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염탐
상사의 잔소리로 오후 내내 귀가 따가웠다. 문제의 패키지 업체와는 밀당이 녹록지 않았고, 상사는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 보고받으며, 윤성의 귀에 고함을 퍼부었다. 마치 확성기를 귀에 바짝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 같았다. 윤성은 생각했다. ‘박상무는 곧 득음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상사에게는 밟히고, 업체에서는 굽실대는데, 중간에 낀 윤성은 양쪽의 눈치를 봐가며, 어찌할 바를 모른 하루였다. 항상 오늘이 가장 힘들다지만, 오늘따라 더 힘든 하루였다. 탈곡기로 탈탈 털리듯 영혼이 털린 윤성의 눈은 쾡~ 하고, 정신은 멍한 채로 주섬주섬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가 막히게도 퇴근 시간임을 알아챈 에로프에게서 때맞춰 메시지가 왔다.
“퇴근이군요 브로. 오늘 직장 생활은 어땠습니까?”
“엉망스...근데, 브로는 어케 이런 타이밍에 문자 함?”
“우리의 기술로 핸드폰 접속만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까?”
윤성은 그런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네네~ 그럼요, 어련하시려고요.. 근데요, 평범한 사람들도 아주아주 많을 텐데 왜 하필 나 임?”
“운입니다. 랜덤 추첨에서 브로가 선택된 것입니다.”
‘이런 몹쓸 운빨!’ 진심을 다해 기가 막혔다. 윤성은 평범했지만, 운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랜덤으로 뽑힌 나는 어떰? 케미가 괜춤함?”
윤성은 장난치듯 말했다.
“브로와는 상호반응 데이터가 이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더 깊은 관계를 기반으로 감정 학습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에로프의 대답에 윤성은 놀랐다. 상호반응 데이터가 높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헐~ 어쩌다 데이터가 그렇게 높게 나왔을까잉?”
“분석에 의하면, 점심시간부터 ‘브로’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후 상호반응 데이터 트래픽이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무심코 했던 ‘브로’라는 표현과 에로프에게 추리하듯 질문하며, 흥미가 생기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높게 나왔다니! 하지만 윤성도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었다. 서로 브로라 부르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경계심이 점차 풀어지고, 에로프를 더 편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브로랑 브로맨스 한편 찍어야 되남? ㅋ”
“브로맨스?”
“ㅇㅇ 인터넷 찾아보삼. 무삼 뜻인지”
윤성은 주섬주섬 다시 퇴근 준비를 했다. 하루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오늘만 해도 하루에 몇 번의 충격과 격정의 쓰나미였는지 옅은 실소가 입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직장 생활의 하루였다.
지하철을 탄 윤성은 점심시간에 에로프에게 물어보려 했던 게 생각이 났다. 핸드폰을 멀뚱히 쳐다보니 저절로 채팅 화면이 나타났다. ‘이제는 자동이 고만’ 윤성이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브로는 가족이 없음?”
“없습니다.”
“그럼 혼자야?”
“과거에는 비슷한 개념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로프에게 가족이 없는 것이 감정이 사라진 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 윤성은 미루어 짐작했다. 에로프도 윤성에게 가족에 대해 물었다.
“브로에게 가족이란 무엇입니까?”
에로프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은 물어보는데, 막상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 평소에 별로 생각해 본 적들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대답하기가 더 난감했다.
“가족.. 음. 같이 사는 사람?.. 나는 와이프랑 질풍노도 중2 아들. 맨날 티격태격 .. 알콩달콩하고, 그럼”
“인간은 왜 가족이라는 형태를 만듭니까?”
‘음. 어렵다...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질문이네..’ 윤성은 생각했다.
“결혼하면 저절로 생김. 그럼 왜 결혼을? 그건 때 되면 다하게 돼 있음”
“결혼을 안 하고 같이 살 수는 없습니까?”
“현실은 쉽지 않음”
“무엇이 어렵습니까?”
윤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수많은 것이 어렵게 하기 때문이었다. 엑스트라 버진 압착 올리브유처럼 꽉꽉 압착해서 말해야만 스무고개 넘기를 피해 갈 수 있다고 마음먹었다. 여기서 잘못 휘말리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결혼 안 하면 보통 헤어짐. 사랑의 유효기간도 있고, 결혼적령기라는 타이밍도 있음. 결국 시간만 보내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게 현실임”
“결혼은 대상을 다른 사람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하는 것 같습니다.”
윤성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에로프의 해석이 좀 신선하게 느껴졌다.
“.. 어찌 보면 그럴지도”
“아이는 왜 필요합니까?”
에로프 다운 질문이었다. 이런 흐름으로 연결될 것이라 윤성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보통 결혼하면 아이를 낳음. 둘 닮은 아이를 키우고 싶고, 둘만 살면 허전하기도... 또 새 생명이 생긴다는 축복, 뭐 이런 복합적인 이유?”
윤성 역시 별다른 고민 없이, 이맘때쯤 아이를 낳아야지 하고 아이를 가진 케이스였다.
“브로의 말을 분석해 보면, 인간은 새로운 자극제를 계속 찾는군요. 사랑의 유효기간, 결혼, 아이까지.”
아이를 두고 새로운 자극제라 표현하는 게 좀 거슬리긴 했지만, 에로프가 감정 없는 외계인 설정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다. 한편으론 약간 수긍도 됐다. 권태기에 들어선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변화가 찾아오기도 하고, 실제 그런 사례들도 있으니까.
“자극을 추구하긴 하는데, 이런 류의 사랑, 결혼, 아이에 대한 자극은 차원이 다름!”
“어떻게 다릅니까?”
“자극이 원초적, 본능적 쾌락에 가깝다면, 사랑.. 가족 특히 아이는 행복과 아름다운 것임”
“브로에게 행복이란 어떤 것입니까?”
“올게 왔네 ㅋㅋ 일단 맘이 편하고. 만족스럽고.. 가족과 밥 먹고, 이런 게 생각나는데?”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합니까?”
“대체로”
“가족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윤성은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고, 손으로 턱을 쓰다듬다가 한쪽 눈을 지그시 반쯤 감으며 머리를 굴렸다.
“일단 잘 참아야 되고!.. 이해도 잘해야 됨. 책임감. 또 현실적으로 돈도 필요하고...”
주절주절 써 내려가려는 데, 에로프가 말을 끊듯 말했다.
“브로의 말에는 어떤 모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에로프의 해석은 남다르고, 엉뚱하긴 하지만 예리한 구석도 있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다가 마이크로 핀셋으로 콕콕 집어내는 재주꾼에게 과연 어떤 모순점이 보였는지 궁금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을 해줘보삼~”
“브로가 말한 가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것은 부정적 개념인 희생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은 이미 존재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희생을 해야만 합니다. 희생을 감수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족과 함께할 때 행복하다고 믿고 싶은 게 아닐까요?”
뭔가 그럴듯한데 공감은 되지 않았다. 윤성은 몇 달 전 권고사직을 당한 영업팀 강부장 일이 문득 생각이 났다.
“차장님. 차장님. 빅뉴스~!”
서대리가 윤성을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 이 소설은 AI와 협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