다. 그냥 따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몰입해서 해보고 싶다. 한 만 번 정도 반복 연습을 한다면 모를까? 그래서 버킷리스트다.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축가로 한번 연주해 주고 싶기도 하다(물론 가족 모두가 반대할 것이지만).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아이가 악기 하나쯤은 배웠으면 하는 욕심이거나 바람이 있다. 그런 바람에 기타도 디지털 피아노도 구비를 해줬건만, 집에서 음악 소리는 기약이 없다. 스스로 동기가 생겨야 하니 침만 삼킬 뿐이다. 참교육의 산실인 삼각산재미난학교(실제 존재하는 대안교육기관이다)에서 자유로운 배움을 찾아가며, 음악에 취미를 갖길 바랄 뿐이다.


학창 시절엔 관악기에 흥미가 있던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땐 우연한 계기에 트럼펫을 조금 배워 학교 종이 땡땡땡~까지는 했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오카리나에 관심이 생겨, 일본 작곡가 이자 연주가인 소지로의 대황하를 연습하기도 했었다. 그때 수집했던 오카리나는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창고 어딘가에 보관돼 있다.


살면서 악기 하나 정도는 연주할 줄 알았다. 악기도 하나 못 다루는 삶은 너무 밋밋해 보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내 삶은 밋밋 더하기 다리미판 같다. 더 늦기 전에 방구석 디지털 피아노라도 두드려 봐야겠다. 가오리역 근처 피아노 성인반도 기웃거려 보고. 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피아노는 가능하지 않을까?


누구는 ‘날아라 가오리’라고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던데, 현실적인 타협 선에서 내 첫 번째 버킷 리스트는 ‘날아라 가오리 피아노’ 정도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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