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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되던 해, 캠핑에서 두 끼니를 굶었다

픽션|또다시, 나는 일진 무리를 화나게 했다

by 문현웅

어릴 적 외갓집에서 모기장에 걸린 잠자리를 잡았던 적이 있다. 여타 개체와 달리 그 녀석은 더듬이가 기이할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생물 교사였던 삼촌은 야생에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곤충은 가끔 여타 동류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다른 감각 기관이 발달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 역시 무언가가 결여된 인간이었다. 잃어버린 그것의 정체를 지금까지도 정확히 알진 못한다. 다만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원만히 교류하는 데 꼭 필요한 무엇이라는 것만큼은 어렴풋이나마 짐작한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살아는 왔다. 어쩌면 상실한 그 무언가를 벌충해 내고자 지능만큼은 동년배에 비해 발달해 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멀어버린 눈 대신 더듬이를 키운 잠자리처럼,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물구나무를 서서 달리는 육상선수처럼, 다른 능력으로 결함을 힘겹게 커버하며 어떻게든 남들과 발을 맞춰 왔다.


하지만 보상기관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시력이 멀쩡한 잠자리라면 걸리지 않았을 모기장을, 다리가 튼튼한 선수라면 부딪힐 리 없는 허들을 나는 기어이 넘어서지 못했다. 급우들 사이에 형성된 미묘한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오는 압박은, 그리고 그것을 부드럽게 조율하는 감각의 부재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알량한 지혜만으론 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난관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바로 다음 해, 학교에서 단체로 캠핑장에 숙영을 갔을 때도 그러했다. 1학년때 불미스러운 사건을 겪었던 이래 나는 줄곧 어느 집단에서나 겉도는 아이로 머물러 있었다. 여느 학교가 그렇듯 이른바 '노는 애'들의 네트워크는 학급 하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는 그들의 정보망을 따라 널리 공유됐고, 2학년으로 진급해 반이 바뀌고 아이들이 뒤섞여도 처지는 달라질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같은 텐트에서 1박 2일간 지낼 4인 숙영조가 편성됐을 때에도, 그중 하나로 배정된 일진은 나를 향한 적대감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넌 여기 오지 말고 저기 가서 장비나 받아 와, 텐트는 우리끼리 칠 거니까."


내젓는 손짓에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일진과 나를 제외한 아이 둘도 그저 외면할 뿐 상황에 개입하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들 모두는 그저 일진과 불필요한 충돌 없이 어색한 관계로나마 무탈한 하룻밤을 보내고 집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었을 것이다. 이틀 간에 걸친 고독은 오롯이 나 혼자 극복해 내야만 할 몫이었다.


/Unsplash


"야, 빨리 뛰어!"


일진이 소리쳤다. 주변 조에서 하나씩 나온 아이들이 어느새 먼발치에 있는 장비 무더기 쪽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직감했다. 선착순이다. 늦게 도착하면 좋은 물건을 받을 가망이 없구나. 러잖아도 불편한 처우가, 늦게 도착한 대가로 헐어 빠진 장비만을 주섬주섬 챙겨 왔을 때,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서 뛰기 시작했다.


"니가 뛴다고 되겠냐?"


나란히 달리는 누군가가 비웃었다. 환청이 아니었다. 홍철이었다. 1학년 시절 바로 그 축구 경기에서, 그들의 각본에 따르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역이었어야 했었을 아이.


그는 운동을 잘했다. 애초에 싸움을 잘하고 운동신경이 탁월하지 않으면 일진 무리에 섞여들 수는 있을지언정 대우는 기대하기 어렵다. 홍철은 그것을 충족하는 아이였다. 그렇기에 내가 그들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일진들은 성적 상위권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신사협정인 양 굴었다. 물론 일진들이 학업마저 장악할 역량이 있었다면 그 분야까지 차지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짐짓 양보하는 듯 공부는 너희 것, 체육은 우리 것이라 선을 그었다. 다시 말해, 만일 신체를 쓰는 분야에서 맞붙는다면, 우리는 이유를 불문하고 그들의 영광을 위한 깔개가 돼야만 했다.


그렇다면 당시 내가 택했어야 할 처신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은 보이되, 홍철보다는 조금 늦게 도착하며 적당한 수준의 장비를 챙기는 정도의 퍼포먼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시야도 생각도 좁은 아홉 살 인생이었다. 그나마도 또래에 비해 인간관계를 다루는 감각과 통찰이 턱없이 부족했던. 더군다나 경쟁에 밀려 형편없는 장비를 챙기는 때 닥쳐올 상황을 두려워한 몸은, 불행히도 평소 신체 수준을 웃도는 힘을 멋대로 내게 주었다.


"야, 야!"


아마도 일종의 히스테리컬 스트랭스(Hysterical strength)였을 것이다. 나는 홍철을 제치며 앞서 나갔다. 평소 발이 느린 편이었던 나로선 감히 예측할 수 없었던 속력이었다. 심지어 홍철이 고함치며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밀치는 와중에도, 나는 오히려 가속을 붙이며, 먼저 출발했던 아이들 못지않는 상당한 상위권으로 장비 무더기에 안착했다.


빡.


장비를 챙기는 순간 뒤통수가 얼얼했다. 머리가 울렸다. 귀가 멍했다. 뭔가 들려오는 소리는 욕설인 듯했다. 곧이어 퉷 하는 소리와 함께 침이 날아왔다.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하자 없어 보이는 양품 장비들을 손에 쥐고선 몰아쉬는 숨을 고르며 우리 조 텐트 쪽으로 돌아왔다.


"야, 너 진짜 뭐 하는 놈이냐?"


적어도 비난은 피하려 했던 내 노력은 무의미했다. 우리 조 일진은 홍철과 잠시 대화하는 듯하더니 이내 내 쪽으로 다가와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선 내 손에서 장비들을 낚아챘다.


"갖고 꺼져."


장비는 두 세트였다. 텐트당 배정 인원은 넷. 두 사람당 하나씩 나눠 쓰라는 취지였다. 그중 한 세트가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그들은 나와 겸상을 하느니 한 세트로 셋이 쓰는 불편을 감수할 작정이었다. 그제야 나는 홍철을 앞질렀던 행위의 의미를 불현듯 깨닫고선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순 없었다.


아홉 살짜리가 야외에서 혼자 준비하는 식사가 제대로 준비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더군다나 다른 조는 적어도 둘이서 할 일을 혼자 감당했던 만큼 온전히 속도를 내는 것 또한 불가했다. 밥은 생쌀에 가까웠고 국은 색만 붉을 뿐 멀겋게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채 앉은 내 앞으로 아이들의 취사 상태를 점검하던 담임 선생님이 왔다. 그리고선 국냄비를 집더니 그것을 통째로 들어 맛을 조금 보았다.


"괜찮네!"


선생님은 딱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나는 아직도 그 '괜찮다'는 말의 의미를 모른다. 나름의 격려였을지, 혹은 돌아가는 꼴을 알고 나서도 애써 외면하려는 제스처였을지.


아무튼 그것으로 상황이 호전될 가망은 영영 사라졌다. 나는 밥그릇을 놓고선 머리 위로 눈을 돌렸다. 어둠이 고요히 가라앉은 밤하늘 속으로 부서진 별빛이 흩날렸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배고픔도 외로움도 잠시나마 지울 수 있었다. 식사하는 아이들로 사방이 왁자한 때에도, 나는 흐르는 별무리를 향해 젖혀 든 고개를 오래도록 내리지 않았다.


이튿날이 밝았다. 저녁과 아침, 두 끼니를 굶고 나니 다리의 후들거림이 멎질 않았다. 나는 점심 식사 시간 전에 해산을 명한 학교의 조치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집에 다다랐을 즈음엔 바르게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벨을 누르고서 주저앉은 나는, 문을 연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엇이든 좋으니 먹을 것을 달라며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가 요리를 맡아했는데, 너무 맛이 없었어."


나의 설명은 그 정도에 그쳤다. 나름의 울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훨씬 컸다. 어머니로선 전후사정을 알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다른 아이들까지 굶게 했으니 큰일이다, 잘 못하는 일을 굳이 나서 맡아서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등의 염려를 말씀했다. 나는 그 모든 가르침을 묵묵히 수긍했다. 어머니께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요리를 좀 배울 필요가 있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요리를 잘한다. 계기야 어떻건, 적어도 그것만큼은 썩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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