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은 코피를 남기고...

신이 나를 만들 때 조금 더 넣은 것과 조금 덜 넣은 것은?

by B급 사피엔스


“300년?!!”


놀란 목소리가 가게 안을 울렸다. 이스라엘 측 사람들은 나의 오버 리액션에 유쾌한 반응을 보였다. 어색하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 답답한 회식자리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이스라엘 측 현지 파트너사 4명, 사업 제휴를 위해 한국에서 온 우리 측 5명. 무슨 이야기를 하든 상대방 이야기를 우리 직원이 다시 통역해 준다. 대화의 흐름이 툭툭 끊기고,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맥주만 홀짝홀짝 들이켜고 있는데, 나를 놀라게 한 이야긴 즉 이 거리에 보이는 모든 가게들은 최소 300년 이상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내 눈이 똥그래졌다. 300년이 더 됐다면, 조선왕조 중세 때부터 있던 가게 아닌가? 순간 터져 나온 감탄사에 상대편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 지역에 대해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놀란 눈으로 가게 내부를 바라보며 건물 벽에 사용된 벽돌과 바위를 쓰다듬기도 했다. 이런 나의 적극적인 반응이 좋았던 것인지, 계속해서 이곳 ‘올드시티’와 이스라엘 문화를 이러쿵저러쿵 설명해 주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중간중간 통역과 바디랭귀지 덕분에 원초적인 의사소통은 이뤄질 수 있었다.


다음날 계속되는 미팅. 뜻 모를 영어 자료와 이틀 전 12시간의 비행, 어젯밤 회식의 여파로 눈은 감기고, 분위기는 벽돌처럼 딱딱하기만 했다. 한참 대화가 오가다 통역 담당이 머리를 긁적이며, ‘이게 무슨 뜻이지?’ 싶은 표정을 지었다. 언어보다, 그 말의 뜻이 생소한 듯싶었다. 아주 희박한 확률로 우연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 단어 하나가 내 귀에 휙~ 꽂혔고, 하루를 통틀어 처음으로 입을 연 순간이었다.


“USP?!!” 데시벨이 정점을 찍었다.

“응. 무슨 뜻인지 알아? 의미 파악이 잘 안 되네…” 회사 직원이 내게 물었다.

“혹시 Unique Selling Point를 말하는 건가?”


반대편에 앉은 이스라엘 측 직원들이 반갑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나도 아는 게 하나 나왔다. USP는 제품의 특장점을 의미한다. 다른 제품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사 제품만의 고유한 특장점. USP는 곧 제품의 핵심 소구점이며, 광고나 홍보의 핵심 메시지로 사용된다. 이런 개념을 통역 담당에게 설명해 줬고, 상대편도 굳이 통역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조금 생기가 돌았다. 통역 담당은 계속해서 적절한 리액션을 취해달라 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남자 5명이 날아와 제품의 기술, 협력 방식, 공급 단가 등을 협의하는데, 서로 긴장하고 분위기가 경직될 수밖에 없다. 언어가 안되더라도 지금처럼 적절한 반응을 보이면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고, 협상이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음, 이런 반응은 본능적으로 나오는 건데, 뭘 알아들어야 리액션을 하지? 어쨌든 오후 미팅은 오전보다 좀 더 활기찬 분위기로 진행됐다.


마지막 미팅 날. 이스라엘 측에서 근사한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다. 텔아비브에서 꽤 이름 있는 유명 식당이라 했다. 코스로 제공되는 음식들은 좋아 보이면서도 낯설었다. 양고기, 염소고기가 냉채 요리 비슷하게 나왔다. 기대와 다르게 우리는 잘 먹진 못했다. 디저트로 초콜릿 무스 같은 게 예쁜 그릇에 담겨 나왔다. 꾸덕한 질감의 진한 초콜릿 맛에 모두 숟가락을 갖다 댔는데, 재료를 듣고 모두 경악하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닭! 간?!!!”


순간 튀어나온 괴성과 함께 엄청 떫은맛을 느낀 표정을 나는 짓고 있었다. 상대편은 나의 유난스러운 리액션이 싫지 않았던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디저트는 닭 간을 찐 후 곱게 갈아서 초콜릿을 듬뿍 넣고 만든 거라 했다. 이스라엘은 닭 간으로 만든 요리를 종종 먹는다며, 맛있게 먹는 시범을 보여줬지만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7박 9일간 출장은 기대와 달리 엄청 고달팠다. 날씨는 40도를 가뿐히 넘기며 43도를 오갔고, 하루 종일 계속되는 미팅은 내 기운을 탈탈 털어갔다. 4일째부터는 코피를 매일 쏟았고, 입술도 부르텄던 것 같다. 내가 유독 무더위에 취약한 탓도 있었다. 미팅이 끝나면 격이 다른 무더위와 피로감으로 침대에 픽픽~ 쓰러졌다.


텔아비브의 멋진 해변이나 카페거리, 전 세계인들이 찾는 화려한 도심의 밤거리도 나를 유혹하진 못했다. ‘언제 또 여기를 와보나?’ 했던 생각이 며칠 만에 싹 사라졌다. 아마도 신은 내게 남보다 살짝 오버하는 리액션과 더불어 더위를 견디는 능력은 0점을 주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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