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에스프레소가 있는 작은 카페의 창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by B급 사피엔스


오전 11시 즈음. 4월이나 5월. 창가를 통해 비춰오는 부드러운 질감의 햇살. 테이블에 놓인 에스프레소 한 잔. 진하게 응축된 커피를 홀짝이는 짧은 시간. 이 시간과 계절이 마련해 주는 카페의 분위기는 이때가 지나가면 또 내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오전이 주는 나른함, 얼굴을 감싸는 햇볕의 따뜻함, 창가 너머로 천천히 움직이는 듯한 길거리의 풍경들. 에스프레소 잔 위에 떠 있는 크레마는 햇살을 포개 놓은 듯 부드러운 봄기운을 듬뿍 머금고 있다. 금세 바닥이 드러나는 에스프레소 한 잔은 오랜 시간을 머물지 않고, 자리를 일어날 수 있도록 섬세함을 더한다.


얇고 가벼워진 바람은 문고리를 붙잡고 버티듯 아직 쌀쌀함을 전하지만, 이에 질세라 곧 무더 위로 환승 준비를 마친 햇볕은 따뜻하게 주위를 감싸고 돈다. 그래서 봄은 스치듯 왔다 간다. 봄이 잠시만 머물 듯 카페도 스치듯 머물고 지나가야, 이 분위기를 진정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카페는 주변에 있는 작고 아담한 카페, 개성 있는 카페면 어디든 상관없다. 봄은 어디에 있든 구석구석 찾아가니까. 카페 문을 열면 딸랑이는 풍경 소리가 나고, 커피를 분쇄할 때 나는 왜왱~ 소리,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추출할 때 나는 우웅~ 소리가 뒤섞이며, 한가로운 오전의 소박한 일상을 채운다.


창이 넓어 햇볕이 쏟아지고, 테이블은 예닐곱 개 정도,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듬성듬성 보이고, 카페지기의 취향이 담긴 독특한 소품들이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는 카페. 단층이기도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2층이기도,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기도, 원두 자루가 한쪽에 쌓여있기도, 흔히 만나기 어려운 전문 서적과 낡은 책들이 꽂혀있기도, 모두 그런대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처럼 카페 공간과 한데 어우러져 재미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봄이 더해지면 동화책의 한 페이지를 살짝 열어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카페는 혼자서도 둘이서도 좋다. 셋이면 봄과 에스프레소와 햇살을 만끽하기가 조금 부산해진다. 약속 시간에 5분 정도 늦는 친구를 느긋하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창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앉으면 저절로 봄기운이 스며들고, 봄의 정령을 가득 담은 햇살이 창가에 어른거리다 테이블에도 앉았다가 이내 에스프레소 잔에도 슬며시 발을 담근다.


에스프레소냐 드립이냐를 두고 망설일 수 있겠지만, 창가에 앉아 봄을 맞이하는 커피는 에스프레소여야만 한다. 푸릇푸릇한 새싹이 솟아나는 봄처럼, 커피의 향과 맛이 아주 작은 에스프레소 한 잔에 모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짧은 여운을 남기고 금세 사라지는 봄처럼, 에스프레소도 역시 그러하다.


몽당연필처럼 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리 닳도록 사용한 적도 없는데, 뭉툭하게 짜리몽땅 해져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잔할 시기도 점차 짧아지고 있다. 비를 피하고, 황사를 피하고, 화창한 주말 카페 창가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즐기기도 쉽지 않아 지고 있다. 오전 11시 즈음은 더욱 그렇다. 흔한 듯 흔치 않은 봄이 되고 있다.


4월에 한 번, 늦지 않은 5월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카페를 찾아 에스프레소를 마셔야겠다. 창가에 앉아 완연한 봄 햇살을 맞으며, 살짝 다녀간 흔적 정도만 남기겠다. 그리고 내년에 돌아오는 봄을 기대하며, 아담한 카페를 찾아 기다리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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