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존재가 있나요?
윤식이는 국민학교 친구라 말하긴 뭐 하고 동창 정도 느낌? 친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녀석이 가끔 나를 괴롭히는 사이였다.
저학년일 때 거친 편이었던 윤식이는 말 없고 순하던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뒷자리에 앉아 귀찮게 또는 툭툭 치며 괴롭히는 편이었고, 나중에는 우리 집에서도 윤식이라는 이름은 모두 알게 될 정도였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 가게를 했던 터라 우리 부모님과 윤식이 부모님도 안면이 있는 편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윤식이 엄마는 여러 차례 주의를 주셨다고 했지만, 학교에서 윤식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식이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성실한 편도 아니었다. 운동을 잘해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싸움도 곧 잘했다. 숙제를 항상 해오지 않아서 선생님에게는 약간 요주의 인물이었다. 무슨 인연인지 몰라도 학년이 올라 반이 바뀔 때도 자주 같은 반이 되었다. 학년이 바뀌자 윤식이는 결석하는 일이 잦아졌다. 결석을 하는데도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괴롭히는 녀석이 안 보이니 오히려 좋았다.
윤식이가 학교를 나오다 말다를 반복하다 한 달을 넘도록 장기 결석이 길어지자, 담임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말했다. 윤식이가 큰 병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니, 우리 모두 윤식이를 위해 기도를 해주자는 말이었다. ‘큰 병에 걸린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축구를 하고, 싸우고 또 나를 괴롭힐 수가 있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들면서도 아무튼 학교를 자주 빠지는 이유가 그거였구나 싶었고, 기도는 또 진심으로 했었다. 나를 조금 괴롭히긴 해도 큰 병이라니깐, 많이 아프다니깐.
그 후로도 윤식이는 학교를 간간이 나오면 오랜만에 보는 나를 반갑다는 듯이 여전히 툭툭치고 건드렸다. 속으론 참 배신감도 들었다. ‘내가 진심으로 기도도 해줬는데, 이게 그걸 모르고 이러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또 얼마쯤 지났을까. 윤식이는 꽤 오랫동안 학교에 오질 못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신문을 펼쳐 보이며 읽어주셨다. 다들 한 번씩 읽어보라고 했다.
신문에는 환자복을 입은 윤식이 사진이 있었고, 백혈병에 걸린 불쌍한 윤식이를 도와달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윤식이네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병원비 감당이 어려웠던 윤식이네 부모님은 신문에 기사를 내 도움의 손길을 바랐던 것이다. 학교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전교생에게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았다.
연민이라는 감정이었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종이상자로 모금함을 만들고, 일요일 동네 시장 입구에서 모금함을 들고 서있었다. 눈에 잘 띄도록 보이스카우트 옷도 입었다. 바짝 긴장되고 부끄러웠지만 시장에 있는 가게들을 한 곳씩 방문해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모금함도 내밀고, 시장을 한 바퀴 돈 후에는 다시 입구로 돌아와 오일장이 끝날 무렵까지 계속 자리를 지켰다. 나를 본 동네 또래들은 내가 왜 윤식이를 위해 모금함을 들고 있는 건지, 윤식이랑 친했던 사이였는지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금함은 다음날 학교 선생님께 전달해 드렸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윤식이는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병약해진 몸은 한눈에 표가 났다. 살은 빠지고 체구는 작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성격만큼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거칠고 또 나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수군수군 대기 시작했다. 네가 병원에 있을 때 늘보가 모금함도 들고 다니며 도와주려 했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투였다. 윤식이는 삐뚤어진 아이처럼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사이 덩치가 커진 나는 병약해진 윤식이에게 이미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또다시 배신감과 이제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에 윤식이에게 덤비듯 들이댔고, 더 이상 만만해 보이지 않던 나와 주변 아이들의 수근 거림에 윤식이는 한발 물러났지만, 분을 삭이지 못한 채 계속 씩씩대고 있었다. 이후로 더는 윤식이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해 윤식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때가 윤식이에게는 마지막 학교생활이 된 것이다.
학교에서 윤식이의 사망 소식을 듣던 날 몇몇 우는 아이들도 있었고, 선생님도 눈물을 훔치셨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무언가 찔리는 듯한 느낌이 앞섰고, 몹시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생각과 그래도 아픈 윤식이를 생각했다면 그러면 안 됐었다는 생각이 대립했다. 어쩌면 윤식이가 아픈 틈을 타 이참에 콧등을 한번 눌러주겠다는 고약한 심보가 발동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윤식이는 마지막 학교생활이 좋은 기억이었을까?’
아주 잊고 살다 가도 몇 년에 한 번씩 이름이 생각난다. 마지막까지 친해지지 못했던 아이. 너무 어린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난, 나를 조금은 괴롭혔었던 같은 반 아이. 아마 네가 살아있었더라도 지금 나와는 아무 인연도 없겠지.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은 그냥 네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