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문 시간에 헌혈 관계자 한 분이 들어오셔서 말씀을 하셨다. "지금도 병상에서 여러분의 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낮에도 결심을 했는데 정말 나는 헌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술실로 내려갔다.
착 들어서자마자 몇몇 아이들에 책상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겁이 났다.
신청서를 쓰고 혈액형과 혈압 검사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막상 담요
한 장이 덮인 책상에 누워 팔을 내미니 위험하고
괴롭고 아니 무엇보다도 아플 것 같아 떨었다.
옆의 2학년 형은 이상이 있는지 못했다.
오른손 팔목을 펴고 간호원의 손길을 조심스래
관찰. 소독하고 비닐봉지에서 바늘을 꺼냈다.
'아!~' 눈을 돌렸다. 그러나 곧 "어" 잠깐 사이에 들어가고 굵은 줄을 통해 검은색에 가까운
빨간색의 피가 쫙~~~ 아, 정신이 아찔....
5분 만에 무사히 끝났다. 비닐 용기에 두툼히
채워졌다. 과자, 볼펜을 내주고 헌혈 증서도 받았다. 지구과학 시간에 들어갔다. 아이들도 놀랐다.
아.. 좀 멍멍한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정말 보람 있는 일이었다.
앞으로 오는 대로 매번 헌혈을 해야지.
팔뚝이 좀 아리다.
어느덧 나의 나이도 오십 중반을 넘어서 세월과 함께 묵묵히 달려가고 있다.
아직 연륜이 깊은 우리 인생의 대선배님들에 비하면
아직 애송이인 나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도 어찌 보면 송구스러운 일이다.
이제 머리도 듬성듬성해지고 주름살은 늘어만 간다. 건강 검진을 하니 키도 줄어들고 있어서 아쉽다.
비록 크게 이룬 것 없이 달려가고 있어서 아쉽기도 하다. 그저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하는 일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내 평생에 걸쳐서 해온 숙제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해온 일 바로 생명 나눔, 사랑의 '헌혈'이 그것이다. 어릴 때부터 흑백텔레비전 아래로 자막이 종종 뜨는 것을 보았다.
"AB 형 혈액형 급구....! OO병원" 혈액이 모자라다는 뉴스 속보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그 글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집안의 어른들로부터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복이 오고 남을 도와야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무수히 들었던 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5년 학교에서 처음 헌혈을 시작했다. 생명을 구한다는 뜻보다는 사실 수업을 빠지는 것이 좋았다. 원래 난 주사 바늘이 너무 무서
워서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로 기피했던 꼬맹이였다.
몇 차례에 걸쳐 맞는 초등학교 때의 불주사도
한 차례 빠졌는데 맞은 자국을 문질러 붓게 하고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었다. 그런데 용감(!)하게 체육 수업 시간에 헌혈을 자청하러
나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엄청 떨리고 긴장돼서
이가 딱딱 흔들릴 정도였다. 찬 바늘이 내 팔뚝에 쑤욱 들어갈 때의 공포에 눈을 꼭 감고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빵을 얻어먹고 헌혈증을 받고 환자처럼 누워있었다. 간호사 누나의 보호를 받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무서워했던 주사 바늘을 그런데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40년을 계속해왔다.
그렇게 헌혈은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하는 가장 가치 있는 사회와 함께 하는 평생의 숙제가 된 것이다.
물론 헌혈을 하고 받은 도서 상품권으로 책을 사서 보았고 영화도 보는 즐거움도 오랫동안 누려왔다.
물론 중간에 많은 일이 있었다.
삶에 치여서 헌혈이고 뭐고 생존이 급해서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지하 자취방에서 살고 고시원 찜질방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거주지와 생활고로 헌혈이 제일 뒤에 놓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내 삶의 위치에서 흔들려 잠시 잊어버렸다가도 헌혈을 생각하고 헌혈의 집 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 바늘을 꽂으면 나는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되었다. 오랫동안 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자존감이 바닥을 헤맬 때도 난 헌혈로 무언가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무했다. 그리고 떳떳하게 고개를 들었다.
늦은 나이 마흔 하나에 결혼을 했을 때 집사람에게 헌혈을 정기적으로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않는 바쁘고 빠듯한 직장일을 하는 중이었다. 헌혈을 하며 안 그래도 없는 여유 시간을 빼앗아 집에 퇴근이 늦어졌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휴일에도 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헌혈을 하러 나갔다가 들어오기도 했었다. 어느 날 꼬리가 밟혔다. 집사람의 의심과 추궁에 나는 솔직하게 헌혈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집사람은 자기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줄 알았단다. 그러다가 몸을 축낸다고 부모님도 걱정을 하시고 한사코 말리셨는데 아들의 뜻을 꺾지는 못하셨다.
"셋째야, 그러다가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만해라. 이제 좀..." "괜찮아요. 어머니 제가 병원신세도 안지고 지금까지 건강한 건 다 헌혈 덕분인 거 아시잖아요" 정말 그렇다. 나는 한 달에 두 번 건강 검진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헌혈을 한다. 헌혈을 하면 이틀 내로 혈액의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그렇게 헌혈하기 좋은 몸과 상태를 만들기 위해 전철에서 절대로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하루 만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금연은 물론 절주를 생활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헌혈을 남을 위한 작은 찡그림을 큰 사람을 나누는 일이고 역시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올해로 40년째 헌혈이란 친구와 동행을 하고 있다. 이 생명 나눔의 숙제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의미이자 작은 보람이다. 이렇게 헌혈을 통해 작지만 사랑을 나누어 아픈 사람들이 희망이란 꿈을 꿀 수 있다면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그렇게 헌혈과 '함께' 한 지금까지 나의 삶은
삶에 찌든 나를 다시 새로운 삶의 희망과 보람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었다.
헌혈은 크게 드러내지 않지만 정말로 나를 다르게 정의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또한 내가 세상과 호흡하고 함께 나누고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의 평생의 숙제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비워지면 또 언제나 새롭게 채워지는 혈액처럼 늘 나의 삶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한 생명 나눔의 실천, 헌혈. 그런 헌혈을 정기적으로 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뚜벅뚜벅 지치지 않고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