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조관과 조사관과 대질심문관의 그 어디쯤

당신의 MBTI와 같은 사람들만 모여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by B급 사피엔스


취조관. 가까운 미래, 어두컴컴한 밀실 속. 천장에 달린 희미한 조명만이 홀로 이곳을 밝히고 있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뺨에는 땀방울이 흐르고, 진공상태의 적막감 속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공간을 타격하듯 울린다. 디테일에서 승부는 결정된다. 목적은 무엇이고, 어떻게 할 것인지, 진행 절차는 순차적으로 나열되어 있는지, 일정은 빠짐없이 체크되었는지, 막연하고 모호한 개념은 없는지, 하나하나 캐내듯 상대방의 빈약한 연결고리를 파헤치려 가늘게 눈을 뜨고 자료를 응시한다.


이윽고 발견된 흠결들, 그러나 전체 프로젝트에 비추어보면 이 정도 자잘한 흠결들은 전체 프로세스에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로 미비하다. 빠짐없이 잘 정리돼 있다고 칭찬해 줄 만하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격하게 하이파이브. 실제 결과물을 확인한 순간, 공감대를 넘어선 연대감과 만족감으로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조사관. 몇 년 전, 아주 간단한 의문 사항이 생겨 팀원에게 경영관리팀에 문의해 확인해 보라고 했었다. 며칠 후 팀원의 뜻밖에 이야기. 경영관리팀에서 자신들의 담당 업무가 아니므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 간단하고도 기본적인 질문에 업무 분장을 운운하며 확인해 줄 수가 없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팀원과 스무 고개를 넘듯, 무슨 내용을 어떤 식으로 질문했는지 묻기 시작했고, 팀원은 내게 조사받는 사람처럼 모호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계속된 구체적인 질문에 급기야 사내 메신저를 통해 30분이 넘도록 직접 대화한 내용을 모두 보여주었다. 맥락을 보니 왜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짐작이 갔다. 경영관리팀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1분 정도 통화했을까? 의문 사항이 해결됐다. 둘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30분이 넘도록 주고받았던 것이다. 팀원은 조사관에게 숨길 수 없는 증거에 딱 걸린 사람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두 손의 깍지를 꽉 쥔 채 말없이 앉아있었다.


대질심문관. 아주 오래전 회의, 작업자 두 명이 동시에 제출한 결과물은 판이하게 달랐다. 하나의 컨셉에 대한 A, B 안이 아닌, 전혀 다른 컨셉의 두 가지 결과물을 가져왔다. 서로 어떻게 협의가 되었는지 하나씩 묻기 시작했고, 결국 메일로 오고 간 협의 내용을 삼자대면하듯 한자리에서 같이 확인했다.


엉뚱하게도 나는 두 사람에게 각자 ‘푸른색’을 찾아 출력해 오라고 주문했다. 한 사람은 ‘녹색’을 다른 한 사람은 ‘파란색’을 출력해 왔고, 두 사람은 서로 본인이 출력해 온 색이 나름의 이유로 당연히 푸른색이라 주장했다. 나는 “둘 다 푸른색이 맞다. 다만, 내가 말했던 그 푸른색이 ‘내가 무엇을 생각하며 푸른색이라 말했는지’ 그 의도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간단한 푸른색도 서로 생각이 이렇게 다른데, 실체가 없는 상상의 영역인 광고 디자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서로 생각의 간극을 좁히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치열하게 만나서 이야기하는 방법뿐이 없다고 내 허벅지를 꼬집으며 말했다.


내 MBTI는 다른 3개의 평균 점수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의 T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내 MBTI를 가진 사람들만 죄다 모아놓은 다면, 취조관 또는 조사관 아니면 대질심문관의 그 어디쯤에 있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끔찍하고도 오싹한 세상이 될 것이다. 나도 그런 세상은 탈출하고 싶다. 순간순간 이해하지 못할 또는 혈압 오르는 사건 사고들이 다반사지만, 그래도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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