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다큐

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어떤 장르인가요?

by B급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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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집 있고 차 있으면 부자다.'

한남대교를 지나는 지하철 안에서 서울의 밤 풍경을 보며 생각했었다. 심야에도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불빛과 환하게 밝혀진 고층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달동네에 터를 잡고 이민자 생활을 시작할 무렵이다.


꿈과 희망이 있는 애니메이션이면 좋겠건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주인공인 영화는 다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반전도 진한 감동도 소재가 빈약하기 때문에.


'이민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시간을 거꾸로 되감아 본다. 한 30여 년 전쯤 논밭이 대부분인 시골마을 풍경이 보인다. 이 촌 마을에서 200km 정도 떨어진 비교적 큰 도시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가족이 이사를 간 것도 아니고 혼자 자취를 시작했다. 이민자로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곳에서 처음 문화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살았던 동네가 정말로 작디작고, 현대 문명과는 한참 뒤떨어진 곳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마을은 고작 4층짜리 건물이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베이커리, 커피숍, 패스트푸트점, 쇼핑몰이 있을 리 없었다. 극장이라는 곳도 연극이란 것도 모두 처음 접했다. 한 가지 불편하고 어색했던 것이 있었으니, 이발소가 없다는 것. 미용실에서 젊은 누나들이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물을 때마다 어떻게 답할지가 곤혹스러웠다. 이민자의 도시화 적응이 이제 막 시작된 시기였다.


전역 후에는 더 큰 도시인 서울로 이민을 결심했다. 어깨에 아주 간단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비교적 큰 도시로 여겼던 지난 터전은 어느새 작은 소도시로 전락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서울은 모든 면에서 스케일이 달랐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오히려 밤이 더 화려한 도시였다(서울 원주민들에겐 웃긴 이야기이겠지만). 더 큰 도시에서 산다는 게 성공이나 행복을 말하는 건 아니다. 고향 친구를 만나면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촌놈 출세했네!" 딱 그 정도일 뿐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시점 IMF가 터졌다. 많은 집들이 그랬듯 우리 집도 휘청였고, 대학을 포기하고 바로 극단에 입단했다. 제대 후 더 큰 무대를 향해 서울에서 또 이민자의 삶을 시작했다. 크고 작은 무대에 오르다 이른 나이에 배우의 꿈을 접고, 칩거와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는 방송통신대에 입학 원서를 냈다. 졸업장을 받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징그러웠다.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다.


배우 다음으로 선택한 일은 광고, 전혀 새로운 영역의 일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핸디캡이 높았다. 20대 후반부터 슬그머니 찾아온 위염과 원형탈모를 모른 체하며, 이를 악물고 개척지를 일궈 갔다. 거주지는 조금씩 평지로 내려왔고, 집은 조금씩 가로로 늘어났다.


이민자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느리게만 진행되는 것 같았던 변화의 속도가 서른 번의 해가 바뀌고 나니 확연히 달라져 있는 게 보인다. 삶의 태도에도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변해야만 적응하고, 적응해야만 정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미처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되었고, 반대로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씩 대체되기 시작했다. 식생활부터 취향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다. 홍어를 먹지 않은지 15년도 넘었다. 그런데도 명절에 고향을 찾으면 식구들은 여전히 홍어를 권하곤 한다.


아주 가끔 다시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서울이 아닌 뉴욕으로 갔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뉴욕에서도 지금처럼 개척지를 일구고 정착하고 있을까? 거리의 부랑자가 되었을까? 다큐의 마지막 엔딩은 뉴욕 타임스퀘어 빌딩 앞에 선 또 다른 이민자의 모습이 그려지길 바란다. 언제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껏처럼 뉴욕에서 이민자에게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장면으로 막을 내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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