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아끼는 물건이 있나요?
"이렇게 크고 좋은 차가 올지 몰랐어~!!!"
아이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차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자리에도 앉아보고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발을 동동 구른다. 연신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차를 어루만지기도 쓰다듬기도 하다가 대뜸 나를 쳐다보며 외쳤다.
"빛나는 타이어!!"
"그게 뭔 데?" 나는 물었다.
"우리 차 이름이야. 빛나는 타이어!"
아이는 아가를 토닥이듯 차를 토닥이며, 애정 어린 마음을 듬뿍 담아 말했다. 탁송으로 인계받은 차는 광택을 내서 봄 햇살에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와이프가 갑자기 중고차라도 하나 사자고 했다. ‘갑자기 차를 사자고? 왜? 이만큼 애 키우면서 지금껏 차 없이 지내왔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또 앞으로도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 차를 살 계획이 아예 없었다.
와이프는 아이가 며칠째 풀이 죽어 있다고 했다. 같은 반 아이들 중 우리 집만 자동차가 없다고 했다. 아이는 우리 집이 몹시도 가난해서 남들은 다 있는 자동차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처음엔 그냥 넘겼었는데, 무언가 살려고 하면 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보며,
"우리 돈 있어?"
이런 말을 했다. 풀 죽어 있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또 뜨겁게 타올랐다. 어차피 차는 있으면 쓸모가 많으니, 이번에 하나 장만하기로 했다.
마침 친한 친구가 중고차를 겸하고 있어, 원하는 차를 금방 구해주었다. 고맙게도 광택을 내서 완전 새 차처럼 보냈다. ‘고맙다 친구야’ 운전 연수를 마치고, 처음으로 가족 모두가 시승하고 대형마트를 가던 날. 와이프가 어찌나 뒤에서 잔소리를 넘어선 타박을 하던지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았다. 운전이 좀 심하긴 했다.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핸들을 꺾을 때마다 차에서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며, 각을 보고 거리를 확인했다. 아이는 그래도 좋은지 뒷좌석에 앉아 연신 아빠를 응원했다.
아이가 더 어린 아가일 때도 우리 가족은 차 없이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자주 여행을 다닌 편이었다. 아기 띠를 하고, 배낭을 메고, 양손에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다. 차가 생기니 여행에 큰 변화가 생겼다. 더 멀리, 교통편에 구애받지 않고, 더 자주 여행을 가게 됐다. 아이방에는 전국 지도를 붙여놓고 여행 다녀온 지역을 스티커로 붙였다. 의외로 운전 체질이었다. 장거리 운전은 힘들고 졸리다던데, 할만했다. 오히려 운전할 때만큼은 잡생각이 없어져 좋기도 했다. 강원도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가 됐고, 부안, 고창, 경주, 거제도로 신나게 여행을 다녔다.
6년 정도 지나니 차가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다. 특히 디젤 SUV의 엔진 소리. 한번 신경이 쓰이니 운전할 때마다 못마땅스럽다. 오래되기도 했고, 디자인도 올드하다. 지금껏 잔고장 한 번 없고, 성능도 문제없지만 트집 잡을 곳을 찾고 있었다. 허파에 들어간 바람으로 유튜브에서 자동차 리뷰를 매일같이 보며, 이 차는 어떻고, 저 차는 어떻고를 와이프에게 들리도록 궁시렁거렸다.
점점 차를 '바꾸고 싶다'에서 '차를 바꾸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한숨짓는 와이프와 쓸쓸한 표정의 아이. 와이프는 그런다 치지만, 아이는 왜 쓸쓸한 표정을 짓는 건지 의아했다. 아이는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단다. 빛나는 타이어가 친구 같다고 했다. 여기저기 타고 많이 다녔다면서 '히잉' 하는 소리와 함께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아이에게 "물건은 언젠가는 바꿀 수밖에 없어. 영원히 사용할 수는 없는 거야."라며, 탐욕에 물든 입으로 동심을 파괴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여전히 화물트럭 소리가 나는 빛나는 타이어를 몰고 다닌다. 흔히들 말하는 똥차, 오래된 연식의 낡은 차다. 요즘은 흔하디 흔단 어댑티브 크루즈 기능도, 차선이탈 방지 기능도 없다. 그래도 지름신이 강림하셨던 때를 넘기고 나니, 나도 아이처럼 왠지 정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집 첫 차, 우리 가족의 여행과 추억이 고스란히 베여있는 차다. 이번 주말은 빛나는 타이어에게 세차 한번 시켜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