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세상을 위해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by B급 사피엔스


"당신은 기도 내용이 뭐야?"


내가 성당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미사의 마지막 순서인 기도를 마치는데, 그날따라 와이프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물었다.


"세계 평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와이프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장난치지 말고, 무슨 기도했어?" 나도 함께 웃으며 말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했다니까" 다시 와이프가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찰싹 치며 물었다.


"장난치지 말고, 뭔데?" 진짜 궁금한 표정이었다.


"왜?" 나는 되물었다. '무슨 의도가 있나?' 아님 성당을 다닌 지 얼마 안 된 신입 미카엘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 정말 궁금했나 싶었다.


"그냥" 와이프는 별 뜻 없었다는 듯 대답했다.


"진짜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고. 헐벗고 기아에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서, 전쟁통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모두 평화롭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이 말을 들은 와이프의 표정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성당에서 마무리 기도를 한다는 것이 진짜로 믿어지지 않았나 보다.


'뭐 인생 대박 나게 해 주세요! 이럴 줄 알았나 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의 표정이라곤 일도 없는 와이프에게 계속 진짜임을 어필했다. 내가 원래 인류애에 관심이 많지 않냐는 둥,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알고 있지 않냐는 둥, 왜 군대 제대하고 무전여행 다녔을 때도 꽃동네에서 2주간 환자들 돌보며 자원봉사도 했었잖느냐는 둥, 과거 이력을 들먹이며 진정성을 어필하는 내게 와이프는 반신반의의 표정을 끝끝내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때가 와이프 뱃속에 아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한참 전 이야기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지 않게되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냉담 중이기도 하지만, '세계 평화' 같은 거대 명제보다, 현실적으로 내가 몸으로 부대끼며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가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숭고하고 중요한 가치들이 많고 많겠지만, 내게는 아주 소박하게도 '소수의견'이 자리 잡았다. 내게 소수의견은 문화이기도, 사람이기도, 새로운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소수의견은 말 그대로 주류가 아니므로 힘도 없고, 소외되기 일쑤이며, 반골 기질이라는 힐난을 받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인데, '변하려는 것과 머무르려는 것이 충돌해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이 문장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내게 변하려는 것은 소수의견이다. 다수의 보편적인 관습으로 형성된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는 소수의견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곧 문화 다양성은 소수의견이다.


소수의견을 조금씩 확장하다 보면 양성평등, 소외계층, 장애인, 성소수자, 다문화가정들의 모습도 보인다. 경제성 논리 또는 사회적 인식, 평판이라는 관습적 이유로 소수의견은 소외되거나 종종 부정당하기도 한다.


소수의견을 어디까지 귀담아듣고, 주류에 반영할 것인지 쉽지 않은 문제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조금 더 열린 귀로 듣기 시작하다 보면, 종국엔 모두가 바라는 세계 평화가 찾아오게 되지도 않을까? 다소 급작스러운 전개 같을 수도 있지만, 세계 평화는 모두에게 소중한 가치이기에, 여기에 기대 살짝 한발 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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